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에 대해 많이 알아서 법명(法名)이 지공(知空)이냐’는 나의 물음에 미소 띤 얼굴을 붉히며 “아는 바가 너무 없어 지공이에요.” 샘가에 앉아 저녁 설거지를 하던 스무 살 남짓 비구니 스님은 들릴 듯 말 듯 작게 말했다. 반듯한 이마에 그린 듯 고운 눈썹은 정갈했고 파랗게 깎은 머리와 맑은 눈, 그리고 단정한 입 매무새는 수행자의 모습이 역력했지만 발그레한 두 뺨은 아직도 앳된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 학교 도서관에서 여행 계획을 세우던 나는 무심코 집어 든 낡은 잡지 속에서 진귀한 사찰 하나를 찾아냈다. 란 제목의 특집기사엔 사진도 여러 장 실렸었는데, 여기저기 늘어선 석불과 석탑의 모습은 놀라웠고 특히 산 중턱에 자리 잡고 누운 한 쌍의 거대한 와불(臥佛)에선 도저히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