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액자를 다시 걸며-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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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를 다시 걸며

 

김근혜 

 

자를 다시 걸었다. 삼십여 년 동안 손길이 타지 않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액자를 골방에서 찾아냈다. 마음을 닦아내듯이 닦고 또 닦았다. 액자 속엔 그녀와 소풍 갔을 때의 모습이 판화처럼 담겨 있다.

 

중학 시절 단짝이던 친구를 삼십여 년 만에 동창회에서 만났다. 그녀와는 내리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다. 키도 비슷해서 늘 옆자리거나 앞, 뒤로 앉았다. 그녀가 왈가닥이었다면 나는 얌전이였다. 우린 2인용 자전거처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교정을 거닐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제는 주로 고등학교 진학 문제라든가 장래 희망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는 은행원이 꿈이었고 난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교정 소나무 앞에서 손을 꼭 잡고 소원을 빌었다.

 

어느 눈 내리던 날이었다. 운동장엔 눈 장난을 치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우리도 그들 틈에서 눈을 뭉쳤다. 모르는 아이 뒤로 돌아가서 옷 속에 슬쩍 눈을 집어넣고는 줄행랑을 쳤다. 눈 장난에 빠져 수업 종이 울리는 것을 듣지 못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것을 느낀 우리는 교실 뒷문을 열고 살금살금 기어들어갔다. 드르륵 소리에 아이들의 눈길이 뒷문으로 향했고 수업하시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불행하게도 영어 시간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수업하다가도 일본식 체조를 한다면서 개구리같이 펄쩍펄쩍 뛰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멘붕 선생님이었다. 왔다 갔다 하면서 회초리로 아이들 팔을 닥치는 대로 때리곤 희열을 느끼는지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공부보다 선생님이 지나가면 맞지 않으려고 공책을 교복 속에 넣어서 대비했다.

 

선생님은 회초리로 내 팔을 내리치려 했다. 3년 동안 갈고닦은 노하우로 순발력 있게 공책을 얼른 팔에 대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에 감을 잡으셨는지 화가 난 선생님은 공책을 치우라고 했다. 나는 무서워서 벌떡 일어나 복도로 도망쳤다. 그녀도 덩달아 뛰쳐나왔다. 선생님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다. 갈 곳이 없는 우리는 운동장으로 내달렸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교실에서 귀추를 궁금해 하던 남학생들이 함성을 지르는 바람에 전교생이 구경하느라 학교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교장실에 불려가서 호되게 혼이 났다. 벌로 화장실 청소를 다하고 나니 해가 어둑해졌다. 그날의 재래식 화장실 냄새는 역겨워 구역질이 났지만 우리의 우정은 모든 아이가 알 정도로 유명해졌다.

 

고등학교 원서를 낼 때 우린 같은 도시에 가자고 약속을 했다. 소설가가 꿈인 나는 인문계를, 은행원이 희망 사항인 그녀는 실업계를 선택했다. 학교는 다르지만 같은 도시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서 잠이 오질 않았다. 기쁨도 잠시 아버지는 객지에 보내는 것을 마뜩잖아했다. 친척도 없는 낯선 곳에 여자 혼자 지내게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어쩔 수 없이 그녀와 작별을 했다.

 

중학교 졸업을 하고 남자 친구들로부터 몇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중에는 한 해 후배인 민철이라는 아이의 편지도 있었다. 그는 여자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썩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호남형에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였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호감을 느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괜히 얼굴이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머리와 가슴속은 온통 그 아이로 가득 차 있었다.

 

오일장이 서는 날, 빵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부끄러움에 선뜻 들어갈 수 없어서 빵집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 아이가 빵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얼른 몸을 숨겼다. 먼발치에서 멈칫멈칫하다 돌아서고 말았다.

 

고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꽁꽁 언 손을 불며 집에 돌아왔을 때 혹한보다 더한 냉기가 나를 맞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밥상에 몇 권의 책과 편지가 놓여 있었다. 그 아이가 보낸 소포였다. 아버지에게 혼이 날까 봐서 밥이 목구멍에 걸렸다. 봉투에 적힌 남자 이름을 보고 아버지가 편지를 읽어 본 모양이었다. 그 아이의 집안 내력이나 어디 사는 누구인가를 따져 물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매를 맞아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내가 여자라고 혹여 흉터 하나라도 생길까 봐 애지중지하셨다. 그런 나에게 매를 들었다. 차마 때릴 순 없었던지 이불을 씌워 놓고 때리는 흉내만 냈다. 그래도 서러웠다. 아버지는 한학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라 예의범절을 엄히 따지는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남학생의 편지는 용서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날이 밝으면 그 아이를 퇴학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아 두려워서 울고 또 울었다.

 

스물 몇 해 되던 날, 단짝이었던 그녀가 있는 도시로 가기 위해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 도시엔 편지 사건 이후론 서로 연락을 끊은 첫사랑 민철이도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그 아이가 나를 애타게 찾고 있으며 모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려주었다. 그 아이가 나를 찾는다는 소문은 고향에도 파다했다. 나도 많이 보고 싶었다. 마음은 급한데 열차는 숨이 찬 듯 느리기만 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거리는 멀지만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시답잖은 풍경도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대구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녀를 만난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첫사랑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지 떨리기만 했다.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그녀 옆에 있어야 할 그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민철이가 군대에 갔다고 했나. 그녀가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웽웽거릴 뿐 멍해진 머리는 회전되질 않았다.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꽃잎은 떨어지기 위한 준비를 나 몰래 하고 있었나 보다.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녀 안에 감춰진 그 아이가 보였다. 우정은 위태로운 잔에 떠 놓은 물이라고 했던가. 허탈하고 배신감이 느껴졌다. 우리 사이를 두 신체에 겹쳐진 하나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리워하고 아픔을 나누던 그녀는 어디로 가고 이방인이 옆에 있는 것 같았다. 비참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녀와 민철이가 머지않아 결혼할 거라는 소문이 서울까지 퍼졌다. 축하해 줘야 하는데 마음이 휑했다. 아픔을 감추려고 옷을 겹쳐 입었다. 꽃 진 자리에 멍울이 남았다. 그때부터 뒤를 보이지 않는 습관이 오래도록 따라다녔다.

 

우정이란 이음새도 세월을 견디기엔 무리였을지 모른다. 조그만 빗물에도 쉽게 녹이 스는 쇠붙이처럼 진정한 우정을 지키기가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사람의 일이라 흔들리기도 하고 허물어지기도 하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가슴은 왜 아릴까.

 

삼십 년 만의 동창회다. 빠르게 다가서는 해넘이가 담벼락에 걸렸다. 교정을 서성거리며 마지막 남은 커피 한 모금을 털어 넣었다. 솔향이 물씬 풍겼다. 솔은 삼십여 년이 지났건만 변함없이 푸르다. 낯설지 않은 중년의 남녀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나도 그들 가까이 걸음을 옮겼다.

 

결혼 소식을 듣던 날, 액자 속의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는데 내 미소는 슬퍼 보였다. 서둘러 우리 둘을 묶어둔 액자를 골방에 감추었다. 나를 쳐다보는 액자를 걸어두었던 구멍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그 구멍을 막으려고 액자를 다시 걸었다. 오랫동안 상처로 남아 있던 못 자국이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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