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뽁뽁이-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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뽁뽁이

  김근혜

 

즘 뽁뽁이가 인기다. 유리나 깨지기 쉬운 물건을 싸는 포장지가 난방용 단열재로서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비닐에 볼록볼록 튀어나온 것을 장난삼아 봉숭아 씨앗 터뜨리듯 톡톡 터뜨리던 에어캡이 바람막이 노릇을 한다.

 

우리 집은 남향이라 태양열로 인해 낮 동안은 난방하지 않아도 추운 줄 모르고 지낸다. 저녁 한 차례만 난방해도 훈기가 돈다. 그래도 북쪽에 있는 아이들 방은 해가 들지 않기 때문에 웃풍이 좀 있다. 아이들 방에 장미꽃 그림이 있는 뽁뽁이를 붙였다. 썰렁해 보이던 방이 봄을 맞았다. 추운 겨울임에도 아이들 방은 장미향이 가득한 5월이 되었다.

 

뽁뽁이를 보니 주택에서 살던 때가 생각난다. 허허벌판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은 모든 것을 날려버릴 기세였다. 집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지붕을 붙들고 작은 몸을 더욱 움츠렸다. 이곳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의 가슴속에도 고드름이 자랐다. 창은 두툼한 비닐 옷을 입고 겨울 채비를 했다. 가끔 강한 바람에 비닐 옷이 상처를 입고 잔기침을 할 때면 얼굴이 얼얼했다. 가난한 자의 야윈 그림자는 더 시리고 아렸다.

 

산속에서의 겨울은 동화 속 거인의 집만큼이나 봄이 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봄은 언제나 완행열차였다. 그가 오기 전까지 의지할 것은 오로지 뽁뽁이뿐이었다. 보기엔 남루해도 최고의 구원자였다. 비닐 옷마저 없었다면 산속에서의 겨울은 삭막하기 그지없었으리라. 바람막이 역할을 해서 그나마 훈훈하게 지낼 수 있었다.

 

P선생님, L선생님이 계신다. 두 분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내 글을 보며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웅크린 어깨가 따뜻해지는 순간이다. 혼자 힘으로 맞설 수 없는 세상에 맞대고 살아가는 방법을 몸으로 가르쳐 주시는 바람막이다. 그런 멘토를 가진 나는 행복하다. 따스한 가슴을 가진 선생님들이란 걸 알았을 때 나는 그분들을 더 높이 보게 되었다.

 

주변에 좋은 분들이 계셔서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그중에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 인간 삶의 계절이란 책에서 좋은 멘토를 갖지 못한 것은 부모 없이 자라는 고아와 같이 불행이며 비극이다.”라고 했는데 난 고아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체온을 보태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살만한지 모른다.

 

손가락이 다섯 개인 것은 서로 깍지를 끼고 살아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분들은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 같은 엄지이고, 어머니 같은 검지이다. 거친 세상에서 깍지를 끼워준 고마운 분들이다. 마른 세상에 혼자가 아니어서 참 든든하다. 손 내밀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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