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혜 106

김광석 거리에서-김근혜

▲ 김광석 거리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김광석 노래가 귓전에 울려 퍼진다. 방천시장은 추석 전인데도 한산하다. 방앗간 열린 문틈으로 파리 몇 마리가 넘나든다. 졸음을 쫓고 있는 할머니의 고개가 무거운 오후이다. 방천시장은 경대병원역 3번 출구로 나와 수성교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편에 있다. 일본, 만주 등지에 피해 있던 전재민들은 해방이 되자 여기에 모여들어 장사를 시작했다. 먹고 사는 방편으로 터를 잡은 것이 시초가 되었다. 방천시장 남쪽 10m 지점에 죄수들의 채소밭과 벽돌 굽는 공장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서 옛 모습은 찾을 길 없다. 방천시장은 1960년대부터 싸전과 떡 전으로 유명세를 탔다. 번성기에는 100여 개의 점포가 즐비했던 대구의 대표 재래시..

壬寅열차 /김근혜

인임열차는 1월 1일이라는 역에서 출발합니다. 365일이라는 간이역을 지나 12월 31일이라는 역에 도착합니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이 열차를 타고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열차는 푸른 깃발을 펄럭이며 쉬지 않고 달립니다. 표를 미리 준비한 사람은 일등석에 앉아 편안히 가네요. 표를 사지 못한 사람은 미처 짜 넣지 못한 인생계획표가 어그러지듯 서서 가거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갑니다. 삼등석이지만 만족하며 가는 사람도 있고, 일등석이라도 자리가 좁다며 불평하는 이도 있습니다. 일반석에 있는 사람이나 서서 가는 사람들은 부러운 눈길로 일등석을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쉬울 것 하나 없어 보여도 부족한 게 있는지 행복해 보이지가 않네요. 일등석에 앉은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은데도 베풀기보다는 더 ..

근* 글 2018.04.04

푸네기 아리랑- 김근혜

푸네기 아리랑 - 서랍 정리를 하다 통장을 뒤졌다. 남편은 몹시 불안한 듯 보였다. 갑자기 통장을 보여 달라고 하니 슬금슬금 피한다. 이십여 년 동안 살면서 통장을 보자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럴 만도 했다.​ 아주버니는 교통사고로 한쪽 눈을 다쳐서 직장을 잃었다.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술로 나날을 보내다 고향으로 내려갔다. 시동생들은 아주버니가 자리 잡을 동안 생활비를 보태기로 했다. 동생들이 보태주는 것을 처음에는 체면치레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당연히 여겼다. 문중들의 남는 땅을 경작했지만, 경험이 없는 터라 실패를 거듭했다.​ 벼농사만으로는 별 수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듬해에는 동네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수박농사를 지었다. 몇 년 동안은 그럭저럭 수익을 냈다. ​수입이 ..

근* 글 2018.04.04

“아프지, 나도 아프다” -김근혜

“아프지, 나도 아프다” 김근혜 공감능력은 대인관계에서 중요하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자신의 기준으로 보면 타인의 삶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에서 판단하고 상대의 처지를 고려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에서 감정에 관한 관심을 주고받은 경험이 적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속상한 일을 털어놓는 상대에게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속을 뒤집어 놓는 일 또한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내 기준으로 상대를 파악하고 분석해서 판단을 내리려 한다. 상대는 어떤 해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이해해v주길 바랄 뿐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된다. 각자의 경험과 욕구가 다르고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근* 글 2018.04.04

액자를 다시 걸며-김근혜

액자를 다시 걸며 김근혜 액자를 다시 걸었다. 삼십여 년 동안 손길이 타지 않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액자를 골방에서 찾아냈다. 마음을 닦아내듯이 닦고 또 닦았다. 액자 속엔 그녀와 소풍 갔을 때의 모습이 판화처럼 담겨 있다. 중학 시절 단짝이던 친구를 삼십여 년 만에 동창회에서 만났다. 그녀와는 내리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다. 키도 비슷해서 늘 옆자리거나 앞, 뒤로 앉았다. 그녀가 왈가닥이었다면 나는 얌전이였다. 우린 2인용 자전거처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교정을 거닐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제는 주로 고등학교 진학 문제라든가 장래 희망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는 은행원이 꿈이었고 난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교정 소나무 앞에서 손을 꼭 잡고 소원을 빌었다. 어느 눈 내리던 날이었다. ..

