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0.5평, 그 무한한 공간/장미숙

테오리아2 2022. 9. 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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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팔을 위로 올릴 수는 있지만, 옆으로 뻗으면 사방에 걸리는 것 투성이다. 다리를 옆으로 벌릴 수는 있지만, 앞뒤로 놓으면 구부려진다. 한 평도 되지 않은 공간, 0.5평에 갇혔다. 그렇다고 영혼까지 가둘 것인가.

 

오늘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숲을 주위에 채워 넣어 보자. 종이컵 옆에 느티나무 한그루를 펼치고 커피머신 위에는 새파란 하늘을 드리운다. 이왕이면 몽글몽글한 구름도 끼워 넣어야지. 의자는 어디에 놓을까. 니스칠이 선명한 새 의자는 별로다. 칠이 벗겨지고 사람의 체온이 밴 낡은 의자가 좋겠다. 소형 냉장고 옆에 의자를 밀어 넣는다. 야생화와 웃자란 풀들도 빠질 수 없으니 발밑에 수북하게 깐다. 주변에 올망졸망한 나무들을 배치하고 울타리도 만들어보자. 바람이 옷자락을 휘날리고 새소리 물소리가 숲으로 인도한다.

 

손은 재바르게 식빵을 펼친다. 빵에 소스를 바르고 정해진 재료를 올린다. 각을 잡아 예리하고 정확하게 식빵을 자른다. 유산지로 감싸 직사각 통에 담고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 반복된다. 중간중간 음료를 만드느라 뒤돌아서면 몸은 180도 회전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360도 회전이다. 샌드위치와 음료를 번갈아 만들려면 몸을 돌리는 일이 반복된다.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더니 맨홀 뚜껑만 한 원안에서 종일 돌고 있다.

 

능률을 위해 설계된 좁은 공간이 나의 일자리다. 다시 야채를 손질해 넓은 통에 담고 닭고기를 잘게 찢는다. 토핑을 고루 얹고 소스를 담아 뚜껑을 덮으면 샐러드가 완성된다. 단순한 듯하지만, 재료의 정량을 지켜야 하고 미적인 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음식에 이물질이 없는지도 찬찬히 살펴야 한다. 우유를 스팀 할 때나 뜨거운 물에 델 수 있으니 허둥거리거나 덤벙거리면 낭패다. 유리컵이나 사기그릇을 다루기에 늘 주의가 필요하다. 침착함과 차분함, 빠른 손놀림을 유전으로 받은 건 다행이다. 어쩌다 보니 성격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보통의 직장이라면 차를 마시거나 점심 먹을 시간이 주어지겠지만 내게 그런 건 없다. 바쁜 날은 지하에 있는 화장실을 갈 수 없어 참아야 하고, 조금 한가한 날은 두어 번 더 갈 수 있는 정도의 여유를 가진다.

 

누군들 현재에서 미래의 삶을 예측할 수 있겠는가. 나 또한 과거에 지금의 생활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유까지는 없을지라도 중년이 되면 평범에 가까운 궤도에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궤도를 이탈했다. 이상징후가 있긴 했지만 설마 하는 사이, 휘청거렸다. 잠시 스쳐 가는 간이역이라 생각했는데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막연한 희망을 찾고 있다. 노동을 팔며 대책 없이 나이만 먹을 줄도 몰랐다. 그게 생의 함정이었다. 함정까지는 몰랐다 하더라도 약간의 예측은 가능했다.

 

하지만 야무지거나 이기적이지 못했던 성격과 동정심이 현재를 만들었다. 누구의 탓도 아닌, 나를 이곳에 가둔 건 바로 나다. 갇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시시포스의 바위가 내게로 옮겨오면서부터다. 그렇다 한들 일 따위 무섭지 않다. 문제는 일이 아닌 나이다. 마음은 늙지 않아도 몸은 늙어간다. 그리고 시간이 많지 않다.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끝없는 수다가 날 구원할 수는 없었다. 순간의 권태와 지겨움을 깨뜨릴 수는 있으나 영혼의 정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추구하는 문학은 저 높은 성전에 있는데 그곳을 오르기에는 장애물이 너무나 많았다. 곧바로 지름길을 질러가도 이번 생에 도달할까 말까 한데 돌고 돌아서 언제 가야 할지 까마득했다.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이지만 영혼까지 갇힐 수는 없었다. 작은 공간에 상상화를 펼치기 시작했다. 상상화 속에는 많은 게 담겼다. 책에서 본 내용을 이어서 펼쳐놓기도 하고, 언젠가 다녀온 곳의 풍경을 데려다 놓기도 했다. 또는 과거의 일들을 불러와 재조명하기도 했다. 머릿속에 널려있는 문장을 정리하고 단락도 만들었다. 제재를 들여다보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기도 했다.

 

산과 바다, 강과 들판, 미지의 장소가 작은 공간에 펼쳐졌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음과 쏟아지는 물소리, 우유 스팀에서 나오는 소음까지 주위는 명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는 두 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등을 폈다. 소리 속에 육체가 함몰해버리면 정신은 원두처럼 갈려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 와중에도 손이 하는 행위는 바르고 경건해야 했다.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과 건강을 채워줄 음식을 만드는 손이 엉성하면 자리는 위태하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손의 감각은 달리 말하면 영혼을 채우는 양식이다. 손은 지극히 섬세해야 하고 버티고 선 다리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뭔가에 기대거나 의지해서도 안 된다. 기대는 순간, 몸은 중심을 잃고 와르르 무너질 걸 안다.

 

안다는 건 얼마나 잔인한가. 그러나 때로는 잔인한 현실이 몸을 곧추서게도 한다. 에너지가 고갈되는 최고점에 이르면 가끔 휘청할 때가 있다. 그때 옆에 펼쳐진 상상화는 나를 붙들어준다. 낡은 의자가, 지붕이 파란 집이 말을 건넨다. 때로는 우산속에 서 있기도 하고, 바닷가 갯바위에 앉아도 본다. 오늘은 느티나무의 넓은 품에 안긴다.

 

이제 한 시간만 지나면 한 평이 아닌 무한한 허공을 가질 수 있다. 360도 틀에 박힌 회전이 아닌 자유로운 회전도 가능하다. 상상이 현실로 펼쳐진 곳을 지나가기도, 마주하기도 한다. 지금은 꽃이 만개를 기다리는 계절, 0.5평의 공간은 한동안 꽃향기로 가득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