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숙수필가 9

0.5평, 그 무한한 공간/장미숙

움직임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팔을 위로 올릴 수는 있지만, 옆으로 뻗으면 사방에 걸리는 것 투성이다. 다리를 옆으로 벌릴 수는 있지만, 앞뒤로 놓으면 구부려진다. 한 평도 되지 않은 공간, 0.5평에 갇혔다. 그렇다고 영혼까지 가둘 것인가. 오늘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숲을 주위에 채워 넣어 보자. 종이컵 옆에 느티나무 한그루를 펼치고 커피머신 위에는 새파란 하늘을 드리운다. 이왕이면 몽글몽글한 구름도 끼워 넣어야지. 의자는 어디에 놓을까. 니스칠이 선명한 새 의자는 별로다. 칠이 벗겨지고 사람의 체온이 밴 낡은 의자가 좋겠다. 소형 냉장고 옆에 의자를 밀어 넣는다. 야생화와 웃자란 풀들도 빠질 수 없으니 발밑에 수북하게 깐다. 주변에 올망졸망한 나무들을 배치하고 울타리도 만들어보자. 바람이 옷자락을 휘..

팽나무/장미숙

그 집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범상치 않은 형태의 나무였다. 나무는 기와집을 배경으로 뒤꼍에 당당히 서 있었다. 예사로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나무가 아니었다. 시원스레 가지를 쭉쭉 뻗지도 않았고,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드리운 것도 아니었다. 갓 피어나기 시작한 청춘의 파릇함도, 장년의 노련한 능청스러움도 없었다. 깊은 연륜으로 다져진 범접할 수 없는 기가 느껴졌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는 늙은 몸이되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마치 세상을 달관한 신선처럼 신비한 기운이 뻗쳐 나왔다. 나무는 뒤틀린 채 완벽하게 둘로 갈라진 형태였다. 멀리서 보면 마치 두 그루가 마주 보고 있는 듯했다. 밑동을 살펴야만 한 그루의 나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무는 서로 바깥으로 원을 그리면서 안..

샌드위치를 싸며 / 장미숙

칼을 들고서 경계를 생각한다. 남겨야 할 것과 버릴 것을 가늠 중이다. 사는 일이란 매일 뭔가를 버리고 남기는 일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도마 위에 아직 상품의 가치가 없는 가공 전의 제품이 놓여 있다. 이제 막 재료를 조합해 놓은 원형의 상태, 다듬지 않은 물건이다. 양은 오히려 넉넉하다. 그대로 판매한다면 수고를 들이지 않고 음식물쓰레기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정해진 규격과 모양이 있으니 가공을 거쳐야 상품으로 거듭난다. 성질과 감촉, 색과 크기가 다른 재료들은 이제 하나의 맛으로 통일될 것이다. 글쓰기에서의 주제와 다를 바 없다. 소재와 제재, 구성과 단락, 문장과 어휘가 어우러져 의미를 생성하듯이 말이다. 주제가 중심을 잡아야 작품이 안정적이다. 샌드위치도 각각 독특한 맛이 있다. 양과 크..

새벽, 흔들리다 / 장미숙

​ 팽팽한 대치다. 십여 분의 짧은 시간이 무겁고도 가볍게 흔들린다. 이불을 돌돌 말고 불편한 자세로 웅크린 시간, 벽과 유리를 사이에 두고 차가운 어둠과 따뜻한 어둠이 공존(共存)하고 있다. 푸른색 어둠에 갇힌 밖의 소리가 들려온다. 문명과 자연의 마찰음, 추위와 숨바꼭질하는 바람 소리, 뜨거운 심장이 뿜어내는 누군가의 입김, 어둠에 익숙한 어느 짐승의 울음소리, 어둠 속에서도 팔팔하게 살아있는 소리, 그것들은 내게 혼자가 아니라고 부추긴다. ​ 그러나 이내 따뜻한 어둠의 소리가 들려온다. 규칙적이고 안정된 숨소리, 낮게 코 고는 소리, 이불 구겨지는 소리, 안락하고 평온한 소리. 그것들에 귀를 기울이자 팔다리가 풀어진다. 무장 해제된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방바닥의 온기는 좀체 몸을 놓아주려 하지..

