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혜 106

어쩔, 파스/ 김근혜 수필가

거울 속에 낯선 중년 부인이 서 있다. 본 듯, 아는 듯, 마는 듯한 사람이다. 웃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한쪽 손엔 파스가 들려 있다. 그 꼴이 가관이다. 울퉁불퉁한 전라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여성 스모 선수가 전쟁터에 나가기 직전 모습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자신이 봐도 봐줄 만한 꼴이 아닌지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가끔은 벽이 돼야 하는 자신이 웃프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어깨가 자주 아프다. 근육통이 새삼스럽지 않은 나이다. 아픈 부위에 파스를 붙인다. 잠시 통증이 진정된 듯 하나 부작용으로 피부 발진이 온다. 붙어있어도 떼어내도 가렵다. 강력한 접착제는 뗄 때가 더 고통스럽다. 일방적인 사랑처럼. 사랑이 너무 뜨거우면 불에 데듯이 파스도 뜨거운 것과 함께하면 화상을 입는다. 아픔을 견디고 억지로 떼..

선, 선, 선/김근혜

선, 선, 선 정지선 앞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많은 생각이 일렁인다. 선線 하나가 있을 뿐인데 쉼표를 찍는 사람들과 차량이 선善을 지킨다. 그 선善은 질서를 위한 선線이다. 선善이 선線을 가둔다. 가끔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정지선線을 넘는 이들이 눈에 띈다. 동요가 일어난다. 걷잡을 수 없는 바람에 무단횡단을 한다. 선線이 선善을 삼키는 순간이다. 많은 선線 앞에서 선選이 갈등한다. 선線을 넘는 일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편견을 깨고 허들을 넘는 일이다. 삶은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 순간순간이 늘 선選의 선상에 서 있다. “넘지 않은 선線은 있어도 못 넘을 선線은 없다.” 여성이라는 편견과 사회적 제약을 넘어 ‘유리천장’에 저항한 여성들 얘기다. 그녀들은 왜곡된 시각과 편견을 깨고 당당히 월선越線에 성공..

어쩌자고, 이름표/김근혜

생의 서문을 읊는다. 마이크에 기름을 바른 듯 반지르르한 말이 굴러 나온다. 경매사는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마음대로 넘나들며 흥정을 붙인다. 지긋이 묵상하는 구경꾼들 등줄기에 실핏줄이 일어선다. 시간을 추리하려는 사람들의 인기척을 가만가만 듣고 있는 촛대 하나가 마음을 졸이고 있다. 한 해가 가기 전 매출이라도 올리려는 걸까. 경매사의 목소리에 고이는 힘이 만만찮다. 사람들의 잠자던 손가락이 눈을 열고 서성거린다. 물건은 전파탐지기를 매단 고래가 된다. 큰 화면으로 그를 보며 둘째손가락으로 왼쪽을 쉼 없이 클릭, 클릭하는 사람들. 마우스는 설렌다. 여체를 조각한 목각 인형에게도 극적인 장면이 나올까. 새소리마저 죽은 금요일 밤, 경매장의 열기는 뜨겁다. 잠시 쉬고 있는 나에게 DNA가 두드린다. 휴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