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불편한 우산/김근혜 수필가

테오리아2 2024. 1. 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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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우산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할머니 몇 분이 우산을 쓰고 가신다. 그 옆에 어정쩡하게 비를 맞고 따라가는 할머니에게 눈길이 닿는다. 갑자기 내린 비로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나 보다. 함께 걷는 사람들은 무심히 앞만 보고 걷는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너는 우산도 없냐.” 뒤돌아다보며 한마디 던진다. 감정 섞인 말투다. 아니 비아냥거림에 가깝다. 시장가는 길이라서 그분들 뒤를 따르게 되었다. 노인정에 같이 있다가 나온 것 같은데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보기가 안쓰러워 우산이라도 씌워드리려고 할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내 발걸음 자국마다 살얼음이 끼고 있었다.

 

우산도 없냐.”는 소리가 귓전에서 회전했다. ‘~라는 조사가 문턱까지 쫓아와 몸살을 앓게 한다. 여러 생각이 오갔다. 그 말이 방대한 뜻을 내포하고 있어서다. ‘너에게 우산 받쳐 줄 자식은 없나, 기댈 곳조차 없나, 널 보살펴 줄 가족이 없나.’ 나는 억지스럽게 그 말에 두꺼운 옷을 입힌다. 결국엔 자식도 없냐.”로 환원되어 되새김 된다. 아니 자식이라고 다 같은 자식이냐.”로 결론을 짓는다.

 

어르신들이 노인정에 둘러앉아 할 얘기가 무엇인가. 자식 자랑, 손주 얘기로 하루를 보내지 않는가. 노인정에서도 패는 갈리게 마련이다. 한때는 그 할머니도 빛 가운데 있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자식을 잘 키웠어도 요즘 세상에 부모를 끝까지 돌봐줄 이 몇이나 될까. 나도 저 할머니가 들은 말을 누군가에게 듣지 말란 법이 없다. 대열 10m 뒤에서 그 길을 가고 있으니 말이다.

 

큰소리치는 할머니는 당당해 보인다. 체구도 좋고 허리도 꼿꼿하다. 옷도 때깔이 좋은 것으로 보아 넉넉한 우산을 마련하고 있는 모양새다. 현재의 삶은 부유할지 몰라도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 노년의 삶이다. 내 눈에는 그런 할머니가 왜 작아 보일까. 못 들은 척, 아무 대꾸하지 않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더 힘들었다. 살아온 세월만으로도 힘겨웠을 텐데 타인에게조차 서러움을 당하고 있다.

 

 

 

 

 

 

삭막한 바람이 분다. 말갛던 하늘빛이 짙은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마음이 서로 섞이지 못해 회오리친다. 어제 반갑게 대하던 사람들이 오늘은 낯설게 날을 세운다. 친구가 타인이 되는 순간이다. 할머니는 경로당에 가도 들어앉을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떠밀려 난 자리, 금기가 되어 버린 자신, 잃어버린 시간만이 끔뻑거리고 있을 것이다. 서로를 보듬고 부둥켜안던 끈끈한 정은 어디로 사라지고 사람들의 마음은 기형이 돼 가는 걸까. 아끼고 어루만지고 살아도 시간이 부족한 것 같은데 인간의 본성은 여전하다. 어떤 환승 열차가 우리를 태우러 올까. 앞일을 알 수 없기에 인생이라는 그림은 겸손하게 그려야 하는데…….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오셨을 여정, 여전할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곁에 있으면서 옆을 보지 못하는 세상이 안타깝다. 사람들은 상처를 입히고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곁을 찾는다. 외로워서다. ‘우리라는 단어, 참 따뜻한데 춥게만 느껴진다. 얼음장이 된 할머니의 마음을 누가 어루만져 줄까. 사람들은 복사본인 삶을 숨기려고 원본인 척 큰소리 내며 산다. 할머니는 경로당에 가는 것이 위로이고, 즐거움이었을 텐데 희망마저 잃고 말았다. 마음에 자동으로 열리는 장치가 있어서 이해와 사랑으로 닫힌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

 

아파트에서 가끔 만나는 할머니는 아직 받쳐줘야 할 우산이 많다. 손주들 뒤치다꺼리로 허리가 휘청거린다. 일흔이 넘은 노구에도 갓난아기를 업고 자식의 집안일을 돌본다. 2시간이 넘는 길을 새벽부터 달려와서 아들 집 뒤치다꺼리로 수고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또다시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중교통에 몸을 실어야 한다. 그 생활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자식 다 키우고 즐길 여유도 없이 현재진행형인 불편한 진실, “아들한테 지하철역에라도 태워달라고 하시죠?”, “지금 퇴근해서 왔는데……, 그 아이도 안 힘들겠어요. 너무 지쳐 보여서 태워 달라 소리가 안 나오네요.” 어쩌면 다수의 할머니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 할머니도 예외는 아니었으리라. 끝없이 되풀이되는 헌신, 노년의 삶이 슬프다.

 

어린아이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눈에 띈다. 빗방울이 튈까 봐 상체를 아이 옆으로 바짝 기울였다. 바람 불면 넘어질까, 비가 오면 맞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어머니상이다. 우산을 씌워줄 줄만 알았지 정작 비 피할 우산 하나 없는 어머니, 우산 씌워달라고 말할 줄 모르는 어머니, 여전히 빈 몸이다.

 

가끔 시장가는 길에 그 할머니를 만난다. 멈춰버린 습관을 찾고 있는 것 같다. 한기를 무릅쓰고 볕이라도 쬐러 나오셨는지 짧은 그림자가 애잔하다. 또 겨울밤은 얼마가 길었을까. 오지랖 넓게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면 반가움에 말을 건네곤 하는데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사람이 그리웠을 무게가 느껴져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서러운 눈빛이 오래도록 골목길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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