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혜 수필 7

김광석 거리에서-김근혜

▲ 김광석 거리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김광석 노래가 귓전에 울려 퍼진다. 방천시장은 추석 전인데도 한산하다. 방앗간 열린 문틈으로 파리 몇 마리가 넘나든다. 졸음을 쫓고 있는 할머니의 고개가 무거운 오후이다. 방천시장은 경대병원역 3번 출구로 나와 수성교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편에 있다. 일본, 만주 등지에 피해 있던 전재민들은 해방이 되자 여기에 모여들어 장사를 시작했다. 먹고 사는 방편으로 터를 잡은 것이 시초가 되었다. 방천시장 남쪽 10m 지점에 죄수들의 채소밭과 벽돌 굽는 공장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서 옛 모습은 찾을 길 없다. 방천시장은 1960년대부터 싸전과 떡 전으로 유명세를 탔다. 번성기에는 100여 개의 점포가 즐비했던 대구의 대표 재래시..

壬寅열차 /김근혜

인임열차는 1월 1일이라는 역에서 출발합니다. 365일이라는 간이역을 지나 12월 31일이라는 역에 도착합니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이 열차를 타고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열차는 푸른 깃발을 펄럭이며 쉬지 않고 달립니다. 표를 미리 준비한 사람은 일등석에 앉아 편안히 가네요. 표를 사지 못한 사람은 미처 짜 넣지 못한 인생계획표가 어그러지듯 서서 가거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갑니다. 삼등석이지만 만족하며 가는 사람도 있고, 일등석이라도 자리가 좁다며 불평하는 이도 있습니다. 일반석에 있는 사람이나 서서 가는 사람들은 부러운 눈길로 일등석을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쉬울 것 하나 없어 보여도 부족한 게 있는지 행복해 보이지가 않네요. 일등석에 앉은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은데도 베풀기보다는 더 ..

근* 글 2018.04.04

사진, 또 하나의 언어-김근혜

사진, 또 하나의 언어 김근혜 징후다. 답답해서 밥이 목구멍에 걸린다. 산맥들이 꿈틀거리며 탈출을 꿈꾼다. 좋지 않은 호흡기 탓에 서랍 안에서 꿈이 늙을 때가 많다. 방랑벽이 있는 사람이 겨울을 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견디는 재간은 나이인 것 같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무작정 시동을 건다. 이사 온 지 삼 개월이 지나가는데 낯설다. 감기로 인해 실내에서 지내다 보니 가을이 떠나고 없다. 직장을 그만둔 후론 사진을 찍는다. 영혼이 피사체에 빠져 일체가 될 때 느끼는 희열이 나를 바깥으로 밀친다. 누군가가 지나쳐버린 하루를 담고, 내가 사랑하는 파도도 넣으며 위안을 얻는다. 검은 상자 안에서 빨간 알약, 파란 펭귄, 다 닳은 지팡이가 나온다. 그들의 호흡이 멈추기 전에 재빨리 하드웨어에 저장한..

근* 글 201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