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1

수인번호 264-김근혜

한적한 겨울 거리는 바람 소리만 요란하다. 미처 떠나지 못한 낙엽들이 거리를 헤맨다. 저들의 거처는 어디인가. 이 광활한 우주에 떠돌이로 돌다가 생을 마치는 건 아닌지 이름 모를 노숙자들의 삶 같아 쓸쓸하다. 안동은 정신문화의 고장이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회마을을 비롯해 도산서원, 퇴계 종택, 농암 고택, 군자마을 등, 양반 고을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쉰다. 차로 이동하는 중에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들의 비석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안동은 한국 근대 최초의 갑오의병이 일어난 한국 독립운동의 발상지가 아닌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 유공자, 자정 순국자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내 조상의 고향이기도 해서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안동 땅을 밟으니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

카테고리 없음 2020.02.14

“아프지, 나도 아프다” -김근혜

“아프지, 나도 아프다” 김근혜 공감능력은 대인관계에서 중요하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자신의 기준으로 보면 타인의 삶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에서 판단하고 상대의 처지를 고려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에서 감정에 관한 관심을 주고받은 경험이 적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속상한 일을 털어놓는 상대에게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속을 뒤집어 놓는 일 또한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내 기준으로 상대를 파악하고 분석해서 판단을 내리려 한다. 상대는 어떤 해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이해해v주길 바랄 뿐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된다. 각자의 경험과 욕구가 다르고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근* 글 2018.04.04

“돼!”-김근혜

“돼!” 김근혜 장자는 인격화된 사람, 신격화된 사람, 성인화된 사람, 세 가지 모습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인격화된 사람이란 자기가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 즉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시대에는 자신을 알리는 것이 비즈니스다. 장자의 말이 시대에 맞지 않을 수 있으나, 명함을 받다 보면 동네 통, 반장한 것까지 상세하게 나열해서 거부감이 일 때가 있다. 적당한 범위 내에서 자신을 알리는 지혜로움이 필요할 것 같다. 자신이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인격화되지 못한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비슷하다. 자기 과시를 잘하고 영웅 대접받기를 좋아한다. 단체 생활에서는 늘 큰소리를 내며 자신의 주장을 앞세운다. 관철되지 않으면 마음이 뒤틀려서..

근* 글 2018.04.04

사치스러운 신음-김근혜

사치스러운 신음 김근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손수레에 실린 파지, 술병, 깡통, 잡동사니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려 있다. 미끄러운 빙판길에서 할머니는 손수레 모는 일조차 힘에 부쳐 곧 넘어질 것 같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쌓아둔 폐지를 가져가라고 할머니에게 사무실 비밀번호를 가르쳐 줬다. 그런데 쓰고 있는 가재도구를 몽땅 가지고 갔다. 직원들과 밥도 해먹고 라면이라도 끓일 요량으로 솥 몇 개, 수저 몇 벌 등을 갖춰두었었다. 깨끗이 닦아두지 않았더니 버리는 것으로 알았나 보다. 사무실에서 가져간 가재도구가 쇠붙이라서 횡재했다고 감사의 말을 거듭했다. 온종일 다녀도 몇천 원 벌기가 쉽지 않고 헛걸음하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얼마 전에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본 ..

근* 글 2018.04.04

어깨가 아파요-김근혜

어깨가 아파요 김근혜 요즘 아이들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늘 피곤함에 지쳐 있는 어두운 모습이다. 깔깔거리며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이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늘 허덕인다. 저녁 7시에 집에 돌아간다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만나고는 적잖이 놀랐다. 조그마한 어깨에 매달린 책가방이 아이를 땅으로 자꾸만 내려 앉힌다. “어깨가 아파요”라는 말에 무심히 지나칠 수 없어서 책가방을 들어주었다. 묵직하니 등짐 같다. 비단 그 아이만의 얘기는 아니다. 내 아이의 일이고 세상 모든 아이의 말이다. 세상 짐에 짓눌려 있다는 말 같아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래, 너희가 아픈 건 어른들 탓이야.’ 이 학원, 저 학원을 돌다가 해가 뉘엿해질 무렵에야 귀가하는 아이가 남의 일 같지 ..

