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모난 것이 둥글다. /최민자

테오리아2 2022. 12. 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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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좋다는 말을 듣는 이들이 있다. 성격이 둥글둥글 원만하다는 뜻이다. 원만(圓滿)이란 원()에서 발원한 말이지만 기실 원은 원만하지 않다. 생각만큼 너그럽고 편하지도 않다.

 

사각형이나 육각형 형제들은 담 하나를 공유하며 사이좋게 붙어 지내기도 하고, 저희 몸을 밀착시켜 최대한 틈새를 좁힐 줄도 안다. 둥근 것들은 못 그런다. 부드럽고 유연해보여도 친화력이 없고 협심할 줄을 모르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쌤통들이다. 스스로를 최고의 미녀라 여기는 두 여인처럼, 마주쳐도 흘끗 스치고 돌아설 뿐, 진득하게 동행하는 법이 없다.

 

냉장고 선반 위에 수박 한통이 들어가려면 김치통과 찬통들이 줄줄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원통 찬합이 사각찬통보다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고, 맥주캔이나 음료수병들은 아예 딴살림을 내주어야 한다. 야채칸 안의 자두와 복숭아도 행여 부딪쳐 제 살이 멍들세라 저만치 좀 떨어져. 숨 막히단 말이야!’ 신경전을 벌이며 돌아 앉아 있다. 존재의 절대 공간을 필요로 하는, 까다롭고 배타적인 족속들이다.

 

모난 세상과 화친하지 못하는 둥글이들을 바라볼 적마다 둥글다는 것은 본디 천계의 속성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곤 한다. ‘신은 직선을 모른다했던 가우디(Antonio Gaudi Cornet)의 통찰이나,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동양적 우주관을 애써 들먹일 필요도 없이, 신의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도형은 세모도 네모도 아닌 동그라미일 것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천의무봉의 동그라미. 동그라미도 신처럼 홀로 있어야 완벽한 존재의 빛을 발한다.

 

신전이나 의사당 같은 위엄있는 건물에는 각기둥보다 원기둥이 어울린다. 원기둥들은 저희들끼리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서 있어야 위풍당당하고 장엄해 보인다. 우리 옛 건축물의 기둥도 민가에서는 방주(方柱), 궁궐에서는 원주(圓柱)를 사용하도록 했고, 기둥을 좌우로 연결하는 도리 또한 반가(班家)에서는 굴도리를, 민가에서는 납도리를 쓰는 게 상례였다. 벽 속에 파묻혀 군말 없이 지붕을 떠받치는 것들은 각기둥들이고, 고고하게 비켜 서 존재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것은 원기둥들이다.

 

사슬로 꿰어 묶어두지 않으면 어디론가 달아나 숨으려하는 구슬들, 모난 세상에 발붙이기 싫다는 듯 끝없이 떠나고 싶어 하는 바퀴들, 발길에 엉덩이가 채여서라도 하늘로 솟구치기를 기다리는 공들... 천상의 규격에 길들여진 둥굴이들이 지상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은 귀소본능과도 같은 그리움 때문일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본디 하늘의 천사였다가 무슨 잘못으론가 지상으로 내어 쫒긴, 서글픈 유배객들이 아닐까. 계란이나 장식접시처럼 시자(侍子)의 도움 없이는 서 있지 못하는 귀하신 몸들 또한 신의 나라에서 귀양 온 태생적 귀골 같기도 하다.

 

모난 것끼리 어깨를 곁고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세상. 모난 것들의 세상에서 둥근 것들은 외롭다. 붙고 닿는 것을 싫어하다보니 주변과 조화롭게 공존할 줄도 모른다. 절대로 흠을 보이지 않는, 좀체로 흠이 없을 것 같은 완벽주의자들과 가까이 사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로움도 괴로움도 안으로 여며 넣고 의연한 척 안간힘을 쓰지만 한 귀퉁이가 헐어져내릴까봐 내심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자칫 허방으로 굴러떨어지기 쉬운 그들을 묵묵히 보듬고 받쳐주는 것은 굴도리 밑의 장혀와 같이 각지고 모난 존재들이다. 둥근 것이 모나고 모난 것이 둥글다. 역설적인 세상, 세상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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