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옹이/김근혜

테오리아2 2022. 2. 1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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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산을 올랐다. 길옆의 소소리바람을 뚫고 제비꽃이 옹망추니 목을 빼고 있다. 장승처럼 버티고 선 이정표를 따라 걸음을 옮겨 놓는다. 비탈길에 엉거주춤 한쪽 발을 디밀고 서 있는 소나무가 비라도 오면 쓸려갈 듯 위태해 보인다. 살대 하나 없이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 보인다. 세풍을 혼자라도 겪은 듯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군데군데 나 있는 옹이를 보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너도 많은 굴곡을 안고 살았구나.’ 외부적인 자극이야 따끔거리는 정도의 흉터만 남기지만 마음속의 상처는 아문다고 완전히 아물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지인을 만났다. 심리상담 교육을 받다가 만나게 된 사람이다. 새로운 누군가와 연이 되어 서로를 알아주고 힘이 된다는 것이 오롯한 기쁨이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선 목숨이라도 바친다고 했던가. 휴일이면 함께 여행을 다니며 우정을 쌓았다.

 

 

서로는 닮은 데가 많았다. 감성적인 부분과 방랑벽이 있는 것까지 비슷했다. 애를 끊는 듯한 음악도 즐겼다. 특히 포르투갈 민중의 한을 담은 파두는 메일로 교환하며 들을 정도로 깊이 매료되었다. 둘 사이는 완만한 능선을 한 걸음씩 내딛는 즐거움보다 숨이 헐떡일 정도의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각자 배운 학문은 달랐지만 펼치고자 하는 뜻은 같았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 가정문제, 성폭행, 청소년 비행을 우선으로 상담과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전문가로서의 일이었다. 대학원에서 배운 전공을 보태어 나는 그녀보다 몇 걸음 앞서 길을 닦았다. 그녀는 내가 근무하는 기관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위촉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일 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당시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기에 쉽게 위촉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한 배를 탄 선원이 되었다. 이상이 같고 목표가 같았기에 옆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 기쁨이 배가 되는 줄 알았지 서로에게 복병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인생길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지 않던가.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서로의 소리는 달랐다. 우정보다도 서열이 우선일까. 서로 제 그릇이 크다는 우쭐거림이 팽팽했다. 상류를 거스르며 치고 오르는 질투의 물살 탓에 순탄치 않은 항해였다. 사나운 물결에 휩싸여 배가 휘청거렸다. 풍랑을 잠재우면 또 다른 너울이 질주하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배가 수밀구역을 벗어나 좌초에 부딪혀 산산이 조각나는 몹쓸 꿈을 꿨다.

 

 

그녀의 성향은 앞서서 진군하는 장군 같은 스타일이고 나도 상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사병 같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마찰을 빚는 날이 잦았다. 나는 당당한 그녀에게 질투심이 일었다. 비굴하게 전공 분야나 자격을 내세워 그녀의 기를 꺾으려 했다. 티격태격하면서 업무 문제로 인해 서로의 마음은 닫혀가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업무 처리를 지적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것은 변명에 불과했고 시비라고 보는 것이 맞을는지 모른다. 동료의식보다는 경쟁의식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우리가 쌓은 우정은 점점 금이 갔고 불편한 관계로 발전해 갔다.

 

 

그러는 중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떨어졌다. 기존에 있던 프로그램이 신선하지 않아서 새로 짜야 하는 일이었다. 끼니도 거른 채 연구실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녀의 의견을 듣고 싶어 복사본을 건네주었고 공교롭게도 다음 날부터 아들이 입원하는 관계로 출근하지 못했다.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가 만든 프로그램이 채택됐다. 내가 건네준 복사본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따지려고 그를 찾아갔다. 흥분된 가슴은 쿵쾅이고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그와의 다정했던 시간이 영상처럼 스치고 있었다. 약해지면 안 된다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험한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눈빛을 보니 모질게 먹었던 마음이 녹아버렸다. 불시에 가지가 뭉텅 잘려나가는 아픔을 당하면서도 나무꾼을 원망하지 못했다. 줄기의 물관부 안에서 파묻혀 버린 아픔의 살가죽이 옹이가 되었다.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명예에 대한 욕구가 생기나 보다. 명예욕에 연연하여 서로에게 흠집을 내기도 하니 말이다. 굳은살이 밴 후에야 내가 보였다. 인생의 가치를 명함 한 장으로 판단하고 목숨을 걸었던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황한 명성을 가지고자 부나비처럼 타 죽을 줄 모르고 불을 향해 뛰어들었던 어리석음이 가슴을 후려친다.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뒤집어 보면 그녀도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나무가 결이 잘 나오지 않아서 나무꾼은 옹이를 싫어하지만 모진 풍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기둥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한다. 내 가슴에 살아 있던 옹이가 있었기에 새로운 삶의 기회도 주어졌고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어느 날 연구소 개소식을 신문에서 보았다며 그녀가 축전 문자를 보내왔다. 나도 그녀가 소장으로 진급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 일 이후론 소식을 전하지 않은 터라 먼저 인사를 받고 보니 부끄러웠다. 마음이란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다고 했던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한 것이 못내 패자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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