근* 글 2018.04.04

이웃 죽·이·기-김근혜

이웃 죽·이·기 김근혜 지인으로부터 사후, 장기기증을 하기로 서약했다는 말을 듣고 감동하였다. 나도 생각은 있었지만, 선뜻 내키지 않아서 망설였다. 한 사람의 장기기증으로 아홉 명을 살릴 수 있다니 대단한 일임은 틀림없다. 작은 베풂이 소중한 이웃을 살릴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일이 있을까. 일기장을 뒤적이다 ‘나눔’이란 글에 시선이 갔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고부터 마음이 팍팍해졌다는 반성의 글이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눈시울이 먼저 뜨거웠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쪼개서 나보다 못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손길을 보탰었다. 내 형편이 닿지 않으면 동사무소 복지과를 찾아가서 그런 사람들의 실태를 알리기도 했다. 그랬던 가슴이 왜 이리 냉랭해진 것일까. 내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것은..

근* 글 2018.04.04

청춘 사진관-김근혜

청춘 사진관 김근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차’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늙수그레한 영감님과 낡은 카메라가 시야에 들어왔다. 간판 이름과 건물만 보고 현혹된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었다. 사람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내가 그때만큼 힘든 적이 없었다. 머리에서는 손이 나와 슬며시 등을 떼밀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니 나가라고 재촉했다. 예의란 놈이 불쑥 끼어드는 바람에 엉거주춤 들어서고 말았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라서 상처를 받을까 봐 그냥 주저앉은 것이 탈이 났다. 영감님은 두 컷 찍고는 다 찍었으니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찍어달라고 했더니 돈이 더 든다고 했다. 그러면 포토샵으로 ..

근* 글 2018.04.04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김근혜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김근혜 내 차례가 되었다. 생애사를 절반도 읽지 않았는데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봇물이 터지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내 옆에 앉은 그녀가 남편 얘기를 하기 전까지는 평온하기만 했다. 그녀는 부잣집 마나님처럼 아주 고왔다. 젖은 땅이라곤 한 번도 밟고 살았을 것 같지 않은 온화한 모습이다. 그녀 남편은 직장이 없어서 놀고 있는 처지다. 먹을 것이 없어 아등바등하면서도 돈을 빌려 술을 마시고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주정도 하지만 그녀는 언젠간 남편이 변할 거라며 기도만 한다고. 그녀가 흘려야 할 눈물이 내 팍팍한 삶과 만나서 이입되었나 보다. 감추어두었던 아픔이 요동치며 다투어 흘러내렸다.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어쩌면 내가 믿는 신께서 이런 기회..

근* 글 2018.04.04

책의 현주소-김근혜

책의 현주소 김근혜 “문자왔숑.” 반가운 마음도 잠시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찬물 세례가 얼굴로 쏟아진다. “정기구독은 무립니다. 앞으로 책은 보내지 말아 주세요.”, “구독 기간이 끝나면 향후 책은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책을 받는 일이 언제부터 불쾌한 일이 되었을까. 번거롭고 귀찮은 존재로 전락했을까. 형편없는 물건 받은 것처럼 짜증 섞인 어조다. 보낸 사람의 얼굴을 생각해서 유순하게 말할 수는 없을까. 한 달에 몇 권을 받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이해는 가지만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려서 정중하게 거절한다면 유쾌한 인간관계가 되지 않을까. 그래도 “고맙습니다.”라는 문자로 대신한다. “누가 책을 보내라고 했나, 오는 책이 너무 많아서 읽을 시간이 없다, 책 같지도 않은 책은 뜯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근* 글 2018.04.04

6월의 江-김근혜

6월의 江 김근혜 6월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영령들과 참전용사들의 뜨거운 피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파트 담 너머로 붉게 핀 장미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아픔 없이 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충혼탑을 보며 숙연해지는 이유도 그들의 고귀한 생명으로 지켜낸 나라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6월 25일이면 아픈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던 날이니까요. 안동에서 살던 작은아버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학도병으로 총을 들고 전쟁터로 나갔고 황해도 해주에서 살던 어머니는 남하하다가 가족과 생이별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동족상잔의 희생자입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의 아픔과 어머니의 슬픔을 함께 가슴에 안고 살았습니다. 작은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면 지금은 아흔을 바라보는 ..

근* 글 2018.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