근* 글 2018.04.04

뽁뽁이-김근혜

뽁뽁이 김근혜 요즘 뽁뽁이가 인기다. 유리나 깨지기 쉬운 물건을 싸는 포장지가 난방용 단열재로서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비닐에 볼록볼록 튀어나온 것을 장난삼아 봉숭아 씨앗 터뜨리듯 톡톡 터뜨리던 에어캡이 바람막이 노릇을 한다. 우리 집은 남향이라 태양열로 인해 낮 동안은 난방하지 않아도 추운 줄 모르고 지낸다. 저녁 한 차례만 난방해도 훈기가 돈다. 그래도 북쪽에 있는 아이들 방은 해가 들지 않기 때문에 웃풍이 좀 있다. 아이들 방에 장미꽃 그림이 있는 뽁뽁이를 붙였다. 썰렁해 보이던 방이 봄을 맞았다. 추운 겨울임에도 아이들 방은 장미향이 가득한 5월이 되었다. 뽁뽁이를 보니 주택에서 살던 때가 생각난다. 허허벌판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은 모든 것을 날려버릴 기세였다. 집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지붕을 ..

근* 글 2018.04.04

탈, 탈, 탈-김근혜

탈, 탈, 탈 김근혜 그들을 만났다. 처음 만난 그들에게선 은행 냄새가 심하게 나서 숨을 고르기 힘들었다. 음식 찌꺼기도 삶의 슬픔처럼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그런 얼굴로 활짝 웃으며 반기는 모습은 이슬을 머금은 나팔꽃 같았다. 얼결에 따라 웃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마음이 들킬까 봐 억지로 입꼬리를 추어올렸다. 넘어질 듯 달려와 반길 때면 거부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고마움에 덩달아 달려가게 되었다. 저리 반겨준 사람이 있었던가. 살붙이도 그런 적이 없었다. 이젠 그들보다 내 가슴이 먼저 뛴다. 달팽이에게 가슴이 베인 설중화 수선, 한 몸에 머리가 두 개인 샴쌍둥이 루드베키아, 탯줄이 잘린 등심붓꽃, 그들은 탈頉이 있다고 발치를 당해 여기저기 떠돌며 활착하는 꽃들이다. 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선천성 장..

근* 글 2018.04.04

“돼!”-김근혜

“돼!” 김근혜 장자는 인격화된 사람, 신격화된 사람, 성인화된 사람, 세 가지 모습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인격화된 사람이란 자기가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 즉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시대에는 자신을 알리는 것이 비즈니스다. 장자의 말이 시대에 맞지 않을 수 있으나, 명함을 받다 보면 동네 통, 반장한 것까지 상세하게 나열해서 거부감이 일 때가 있다. 적당한 범위 내에서 자신을 알리는 지혜로움이 필요할 것 같다. 자신이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인격화되지 못한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비슷하다. 자기 과시를 잘하고 영웅 대접받기를 좋아한다. 단체 생활에서는 늘 큰소리를 내며 자신의 주장을 앞세운다. 관철되지 않으면 마음이 뒤틀려서..

근* 글 2018.04.04

우산-김근혜

우산 김근혜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할머니 몇 분이 우산을 쓰고 간다. 그 옆에 어정쩡하게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따라가는 또 한 할머니가 있다. 허리까지 굽어 잰걸음도 할 수 없는 처지이다. 갑자기 내린 비로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나 보다. 함께 걷는 사람들은 우산 씌워 줄 생각은 없는지 걸음만 재촉한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너는 우산도 없느냐고 한마디 던진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감정이 섞인 말투다. 노인정에 같이 있다가 나온 것 같은데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보기가 안쓰러워서 빨리 할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우산을 씌워드릴까 하다가 마음을 더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떨어져서 걸었다. 우산도 없느냐는 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 흘려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말이..

근* 글 2018.04.04

아버지께 올리는 속건제(贖愆祭)-김근혜

아버지께 올리는 속건제(贖愆祭) 김근혜 아버지는 땅을 팔면서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렸다. 외지인이 와서 공장을 짓는다며 땅값을 비싸게 준다고 했다. 귀가 여린 아버지는 그 꾐에 계약금만 받고 땅문서에 덜컥 도장을 찍었다. 쉰을 넘긴 아버지가 맨손으로 일어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산을 잃어버린 심정이 오죽했을까. 목숨을 끊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곡기를 입에 대지 않고 벽만 보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자다가도 화가 차오르는지 가슴을 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럴 때마다 조바심이 나서 아버지 방을 기웃거렸다. 어떠한 시련과 고난이 닥쳐도 흔들리면 안 된다고 밥상머리에서 누누이 강조하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세상이 다 짐으로만 보인다며 등을 점점 바닥에 누였다. 밝은 달도 떠나고 맑은 바람도 불어..

근* 글 2018.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