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선, 선, 선/김근혜

테오리아2 2023. 9. 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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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선 앞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많은 생각이 일렁인다. 선線 하나가 있을 뿐인데 쉼표를 찍는 사람들과 차량이 선善을 지킨다. 그 선善은 질서를 위한 선線이다. 선善이 선線을 가둔다. 가끔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정지선線을 넘는 이들이 눈에 띈다. 동요가 일어난다. 걷잡을 수 없는 바람에 무단횡단을 한다. 선線이 선善을 삼키는 순간이다.

 

많은 선線 앞에서 선選이 갈등한다. 선線을 넘는 일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편견을 깨고 허들을 넘는 일이다. 삶은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 순간순간이 늘 선選의 선상에 서 있다. “넘지 않은 선線은 있어도 못 넘을 선線은 없다.” 여성이라는 편견과 사회적 제약을 넘어 ‘유리천장’에 저항한 여성들 얘기다. 그녀들은 왜곡된 시각과 편견을 깨고 당당히 월선越線에 성공했다. 선線을 잘 넘은 실례이다.

 

숨소리와 체온이 느껴진다. 유혹의 손길도 보인다. 느린 가락으로 다가와 빠른 물살로 휩쓸어 간다.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매료된다. 선線의 유혹이다. 선線을 넘는 일은 의지다. 나약한 사람은 악한 일이든, 선한 일이든 결정을 쉽게 하지 못해서 망설이다 선線을 떠나보낸다. 선線은 우리 곁에서 숨 쉬고 동행한다. 때론 무리한 도전을 요구하고 강요한다. 잘 넘은 이들에겐 환호가 따르고 잘못된 선線을 택한 사람들에겐 질타가 따른다.

 

한 호흡을 하지 못해서 현재와 미래의 삶이 바뀌었다. 나는 모든 것을 쉽게 결정하는 편이다. 심지어는 결혼마저 쉽게 했다. ‘신중’이란 단어하고 거리가 멀다. 결정은 빠르고 후회는 오래간다. 잘못 들어선 길이란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이었으므로 그길로 행군할 수밖에 없었다. 정지선 앞에 설 땐 잠시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지선線을 넘는 일들이 뉴스에서 잦다. 선線을 넘는 일은 부정적일 때가 많고 선善의 경계를 생각하게 한다. 선線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양심과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잔인하고 무서운 일들이 벌어진다. 상상하기조차 악한 일들이 선善을 넘을 때,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난반사되다가 재생과 소멸을 거듭한다.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무엇이 선線을 넘으려 꿈틀거리다 급정거한다. CPL필터를 끼워 난반사를 제거하듯이, 어느 순간 당한 만큼 콕콕 찔러주고 싶은 선인장 가시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차단막이 내려지고 피사체가 흔들린다. 선인장의 번식을 막는 벌레가 가시를 삼킨다. 이 벌레가 바로 선善이다. 온 세상이 선인장 천지가 되지 않도록 신은 이 벌레를 선인장에 하사했다.

 

돈과 명예를 위해선 어떠한 장벽도 거뜬히 넘는 사람들, 온갖 악행과 모함으로 약자를 괴롭힌다. 약한 자들을 지켜주는 세상이 없다. 그 그늘에서 힘없고 배경 없는 자들은 우울하다. 그런 사람들의 울분을 제대로 갚아준 드라마, ‘모범택시’는 20퍼센트가 넘는 시청률을 찍었다. 선線을 넘긴 일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속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무거웠던 생채기가 포자처럼 가벼워졌다. 억울한 일을 누군가 대신 처벌해 준다면……. 상상만 하여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영화가에선 폭력물이 급물살을 타고 성행이다. 선線을 너무 넘어서 잔인할 정도다. 원한을 갚는 일이 아닌 감정 살인이 다수다. 그야말로 ‘묻지 마’ 살인이 공공연히 성행이다. 살인이 중독인 괴물 같다. 인간에 대한 존엄이나 생명 존중이라곤 내재해 있지 않다. 끝까지 볼 자신이 없게 만드는 영화. 보고 난 후의 씁쓸함, 개운하지 않은 뒤끝, 선線은 이렇게 넘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다.

 

배달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많이 늘어났다. 아파트에선 긴급조치를 내렸다. 배달 기사들은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라는 현수막을 곳곳에 붙였다. 주민들도 배달 앱에 지하 주차장 이용을 권했으나 몇몇 운전자들이 지상으로 내달린다. 순간 아찔할 때가 많다. 생업이기에 이해는 하나, 행동이 도를 넘는다. 촌각을 다투며 폭주한다. 사람들이 다칠 것을 염려해서 담장을 만든다. 몇몇 선線을 넘는 사람들로 인해 불신이 뿌리를 내리고 서로서로 감시하는 슬픈 일이 벌어진다. 그들 때문에 엄청난 돈을 들이고 막고 또 막는다. 금지된 것은 매력이 있어 더 끌리게 마련이다. 그들의 우회는 없는 것인지 위험을 불사하고 기어이 장벽을 타고 오른다.

 

함부로 월선하는 사람이 있다. 나만의 고유 영역에 인사도 없이 불쑥 들이민다. 겹겹이 쌓여있던 비밀스러운 공간이 의도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무장해제다. 나쁜 균의 전파력은 파격적이다. 번식률과 생존율이 높아서 좀체 죽지 않는다. 몸에 새겨진 악한 기운이 움찔거리고 멈춤을 반복하며 시행착오를 한다.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이들이 있다. 적은 돈이나마 춥고 어두운 곳에 써달라고 손 내미는 사람들이다. 험한 세상에 이런 이들이 있어서 그래도 세상은 따스하다. 이들의 선善한 영향력, 감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마음 앞에서 더 작아짐을 느낀다. 부러움에 선善을 넘본다.

 

-선수필 2023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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