김근혜수필가 75

어쩔, 파스/ 김근혜 수필가

거울 속에 낯선 중년 부인이 서 있다. 본 듯, 아는 듯, 마는 듯한 사람이다. 웃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한쪽 손엔 파스가 들려 있다. 그 꼴이 가관이다. 울퉁불퉁한 전라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여성 스모 선수가 전쟁터에 나가기 직전 모습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자신이 봐도 봐줄 만한 꼴이 아닌지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가끔은 벽이 돼야 하는 자신이 웃프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어깨가 자주 아프다. 근육통이 새삼스럽지 않은 나이다. 아픈 부위에 파스를 붙인다. 잠시 통증이 진정된 듯 하나 부작용으로 피부 발진이 온다. 붙어있어도 떼어내도 가렵다. 강력한 접착제는 뗄 때가 더 고통스럽다. 일방적인 사랑처럼. 사랑이 너무 뜨거우면 불에 데듯이 파스도 뜨거운 것과 함께하면 화상을 입는다. 아픔을 견디고 억지로 떼..

앙금이 속살거리다/김근혜

팥죽을 만들기 위한 시간은 동백이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팥의 앙다문 입술이 벌어지기까지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자신이 깨고 나오기까지 호흡조절에 힘쓴다. 그때부터는 동안거다.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는 순간 팥은 설익고 만다. 붉디붉은 팥은 같은 콩과 식물인데도 콩들과 잘 섞이지 못한다. 콩은 둥글둥글하고 모난 데가 없어서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모서리에 베여도 훌훌 털고 쉽게 일어나는 힘을 가졌다. 팥은 야무지면서 단아하고 차가운 느낌이다. 도도한 인상이 거부감을 일으킨다. 너그러운듯하나 속 좁은 여인네 같고, 포용과 배려보다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인다. 소심한 팥은 세상의 바람과 맞서지 않는다. 지혜롭게 보이지만 그의 속은 앙금으로 까맣다. 돌덩이 같은 팥이 스스로 껍질을 벗고 나올 때까..

김밥, 옷을 벗다/김근혜

칼을 간다. 날카롭게 갈아야 흠집을 내지 않고 단번에 자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의 응어리가 밥알처럼 붙어 나온다. 김밥은 싸는 것보다 잘 쓰는 기술이 필요하다. 사람의 감정도 단번에 잘라버리지 않으면 칼에 묻어 나오는 밥알 같아서 끈적거림이 늘 따라다닌다. 김밥을 싼다. 한 톨 한 톨의 밥알은 하얀 이팝꽃을 뿌려 놓은 것 같다. 햇살에 구운 한 폭의 먹장구름으로 가지런히 누워 있는 맨살들을 덮는다. 낱글자들이 빠져나오지 않게 조심스럽게 돌돌 만다. 긴 드레스 입은 여인들이 은빛 수레 위에 조용히 눕는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입안에서 방긋이 터진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김밥 속 같았다. 쓴소리를 잘하는 우엉인 언니와 조그만 일에도 잘 삐치고 얼굴이 붉어지는 당근인 나, 누가 뭐라고 하든 무던한 시..

꽃구경/김근혜

꽃들의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개나리의 봄 편지를 기점으로 시샘이라도 하듯 벚꽃, 철쭉, 라일락이 이어달리기한다. 겨울잠을 털고 폴짝폴짝 건반을 두드리는 개구리의 경쾌한 리듬이 잠자던 꽃들을 깨운다. 여기저기서 봄나들이 오라고 손을 까딱인다. 이런 유혹이라면 얼마든지 빠져도 좋을 것 같다. 어花, 봄봄, 둥둥. ​ 유채꽃 축제로 들썩이는 낙동강변에 섰다. 행사를 알리는 패러글라이더들의 활공이 색색의 홀씨가 여행하는 듯하다. 노오란 파도가 물결치는 유채꽃밭에서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아름다워서 슬프기까지 한 꽃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잠시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이 되어 본다. 설핏 첫사랑의 향기가 코끝에 닿는다. 어花, 봄봄, 둥둥. ​ 낙동강 물줄기도 봄의 향연에 두근거리는지 내 마음보다 더 일렁인..

Balance/김근혜

​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많은 터널을 만난다. 컴컴한 터널을 빠져나가면 희망의 빛이 어려 가슴이 잔뜩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언덕을 오를 때면 온 힘을 다해 뿌앙하는 기차 경적 소리가 고단한 인생을 넘어가는 부모님 같기도 하다. 기차여행이 아니면 느껴보지 못하는 새로운 경험이다. ​ 추억 속의 터널이 와인을 빚는 저장고가 되었다. 온도와 습도가 일정해서 와인이 발효 숙성되기에는 적당한 곳이라고 한다. 일교차가 심한 인간의 마음 온도와 비교된다. 인간 마음에 높낮이가 있는 것은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탈이 나게 마련이니 적절하게 조율하면서 살라는 신이 준 숙제인지 모른다. ​ 잠시 카페에 앉아 감 와인을 시켜두고 다리쉼을 한다.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홍시를 무더위에 먹는 얼얼한 맛이 일품이다. 이국땅..

