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외상外傷 감옥/ 김근혜

테오리아2 2022. 2. 9.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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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 매달린 눈동자가 맑다. 투명한 눈에 하늘이 들어앉는다. 파래지는 빗방울. 사마귀가 풀잎에 앉아 나를 보고 씩 웃는다. 소박하고 평범한 아침이다, 회색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잠시나마 편안하게 해주는 풍경이다.

마음속에 품고 있든 것들이 페달을 밟고 달려온다. 오늘 떠나보냈던 기억이 내일은 또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잊어야 할 것은 왜 더 뜨거운 열기로 다가오는가. 이럴 땐 자유자재로 왜곡이 가능한 기억 구조를 가지고 싶다. 기억 저장고가 고장이 났는지 시시때때로 심장을 건드린다. 나쁜 기억은 무딘 칼로 무를 자르는 것 같다. 울퉁불퉁하게 가슴에 스미는 덧옷들. 기억은 너무 많은 옷을 껴입고 있다.

시냇가를 걷는다. 거추장스러운 것으로부터의 도피이다. 돌에 부딪혀 내는 물소리가 기분을 말갛게 한다. 절룩거리던 풍경도 말랑해진다. 고요하면서 조용하게 다가오는 어떤 힘이 손을 잡는다. 단단히 묶였던 고리가 힘없이 풀려 나간다. 매일 같은 곳을 거닐지만 시간 속으로 깃들고 있는 것은 어제와 같은 내가 아니다. 늘 다른 내가 그 길을 걷고 어제의 나는 시간 속으로 풍화한다.

금싸리기 땅에 세 들어 살기에는 가난해 보이는 들풀이 금계국 사이사이로 보인다. 텃세하는 금계국 사이에서 풀죽어 있는 모습이 너였다가 나였다가 둘이었다가 서로 다른 하나가 된다. 다르다는 이유로 기 한번 펴지 못하고 죽어 사는 건 아닐까. 낯선 곳에서 옛 친구만 주머니에서 뒤적거리는 나처럼 풀도 제자리를 잡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수신인이 없어서 떠도는 이슬방울이 가끔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방어벽이 약해서 가벼운 이슬의 무게에도 휘청거린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내 운명을 모른 체 그래도 아침을 맞이한다. 삶의 켜켜마다 서러운 수인번호가 찍힌다. 세상의 기준에 감염되고 삶의 전의가 상실된다. 등창은 잠시 머물다 가는 그늘이라고 애써 위로해본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상처는 떠나보내기가 어렵다. 지속적으로 인출되면서 고갈되지 않는 자전적 기억, 이 기억과 이별하는 법을 몰라서 동거중이다. 내일은 감옥 문이 열리고 파란 하늘을 볼 것이라는 희망도 잠시, 현실은 잔인하게도 다시 겁을 준다.

이십 몇 년 전, 죽음과 직면했을 때의 그 생생한 현장에 내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양지와 음지가 공존했다. 왜 “나냐고, 왜 내게 왔냐.”고 물을 수 없었다. 운명이란 내가 만들지 않아도 오는 것이니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느꼈다. 공포감으로 비틀거리는 삶을 숨기려고 하얀 알약을 달고 살았다.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은 어둠이 파랬다.

달갑지 않은 그가 내 기억 속에서 기생한다. 그의 기억 속에 내가 있다. 내 기억 속에 그가 산다. 나는 애써 그를 밀어내지 않는다. 그는 잠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트라우마(外傷)이다.

포로가 돼서 산지 오래다. 그가 낸 길에 편승하고 길들여진다. 겁쟁이인 나는 너무 빨리 복종을 배우고 익숙해진 것 같다. 저항보다 복종이 때론 편안하다는 것을 알아서였을까. 묘한 법열 속으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간다. 죽음 같은 공포감속에서도 편안함이 교차한다. 견디는 일도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상담심리학 공부를 하게 된 계기도 외상外傷때문이다. 회전력이 좋든 CPU는 알약들로 인해 많이 더디고 무디어졌다.

거울을 본다. 그에게 할퀸 상처를 매니큐어로 덮고 신경세포에 화장을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위안을 얻어 보고 싶은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불편하게 했던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젠 남의 아픔이 보인다. 내가 아파보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는 공감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속죄를 한다.

서로 부둥켜안고 사는 일이 ‘win-win’이다. ‘win’에 있는 w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엄마 가슴 같이 생겼다. 상처도 보듬음도 엄마처럼 품을 수 있다는 뜻인 것 같다. ‘w’가 양쪽에 있는 것은 서로 모난 곳을 어루만져서 상생하라는 뜻일 게다. 가슴에 못 하나 박히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흉터도 보듬으면 꽃이 된다. 신이 아픔을 주었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몸의 균형을 적절하게 유지하고 돌아보라는 뜻에서 가시 하나 박아두었는지 모른다. 아픔도 내 몸의 일부라서 소중하다. 가슴으로 품고 win-win하려 한다

짐승은 상처를 끌어안은 채 몸이 자연스럽게 치유하도록 내버려둔다고 한다. 나도 붕대감은 영혼을 사랑하려 한다. 품다보면 공동살이가 가능해지겠지. 자식같이 대할 순 없지만 교감하려 한다. 아픈 신체 기관도 내 몸의 일부로서 소중하다. 기억의 시간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테오리아의 삶을 살아보려 한다. 인생 여정의 친구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차가운 세상에서 국밥 한 그릇의 의미는 무엇일까. 꽁꽁 언 마음을 녹여주고 몸을 따스하게 하는 관심이다. 관심은 곧 국밥이다. 어떤 치료제보다 나은 처방인 것을 잊고 있었다. 그가 내게 온 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수용이다. 보듬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면 서로에게 조금 더 좋은 관계가 되었을지 모른다. 사랑이란 자세를 낮춰 서로에게 기울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외상外傷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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