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아주머니와 카스테라-장미숙

테오리아2 2018. 3. 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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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온 아주머니는 다리를 절룩거리고 있었다. 한발을 질질 끌다시피 가게로 들어서는 아주머니가 카스텔라 두 봉지를 들고 계산대로 왔다. 그이는 내가 묻기도 전에 한숨부터 풀어놓았다.

 아유 힘들어, 다리가 아프니까 더 힘드네.”

 뭔가를 갈구하는 눈빛, 아주머니의 눈에 가득 들어찬 무력함을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잘 웃지 않는 아주머니를 대할 때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늘 깊은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과연 그 얼굴에 웃음이란 게 들어있기나 한 걸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다리는 왜 그러세요?”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욕탕에서 넘어졌는데 뼈가 금이 갔다나 뭐래나. 힘들어 죽겠어요. 아유, 힘들어.”

 아주머니는 그간의 일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나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추임새를 대신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아주머니의 하소연에 끼어들 틈도 없었다. 다른 손님이 없어 다행이었다. 아주머니는 어느 정도 하고 싶은 말을 했는지아유, 힘들어."로 말을 끝맺었다.

힘들어, 힘들어, 힘들어.’아주머니의 말이 공중에 떠돌아 다녔다. 그 말은 내 어깨를 짓누르고, 가벼운 공기에 돌덩이를 얹어놓은 듯 삽시간에 주위를 무겁게 했다.

힘들어 죽겠는데 빵이 없으면 안 되니 어째요.”

딸보고 사다 달라 하면 되잖아요.”

딸도 요새는 바빠서, 저녁 내내 일하니까 아침에 오면 밥도 안 먹고 쓰러져 잔다니까요.”

“네, 힘내세요. 얼른 다리가 나아야 할 텐데, 조심하시고요.”

 빵을 담은 봉지를 건네주자 아주머니는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풀어놓고 뒤돌아섰다. 시시포스의 바위를 어깨에 올린 채, 절룩거리는 그의 가느다란 두 다리가 보였다. 기우뚱 한쪽으로 무너진 다리가 간신히 땅을 짚고 있었다.

 삼색 슬리퍼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차림새와 차라리 어울렸다. 제대로 된 신발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편해서 저리 신고 다니는 것일까. 사계절 아주머니의 발을 감싸고 있는 삼색 슬리퍼가 그의 궁핍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나는 아주머니가 깔아놓은 일상의 우울을 털어버리려 뻐근해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주머니를 보고 나면 허무함이 찾아왔다. 어쩔 수 없이 아주머니의 생활환경이 상상되어서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회색빛 그림 한 장 속에는 흔들흔들 걸어가는 아주머니가 들어 있다. 그를 따라 집안의 분위기가 이끌려 나오고, 그 분위기 속에 침울하게 가라앉은 가족들의 표정까지 따라 나온다. 칙칙한 건물 지하방에 드러누운 아주머니의 남편이 보이고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안을 무릎걸음으로 오가는 아주머니와 어둠침침한 작은 거실도 겹친다.

 좁은 거실 한편에는 낡은 식탁이 있고 그 위에는 아주머니와 남편이 한주먹씩 입에 털어 넣을 약봉지가 수북하다. 칙칙한 식탁 위에는 물이 반쯤 담긴 컵과 라면 봉지가 놓여 있다. 그 옆에 아무렇게나 뜯긴 카스텔라 빵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방문이 꽉 닫힌 또 하나의 방에는 그들의 딸이 자는 모습도 보인다. 딸은 부모의 앓는 소리와 한숨을 듣지 않으려고 귀에 헤드셋을 꽂고 있다. 방음이 형편없는 방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딸은 몇 번을 뒤척이며 멍하니 천장에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웃음소리가 사라진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암울한 잿빛이다. 병마와 궁핍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집안 곳곳에는 햇살도 앉을 자리가 없다. 아니면 부러 그들이 햇살을 차단할지도 모른다. 밝음 속에서 더욱 선연해지는 생의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칠 만큼 강해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어둠은 차라리 위로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받은 생활비가 병원비와 약값으로 쓰일 때면 아주머니는 자식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리라. 자식들 노동의 대가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현실이 아주머니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 같다. 자식들의 삶을 저당 잡은 죄로 그는 집에서 말을 잃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무 관련 없는 빵집 종업원인 내게 하소연을 하는 것일지도,

 아주머니의 답답한 마음이야 이해한다 해도 이야기를 듣는 나는 적잖은 괴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주머니의 외모가 날 민망하게 한다. 극빈의 모습이 절실히 드러난 그의 치아 상태가 안타깝다 못해 답답하다. 많아 봐야 오십 후반에서 육십 초반이 되었을 것 같은 그는 치아가 딱 두 개밖에 없다. 남아있는 두 개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맨 처음 아주머니를 봤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틀니라도 하지 왜 그러고 사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상대가 민망할까 봐 엉뚱한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말을 건네주는 내가 반가웠던지 그 뒤로 자신이 먼저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남편이 온갖 당뇨 합병증으로 누워 있다는 것과 자신도 온전한 곳이 없어 약을 달고 산다는 것, 그리고 자식들이 주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노라 하소연했다.

 당뇨를 앓고 있으면서도 남편이 카스텔라를 좋아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어 번 그렇게 카스텔라를 사 갔다. 그가 못 오면 딸이 오곤 했다. 아주머니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얼굴에 여드름이 유난히 많던, 무뚝뚝한 아가씨가 카스텔라를 사러 왔는데 포인트 적립 전화번호가 아주머니가 알려준 번호랑 같았다.

 아주머니는 딸이 착하다고 했지만 나는 딸에게서 짙은 그늘을 봤다. 딸이 짊어진 생의 무게를 그 표정이 말해주었다. 환자인 부모의 삶을 외면할 수 없는 청춘의 깊은 고뇌가 그녀의 무표정에 들어 있었다.

 환자가 환자를 돌봐야 하는 현실은 생산 없는 소비만을 양산한다. 그 소비가 누군가의 미래까지 빼앗아 버린다면 무능함은 슬픔을 넘어 좌절에 이른다. 가난이 가난을 부르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세상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꿈은 정말 요원한가. 무능에 손발이 묶여버린 사람들의 의존은 때로 두렵다. 아주머니의 하소연이 불편한 건, 자식의 희생을 운명처럼 여기는 타성을 그에게서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에세이 포레 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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