카테고리 없음 2022.02.11

깊은 방/ 장미숙

‘덜컹’ 문이 닫히면 빛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전등 스위치를 찾느라 낮에도 벽을 더듬거려야 했다. 센서 등도 없고, 불빛이 흘러나오는 곳도 없었다. 불은 필요에 의해서만 밝힐 수 있었다. 여자와 아이는 차가운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작은 유리창을 통해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차가 지나갔으며 자전거 바퀴가 굴러갔다. 창이 워낙 작아 단면만 보일 뿐 위의 세상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도 햇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곳이었다. 아이는 중학생, 제멋에 겨워 한창 까불 때이건만 어둠에 갇혀 버렸다. 벽에 발길질하는 아이를 여자는 바라보았다. 아이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원장님은 나만 미워해. 맨날 야단만 치고….” 아이는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집에 가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여자는 그런 아이가 불안했다. ..

카테고리 없음 2021.09.22

옆집 남자/장미숙

저 늙은 남자는 오늘도 나를 슬프게 한다. 등이 조금만 덜 굽었더라면,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손이 조금 덜 뭉툭했더라면, 인사할 때 고개를 너무 숙이지 않는다면, 한쪽 다리를 절지 않는다면 나는 덜 슬프겠다. 하지만 그는 등이 살짝 굽었고, 키는 보통에도 미치지 못하고, 손은 거칠고 투박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주인에게 고개를 너무 깊이 숙여 인사한다. 그리고 걸음걸이가 약간 부자연스럽다. 자신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지 때로 궁금하게 만든다. 그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닐 때마다 그의 어깨를 쫙 펴주고 싶고, 고개를 깊이 숙이지 않도록 뒷덜미라도 붙잡고 싶다. 오늘도 그를 보았다. 내 자전거가 그의 앞을 지나갈 때 그는 건물 사이 골목에 있었다. 매일 같은 옷에 같은 가방에 같은 신발을 신고 주머니..

가짜와 진짜/장미숙

그녀의 허리가 두루뭉술하다. 허리에 동여맨 앞치마가 중년 아저씨 바지처럼 밑으로 축 처졌다. 앞치마를 튕겨내 버린 뱃살이랑이 두둑하다. 허벅지도 터질듯하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도 살이 붙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변해버린 그녀의 몸이 오늘따라 유난히 둔해 보인다. 오전 열 시가 안 되었건만 그녀는 벌써 빵을 세 개째 먹어치웠다. 그리고 입가심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유난히 음식을 빨리 먹는다. 빵 한 개가 사라지는 건 불과 몇 초,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는 말이 딱 맞다. 그녀의 자제력은 오늘 통제 불능이다. 시작하면 제어가 안 된다. 결국, 포만감을 느끼고서야 멈추는 그녀의 식욕이 무섭다. 아마 생리가 곧 시작되려나 보다. 올해 마흔 살이 된 그녀, 아담한 키에 귀여운 얼굴을 가졌..

아주머니와 카스테라-장미숙

오랜만에 온 아주머니는 다리를 절룩거리고 있었다. 한발을 질질 끌다시피 가게로 들어서는 아주머니가 카스텔라 두 봉지를 들고 계산대로 왔다. 그이는 내가 묻기도 전에 한숨부터 풀어놓았다. “아유 힘들어, 다리가 아프니까 더 힘드네.” 뭔가를 갈구하는 눈빛, 아주머니의 눈에 가득 들어찬 무력함을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잘 웃지 않는 아주머니를 대할 때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늘 깊은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과연 그 얼굴에 웃음이란 게 들어있기나 한 걸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다리는 왜 그러세요?”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욕탕에서 넘어졌는데 뼈가 금이 갔다나 뭐래나. 힘들어 죽겠어요. 아유, 힘들어.” 아주머니는 그간의 일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난타-장미숙

예고도 광고도 없다. 무대 장치며 조명도 없다. 음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의상이며 분장도 자유롭다. 자신의 개성과 취향대로 연출한다.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다. 모두가 주연이면서 조연이다. 감독의 역할도 중요치 않다. 누군가 그날의 공연을 끌고 가면 그만이다. 관객 수나 관객의 취향을 아랑곳하지 않는 게 이들 공연의 특징이다. 첫 공연은 열 명으로 구성된 삼사십 대의 젊은 엄마들이다. 그녀들에게는 초등학생인 자녀가 있고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에서 공개수업이나 회의가 열렸던 모양이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 필요 이상의 적극성을 보인다. 자식에 대한 관심은 활력과 비례하는지 그녀들 얼굴에는 통통 튀는 건강미가 살아 있다. 공 연은 비극이기보다 희극적 요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