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壬寅열차 /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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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임열차는 11일이라는 역에서 출발합니다. 365일이라는 간이역을 지나 1231일이라는 역에 도착합니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이 열차를 타고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열차는 푸른 깃발을 펄럭이며 쉬지 않고 달립니다.

 

표를 미리 준비한 사람은 일등석에 앉아 편안히 가네요. 표를 사지 못한 사람은 미처 짜 넣지 못한 인생계획표가 어그러지듯 서서 가거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갑니다. 삼등석이지만 만족하며 가는 사람도 있고, 일등석이라도 자리가 좁다며 불평하는 이도 있습니다.

 

일반석에 있는 사람이나 서서 가는 사람들은 부러운 눈길로 일등석을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쉬울 것 하나 없어 보여도 부족한 게 있는지 행복해 보이지가 않네요. 일등석에 앉은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은데도 베풀기보다는 더 가지려 다툼을 벌입니다. 그만하면 만족할 것 같은데 사람 사는 모양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석이라고 주눅이 들 필요는 없습니다. 일등석과 비교해서 우울해질 필요도 없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갈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가끔 스치는 풍경을 완상하며 가다 보면 종착역에 무사히 닿을 겁니다.

 

“Slow and steady wins race”라는 영국의 격언처럼 천천히 가되 꾸준히 가면 인생의 실패자는 안 되겠지요. 느리게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서 있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힘이 됩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힘든 여정입니다. 가면서 숨겨둔 임무를 하나하나 수행해야 하니까요. 아마 보물찾기하듯 그런 과정일 겁니다. 꼭꼭 숨겨두어도 잘 찾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어도 못 찾는 이가 있습니다. 겨우 몇 정거장 가고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내리는 사람도 생깁니다. 신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내일이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주저앉으려 합니다.

 

성급해서 가까이에 있는 것만 좇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좀 더 멀리 바라보고 걸음을 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시발점에서는 앉을 자리조차 없었는데 종착역이 가까워질수록 빈자리가 많아집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거대한 산을 넘지 못해 절망한 사람들이 간이역에서 내렸기 때문입니다.

 

삶은 구멍 난 곳을 시침질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늘 자국이야 숨길 수 없지만 곪고 문드러지면서 아물어가지 않을까요.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이 일등석에 앉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꿈은 잃어버렸을 때 사람은 늙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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