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두두/김근혜

테오리아2 2023. 7. 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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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

 

 

 

  두두가 왔다. 그 아이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탐험가이다. 그저 스치는 바람 한 점마저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코를 벌름거린다. 무엇이든 입에 넣고 물어뜯고, 질겅거리며 씹는다. 집안 전체가 놀이터다. 구석구석을 돌며 어지르고 자신이 점령한 곳은 전리품이라도 되는 듯 방점을 찍는다. 영역이라고 표시하는데 내가 주인이라고 소리 지른들 알 리가 있겠는가. 묵묵히 뒤처리한다. 뻔뻔하고도 당당하다. 화가 나다가도 멜라닌 색소가 가득한 까만 눈과 마주치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두두는 자신이 상전인 줄 안다. 겨우 4개월 된 강아지와 자리다툼이 싫어서 내 자리를 기꺼이 양보한다. 자리란 것이 꿰차고 앉으면 주인이고, 한번 앉은 자리를 순순히 내놓을 자가 있겠는가. 어떻게든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가. 굳이 정치판을 말하지 않아도 바로 내 집의 판세가 그러하다. 인심 쓰듯 내주고 뺏으려니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 기선을 잡으면 그가 선장이고 선주다.

 

  처음부터 길을 잘 들여야 끌려다니지 않는다고 했는데 초장부터 끝난 싸움이다. 주인을 얕보고 이래라저래라말이 많다. 예뻐서 봐주고, 어려서 봐주다 보니 결국은 그 아이 따까리 신세다. 딸아이가 왜 강아지 하나 못 다루고 질질 끌려다니다 관절로 고생해.”라며 타박한다. ‘어른핑계 대며 변명하고 합리화한다. 동물에조차 배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 아이를 울타리 안에서 끌어냈다. 내 교육 모토가 자유분방이긴 하지만 이건 틀을 벗어난 하극상이나 다름없다.

 

  두두가 왕왕거린다. 내가 해주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상전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짖고 또 짖는다. 그저 개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아 맘대로 했다.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해 답답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각자 다른 길로 갔다. 내가 두두를 끌고 가고 때론 끌려갔다. 서로를 길들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가끔 내비게이션 말을 듣지 않고 아는 길이라고 갔다가 낭패당한 경우가 있다. 그런 것처럼 두두도 단호하게 아니라고 커밍 시그널을 보내나 소통이 안 됐다. 서로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소통이 안 될 땐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니 두두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왕왕거림 속에 불평, 신남, 요구 조건이 들어 있다. 그 아이의 언어와 나의 언어가 불협화음으로 대치 상태가 되고 때론 서로 적인 것처럼 으르렁거린다. 나도 똑같이 요구하고 그 아이처럼 끙끙댄다. 신혼 때 서로 깃발 잡으려고 기를 세우던 것 같다.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결코 주인인 내가 질 수 없다는 표시로 위엄을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땐 하극상도 유분수지.”라며 강아진 눈을 흘긴다. “어디서 건방지게 주인 말을 안 들어.” 매 대신 손뼉을 크게 친다. “음메, 기죽어.”라며 꼬리를 내리고 피신처로 줄행랑친다. 웅크리고 앉아 내 행동의 변화를 지켜보느라 눈만 끔뻑거린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는다. 아껴주고 보살펴주면 될 일인데 인간이라는 이유로 작은 생명체를 제압하려 든다.

 

  몇 달이 지나니 근육이 생기고 귀가 뜨인다. 그 아이의 표정만 봐도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것 같다.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던 길이 보인다. 서로 스미어 간다. 갇혀 있던 마음이 열린다. 인생도 그렇듯 일방통행이 살다 보면 양방향이 된다.

 

 

 

 

 

  젖을 떼기도 전에 엄마 품을 떠난 두두가 안쓰러울 때가 있다. 나를 보면 반갑다고 얼굴을 핥는다. 위생적으로 좋지 않아서 의식적으로 피한다. 적당히 정을 줘야 뗄 때도 힘들지 않을 것 같아서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다. 핥으려 할 때마다 피했더니 삐쳤는지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습 뽀뽀를 한다. 그래도 고추 달고 나왔다고 상남자 행세다.

 

  집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안쓰러워서 유치원을 보냈다. 졸지에 강아지 엄마가 되긴 했지만 키우는 동안은 할 도리를 다하고 싶었다. 강아지도 동족끼리 놀아야지 사람하고 노니 커뮤니케이션이 될 리가 있나.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집에 오면 자랑하듯이 두두도 그랬다. 산책 시, 다리 들고 오줌을 누는가 하면 개들을 만나면 생식기 냄새를 맡으며 정보를 나눈다. 수상한 대화법에 황당했는데 그들의 접근방식이다. 개들이 당연히 짖어야 하는데 집에선 안 하던 행동을 한다. 내 옆에 와서 보란 듯이 목청을 가다듬고 헛짖음을 한다. 웃음이 난다.

 

  가끔 큰 방석이나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마운팅해서 놀라게 한 적이 많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일차적인 욕구 해소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형의 높이가 맞지 않아서 마운팅이 어려운지 몇 번을 시도하다가 지치고 힘겨워한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마운팅은 못 하게 막는 게 좋다고 했다. 심한 개들은 사람을 잡고도 시늉하니 민망하긴 하다. 본능마저 억제하고 산다면 얼마나 스트레스가 클까. 삶의 질이 떨어질 것 같아서 오지랖 넓게도 키에 맞는 인형을 사줬다. 사람하고 살면서 고환도 떼고 내시 같은 삶을 산다. 자연에서 마음껏 활보하지도 못한다. 사람 눈치나 살피며 살아야 하는 슬픈 짐승이다.

 

  관절에 문제가 생겼다. 강아지한테 끌려다니고, 일어섰다 앉았다 했더니 무릎에서 소리가 난다. , 다리가 쑤신다. 온몸이 고장이 났다. 가만히 있어도 관절에 탈이 날 나이인데 무리했나 보다. 무엇이든지 때가 있다. 특히 강아지를 키우는 건 젊었을 때 할 일인 것 같다. 내 건강과 강아지의 수명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강아지가 나보다 더 오래 산다면, 그것이 문제이고 더 빨리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슬픔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런저런 문제로 딸아이가 안기로 했다.

 

  비오는 금요일 밤이다. 하필이면 이런 날에 딸아이가 두두를 데리러 왔다. 있을 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보내고서야 알게 된다. 같이 있으면 든든하고 따뜻했다. 두두가 가버린 텅 빈 방엔 그가 쓰던 침대만이 덩그렇다. 장맛비는 점점 더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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