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앙금이 속살거리다/김근혜

테오리아2 2022. 5. 3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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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을 만들기 위한 시간은 동백이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팥의 앙다문 입술이 벌어지기까지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자신이 깨고 나오기까지 호흡조절에 힘쓴다. 그때부터는 동안거다.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는 순간 팥은 설익고 만다.

붉디붉은 팥은 같은 콩과 식물인데도 콩들과 잘 섞이지 못한다. 콩은 둥글둥글하고 모난 데가 없어서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모서리에 베여도 훌훌 털고 쉽게 일어나는 힘을 가졌다. 팥은 야무지면서 단아하고 차가운 느낌이다. 도도한 인상이 거부감을 일으킨다. 너그러운듯하나 속 좁은 여인네 같고, 포용과 배려보다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인다. 소심한 팥은 세상의 바람과 맞서지 않는다. 지혜롭게 보이지만 그의 속은 앙금으로 까맣다.

 

돌덩이 같은 팥이 스스로 껍질을 벗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지쳐서 고문할 때가 있다. 성급함에 불의 세기를 올리고 펄펄 끓인다. 중간 불에 오래 두어야 뭉근해지는 것을 열을 받게 해서 화를 돋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팥물은 소화하지 못한 화(). 말끔히 걷어내려 하나 아직은 자존심을 죽이고 싶지 않은 듯 거품을 게워 낸다. 가라앉히려고 찬물 세례를 한다. 오랜 시간을 푹 끓이면 기가 죽어 흐물거린다.

 

팥이 이름을 잃어 갈 때쯤 진통이 시작되고 궁이 열린다. 깊은 맛을 내기 위한 여정이 고단하고 길다. 팥이 숨을 고른다. 몸을 가다듬고 마지막 힘을 다한다. 험난한 골짜기를 지나 터널을 벗어나면 미약하게나마 빛이 보인다. 그때 하늘이 노랗게 물들 때쯤, 신이 지나간다. 산통의 막바지다.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 같던 팥알의 단단함이 시간 앞에서 항복한다. 서서히 숨구멍을 열고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드디어 입술이 터지고 뭉근해진다. 난산 끝에 막 태어난 생명이다.

삶은 팥을 체에 안친다. 손으로 쓱쓱 쓸어내리면 세상을 잡고 있던 손가락이 힘을 푼다. 벽을 뭉개니 부드러운 속살이 손에 닿는다. 늘어가는 침전물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너무 촘촘한 체로 걸러내면 앙금이나, 껍질이나 혼돈 속에서 길을 잃는다. 얼기설기한 체에 밭쳐 숨구멍을 틔워 줘야 앙금이 쉽게 빠져나간다. 모태에서 나온 겉모습을 다 버리고 나면 겹 속에 감추고 있던 속살이 드러난다. 앙금이다.

 

큰 주걱으로 노를 젓는다. 노는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인다. 큰 가마솥은 풍랑이 이는 세상이다. 간을 맞추려고 소금을 뿌리면 곧바로 되받아치며 물결을 일으킨다. 참을성 없는 인간의 혈기 같다. 조그만 일에도 바로 흥분하는 내가 보인다. 불길이 셀수록 화난 바다가 된다. 가마솥은 속이 타는지 뽀글거리다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풀어내지 못한 분노가 많은 앙금 무덤을 만들고 있다.

 

거주할 곳을 찾던 앙금이 갑작스럽게 스며들었다. 기별 없이 다니러 온 혈연관계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거르지 않고 가끔 찾아드는 생명체다. 가지를 뻗어나간 세포들은 진화를 거듭하며 자생하는 능력을 익혀갔다. 걸음마를 겨우 뗄 때는 순풍에 불과했다. 동거해도 큰 불편이나 증상이 미약했다. 소비하지 않으면 매달 쌓이는 이자처럼 뒤끝이 폭풍 성장 했다. 내 몸은 사연이 가득 찬 우체통이 되었다.

 

사막에 사는 에리코 장미가 있다. 이 장미는 물기가 없으면 휴먼 상태로 십년을 죽은 듯이 살다가 수분만 있으면 살아서 꽃을 피운다. 앙금이 이와 흡사하다. 사멸했는가 싶으면 일어나고, 또다시 태어나서 가시 꽃을 끈질기게 피운다. 팥의 앙금은 달곰하고 유익하나, 사람 마음속에 있는 것은 쓰리고 아프다. 앙금이 가진 두 얼굴이다.

 

건강 이력이 말간 사람이 많은데 내 등기부 등본은 수시로 들락거리는 임차인으로 인해서 붉은 줄이 많다. 어떤 녀석은 최대한 대출을 끌어 써서 천공이 생겼다. 끈질기게 자라나는 풀 같이 앙금의 생존본능도 만만치 않다. 풀이 자라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 이 녀석도 필요에 따라 사람만큼이나 얼굴을 바꾼다. 편히 쉬고 싶으나 쉬지 않고 달린다. 상처를 걸러내지 못하는 것은 내 배수구 속이 좁거나 거름망이 촘촘해서이리라. 앙금도 고운 체에서는 잘 걸러지지 않는 것처럼 때에 따라 적당한 크기의 체가 필요하다.

 

앙금에 붙들려 심장에 많은 빚을 졌다. 내 속에 많은 실밥 자국을 보며 타인의 아픔도 느꼈다. 상처가 상형문자를 보게 하고 닫혀 있던 가슴에 출구를 만들어주었다. 깊이 숨어들어서 문신이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몸이 살기 위해 숨구멍을 열었다.

 

상처 준 이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고 싶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끌어안고 싶었다. 움츠리고 있던 작은 가슴을 수십 번 여닫았다. 마음을 다잡아먹고 길을 나섰다. 그런 이에게로 가는 길이 멀었다. 반도 가지 못하고 흔들리면서 되돌아왔다.

 

늙는다는 것은 마음이 순해지는 모양이다. 조밀하던 기억의 나이테가 느슨해진다. 젊었을 때와 사는 방식이 달라진다. 아마도 늙어감의 좋은 점이리라. 용서라는 거창한 말은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마음 깊은 곳에서 겨울잠을 자는 그를 털어버리는 것이다. 꽁하고 있던 것이 변화가 생긴다. 팥이 팥죽이 되기 위해 많은 과정을 거치듯이 내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앙금도 험난한 길을 거쳐 순화되고 사그라지는 것 같다. 앙금이 팥죽의 꽃이듯 부글거리는 상처의 시간이 나를 여물게 한다.

 

찹쌀가루로 만든 새알심과 쌀을 조심스럽게 앙금에 넣는다. 고개 숙였던 새알심이 팥죽 위로 살며시 올라온다. 화해의 시간이다. 시커먼 앙금이 녹아내리고 말간 아침이 온다.

 

-선수필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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