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60

초부樵夫 / 김순경

느닷없이 사진 하나가 카톡에 올라왔다. 앙상한 고춧대가 어설프게 얹혀 있는 낡은 지게였다. 수확이 끝난 황량한 밭 가운데 목발을 내려놓고 가늘고 긴 지겟작대기에 몸을 의지한 채 홀로 서 있다. 주인을 기다리는 사진 속의 지게가 유년 시절을 불러온다. 입대를 앞둔 작은형님이 말했다. 내일은 도시락을 준비해 나무하러 간다고. 동생들만 남겨두고 가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매사에 욕심을 냈다. 토담이 있던 자리에는 시멘트 불록으로 담장을 쌓고 비가 많이 와도 문제없도록 장독대도 손질했다. 매년 방학만 되면 가래톳이 생기고 발바닥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산을 오르내렸지만, 점심을 준비해간 적은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궁금한 점이 많아도 형님의 결정을 그냥 따랐다. 그날은 밤새 바람이 매섭게 불었..

문의에서 무늬를 읽다 / 고경숙

대청호 앞에 서 있다. 두서없이 끌고 온 길들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지도에서 영원히 삭제된 옛 문의 마을을 휩쓸고 가는 바람살이 맵다.. 넓디넓은 호수를 돌려가면서 본다. 파리한 하늘을 담아낸 호수가 청동거울이다. 빛을 잃어 녹슬어가는 나를 희미하게 비춰낸다. 삭풍이 물 위를 흩뜨리자 호수 가장자리로부터 뻗어나간 잔물결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호면湖面에 반사된 햇빛은 다시 미세한 각도로 박히고, 튕겨져 나간 틈으로 산산조각 나 반짝인다. 베어지고 할퀸 상처들이 눈부시다. 희뜩희뜩 잠겼다 떠오르는 은빛 물결들, 빛과 그림자로 연신 파닥거린다. 물살의 행간마다 중첩된 빛살문양이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이다. 윤슬은 수몰 마을이 존재감을 알리는 몸짓일까. 어둔 물속에서 밀어올린 파문들이 몽환적이다가 돌연 쓸쓸함으..

사고뭉치 / 김이랑

질문을 던졌다. "어떤 고기에 '어'를, 어떤 고기에 '치'를 붙일까. 갈치, 문어처럼" 친구는 종교와 관련지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비늘 있는 고기는 '어'를, 없는 고기는 '치'를 붙였다는데, 문어는 '문치'로, 오징어는 '오징치'로 불러야 맞지 않나?" 막걸리 한 잔 들이켠 친구가 생각에 잠겼다. 말장난하듯 나는 또 질문을 이었다. "양아치, 장사치라고, 사람에게도 '치'자를 붙이는데, 사람에게 비늘이 없다고 그럴까?" 여기서부터는 가벼운 질문이 아니라 토론이다. 더 나아가면 윗물은 '士' 아랫물은 '치'를 붙이던 시절의 사농공상을 따져야 한다. 족보까지 들먹여 자칫 조상을 욕되게 할 수도 있다. 이쯤에서 멈추고 일상 이야기로 돌아갔다. 난들 밑두리콧두리 그 까닭을 캐보았겠는가. 꼴 따라 버..

모루 / 윤진모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났다. 추석을 앞두고 선산에 벌초하러 간 이튿날 날도 새기 전 아내로부터 날아온 소식이었다. 8남매 가운데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마디의 유언도 남기지 않는 쓸쓸한 퇴장이었다. 아파트 16층 집에서 염하였다. 운명하기 4년 전 어머니는 불의의 사고로 병원 영안실에 빈소를 차렸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져 몸져누운 안방에 마련했다. 방 한가운데 병풍을 치고, 소렴, 대렴을 마쳤다. 형제들은 한쪽에서 염습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었다. 천주교식으로 장례하여 별다른 복장이라든지 상식 같은 건 아예 차리지 않았다. “5년이나 누워 지낸 망자가 욕창도 하나 없네.” 염을 하던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옆에서 거들던 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른쪽 엄지발가락 옆에 탁구공..

바람든 무로 굴러 본 세상 / 권남희

무는 잘 보관해야 한다. 신문지에 꼭 싸서 두어도, 비닐 랩으로 싼 후 냉장고에 갈무리해 두어도 일주일 이상 지난 뒤 잘라 보면 바람이 들거나 물러 있다. 무는 양상추나 샐러리 등 비싼 야채처럼 귀한 대접을 받지는 못하지만 요리를 할 때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다. 국물이나 매운탕을 시원하게 맛낼 때나 생선 찜, 갈비찜, 설렁탕에 곁들여 먹는 큼직한 깍두기, 갈비집에서 빼놓지 않고 내놓는 무채, 초절임 무쌈, 포기김치 담글 때 켜켜이 박는 무채 등 갖가지로 변신한다. 대충 보관해 두었다가 괜찮겠거니 하며 요긴하게 쓸려고 꺼내 보면 겉모습은 틀림없는 무인데 속은 구멍이 숭숭 뚫려 솜방망이가 되어 있다. 꼭 무로 요리를 해야 제 맛이 나는 경우에 무는 그렇게 망가져 있다. 바람든 무는 무슨 요리를 해도 아무런 ..