카테고리 없음 2022.02.17

옹이/김근혜

집 근처 산을 올랐다. 길옆의 소소리바람을 뚫고 제비꽃이 옹망추니 목을 빼고 있다. 장승처럼 버티고 선 이정표를 따라 걸음을 옮겨 놓는다. 비탈길에 엉거주춤 한쪽 발을 디밀고 서 있는 소나무가 비라도 오면 쓸려갈 듯 위태해 보인다. 살대 하나 없이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 보인다. 세풍을 혼자라도 겪은 듯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군데군데 나 있는 옹이를 보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너도 많은 굴곡을 안고 살았구나.’ 외부적인 자극이야 따끔거리는 정도의 흉터만 남기지만 마음속의 상처는 아문다고 완전히 아물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지인을 만났다. 심리상담 교육을 받다가 만나게 된 사람이다. 새로운 누군가와 연然이 되어 서로를 알아주고 힘이 된다는 것이 오롯한 기쁨이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

근* 글 2022.02.10

귀 멀미/ 김근혜

귀耳가 저녁에는 더 바쁘다. 예불시간에 맞춰 종이라도 치려는 건지. 커다란 눈을 단 산악자전거가 찌르릉거리며 귓속을 이러저리 달리는 느낌이다. 전입신고도 하지 않고 입성한 그에게 정거장이 돼주기로 했다. 왼쪽으로 누워야 겨우 내려오는 차단기도 마다하고 두근거리며 그를 기다리는 날이 생겼다. 전깃줄 우는 소리, 파도 소리, 매미 소릴 내며 쉼 없이 조잘거리는 귓속. 그가 요동칠 땐 이상하게 첫사랑이 떠올랐다. 귓속을 어지럽히던 그가 잠시 침묵을 하는 동안 금단현상이 왔다. 그 적막이 못 견디게 힘들었다. 나쁜 사람과 함께 하면서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것처럼. 어린 시절 외롭게 자란 탓도 있다. 난 황혼 무렵을 사랑하지만 미워도 한다. 해거름, 대문 밖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일은 쓸쓸했..

카테고리 없음 2022.02.09

외상外傷 감옥/ 김근혜

풀잎에 매달린 눈동자가 맑다. 투명한 눈에 하늘이 들어앉는다. 파래지는 빗방울. 사마귀가 풀잎에 앉아 나를 보고 씩 웃는다. 소박하고 평범한 아침이다, 회색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잠시나마 편안하게 해주는 풍경이다. ​ 마음속에 품고 있든 것들이 페달을 밟고 달려온다. 오늘 떠나보냈던 기억이 내일은 또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잊어야 할 것은 왜 더 뜨거운 열기로 다가오는가. 이럴 땐 자유자재로 왜곡이 가능한 기억 구조를 가지고 싶다. 기억 저장고가 고장이 났는지 시시때때로 심장을 건드린다. 나쁜 기억은 무딘 칼로 무를 자르는 것 같다. 울퉁불퉁하게 가슴에 스미는 덧옷들. 기억은 너무 많은 옷을 껴입고 있다. ​ 시냇가를 걷는다. 거추장스러운 것으로부터의 도피이다. 돌에 부딪혀 내는 물소리가 기분을 말갛게 ..

근* 글 2022.02.09

문턱/김근혜

문턱 ​ 아들이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낚싯바늘에 걸려 올라온 붕어처럼 몸살을 앓는다. 저 문턱을 넘어서면 한동안 바깥세상과 단절된다. 생강나무가 꽃을 피우려 할 때의 살 터짐 같은 고통이 나를 옥죈다. ​ 아들은 태내에서부터 거대한 문턱을 만났다. 세상 발發 기차에 몸을 싣기 싫은지 궁宮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문을 열었다. 세상에 나와서 처음 만난 건 어미의 따뜻한 품이 아닌 차가운 병실이었다. ​ 직립한 다음 만난 건 문지방이었다. 턱에 걸려 몇 번이나 마당으로 곤두박질쳤다. 무릎에 달라붙은 피딱지는 삶의 마디를 만들며 아들을 키워내고 있었다. 인생은 늘 위태위태한 고비를 넘기며 상처 난 힘으로 자라는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던 그해도 대학입시라는 문턱은 기어코..

아버지께 올리는 贖愆祭/ 조선일보 에세이 : 2014.10.08

아버지께 올리는 贖愆祭(속건제·허물을 씻기 위한 제사)/김근혜 수필가 아버지는 땅을 팔면서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렸다. 외지인이 와서 공장을 짓는다며 땅값을 비싸게 준다고 했다. 귀가 여린 아버지는 그 꾐에 계약금만 받고 땅문서에 덜컥 도장을 찍었다. 전답(田畓)을 처분해 자식들을 도시에서 공부시킬 요량이었지만 한순간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쉰을 넘긴 아버지가 맨손으로 일어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 재산을 뺏긴 심정이 오죽했을까? 혼이 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벽만 보고 지냈다. 어린 자식들과 눈 맞추는 걸 제일 두려워했다. 어머 니가 살아 계셨다면 아마도 생병이 나서 지레 돌아가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부농(富農)의 장남으로 할아버지의 커다란 우산 아래에서 비바람을 모르고 살았다. 풍류나 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