시간을 맞추다 / 김응숙

비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모르더라도 나는 일찍이 상황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장소는 부산역 광장이었다. 역 광장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서 있었는데 초침이 어찌나 굵은지 내 팔뚝만 했다. 시간을 끌고 가는 기중기처럼 그 초침은 힘겹게, 그러나 절도 있게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은 그 시계탑 앞에서 잠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힐끗 한 번 올려다보고는 그 앞을 지나쳤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시간을 재촉했고,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비교적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걸었다. 둥근 역 광장에는 제각각 다른 간격으로 찍힌 그들의 발자국들이 시계탑을 중심으로 둥글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차를 타기 전날 밤에는 꼭 기차를 놓치는 꿈을 꾸었다. 출발 ..

나목을 내다보는 시간/김서령

내 등뒤에 나목으로 이뤄진 숲이 있다. 저 나무들은 아마도 참나무일 것이다. 누가 심은 게 아니라 원래 이 땅에서 절로 돋아난 나무들. 참나무에 꿀밤이 열리면 꿀밤나무다. 도토리를 꿀밤이라고 부르지 상수리라 부르는 건 들은 적이 없는데 나무일 땐 도토리나무보다 상수리나무라고 부르는 빈도가 더 높은 건 왜일까(난 아직도 세상에 이렇게 모르는 것 투성이다). '참'이라니, 그 외의 다른 나무는 '거짓'나무라도 된다는 뜻일까. 전에 꿀밤 나무에 관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산에 꿀밤이 열리면 그걸 다람쥐가 먹고 꿀밤을 먹고 사는 다람쥐를 오소리 같은 좀 큰 짐승이 잡아먹고 오소리를 잡아먹는 너구리같은 더 큰 짐승을 또 호랑이가 잡아먹고, 그런 먹이사슬의 고리가 제대로 꿰어지자면 맨 아래사슬엔 꿀밤나무의 존재가 ..

장마 / 심선경

비 내리는 날은 낮부터 불콰하게 취하고 싶다. 어쩌면 정작 술 취하고 싶은 것은 내가 아니라 무료한 나의 나날들일 것이다. 비에 젖어 한결 선명해진 원고지 칸 같은 보도블록을 따라 걷는다. 서툴고 어설픈 보행으로 비틀거리며 잘못 써온 일상들이, 빗물을 게워내는 보도블록처럼 울컥울컥 솟구친다. 이런 날은 병원 진료 때 의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고장 난 몸이 낡은 가죽 부대 속에서 삐져나와 뼛속까지 침투한 통증을 슬그머니 건네주고 간다. 삶이란 하나의 거대한 착각. 내 좁은 시야로는 그 큰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용을 쓰다보니 온몸과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욱신거린다. 장마철 소나기는 항상 비를 피해 뛰는 내 발걸음보다 먼저 당도했다. 삽시간에 빗줄기는 시야를 가린다. 시커먼 먹구름 사이로 번쩍하고 나..

0.5평, 그 무한한 공간/장미숙

움직임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팔을 위로 올릴 수는 있지만, 옆으로 뻗으면 사방에 걸리는 것 투성이다. 다리를 옆으로 벌릴 수는 있지만, 앞뒤로 놓으면 구부려진다. 한 평도 되지 않은 공간, 0.5평에 갇혔다. 그렇다고 영혼까지 가둘 것인가. 오늘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숲을 주위에 채워 넣어 보자. 종이컵 옆에 느티나무 한그루를 펼치고 커피머신 위에는 새파란 하늘을 드리운다. 이왕이면 몽글몽글한 구름도 끼워 넣어야지. 의자는 어디에 놓을까. 니스칠이 선명한 새 의자는 별로다. 칠이 벗겨지고 사람의 체온이 밴 낡은 의자가 좋겠다. 소형 냉장고 옆에 의자를 밀어 넣는다. 야생화와 웃자란 풀들도 빠질 수 없으니 발밑에 수북하게 깐다. 주변에 올망졸망한 나무들을 배치하고 울타리도 만들어보자. 바람이 옷자락을 휘..

몸시詩 / 이은희

아이들이 후미에서 와글거렸다. 달려가 보니 말라죽은 나무 앞이다. 뭉툭하게 잘린 표면에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한 아이가 다가가 손가락으로 왼쪽 구멍을 후벼댄다. 마치 자신의 콧구멍을 후비는 양 얼굴을 찌푸린다. 지켜보던 애들이 까르르거린다. 나무에 돌기가 돼지코를 쏙 빼닮았다. 사진기를 들여대는 내게도 콧김을 내뿜을 태세다. 나무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일으키며 자지러질 수밖에 없는 동물의 형상이었다. 방금 내가 아무 의식 없이 그 옆을 스쳐간 고사목이다. 평생 난쟁이로 키운 몸피가 한 아름이나 될까. 그 흔한 푸른 바늘잎 한 잎도 없다. 몸채가 미끈하게 뻗은 나무도 아니다.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듯 허옇게 메말라 길목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나무가 뿌리내린 곳이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목이니 거치적거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