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난타-장미숙

테오리아2 2018. 3. 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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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도 광고도 없다. 무대 장치며 조명도 없다. 음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의상이며 분장도 자유롭다. 자신의 개성과 취향대로 연출한다.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다. 모두가 주연이면서 조연이다. 감독의 역할도 중요치 않다. 누군가 그날의 공연을 끌고 가면 그만이다. 관객 수나 관객의 취향을 아랑곳하지 않는 게 이들 공연의 특징이다.
  첫 공연은 열 명으로 구성된 삼사십 대의 젊은 엄마들이다. 그녀들에게는 초등학생인 자녀가 있고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에서 공개수업이나 회의가 열렸던 모양이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 필요 이상의 적극성을 보인다. 자식에 대한 관심은 활력과 비례하는지 그녀들 얼굴에는 통통 튀는 건강미가 살아 있다.
공 연은 비극이기보다 희극적 요소가 짙다. 저마다 개성이 강해 다채로운 공연이 될 듯싶다. 그녀들의 공연에 꼭 필요한 건 음료나 간단한 먹을거리다. 젊은 그녀들에게는 차보다 커피가 어울린다. 커피 한잔이면 몇 시간의 공연도 끄떡없을 만큼 혈기왕성해 보인다.
  커피값 계산을 하기 전 본 공연의 리허설이 시작되었나 보다. 목소리와 몸집이 큰 여자가 중간에서 각자 앉을 자리를 정해준다. 그녀의 아이가 반에서 회장이나 그에 따르는 위치에 있을 거라 짐작해 본다. 아이의 우월함과 열등함에 따라 엄마들의 관계도와 서열이 형성된다. 아이들은 학교 의자에 앉아서도 엄마들을 조종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소란한 틈을 타 한사람이 슬그머니 커피값을 계산한다. 그녀 얼굴에는 뭔지 모를 자부심이 서려 있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목소리의 강약, 굵기, 음색에 따라 그녀들이 가진 북채도 가지각색이다. 가장 먼저 등장한 북은 그녀들의 최대 관심사인 학교다. 미비한 학교 시절이 줄줄이 끌려 나온다. 리더로 보이는 그녀가 북채를 높이 들어 내려치기 시작한다. 기다렸다는 듯 그녀들의 합동 난타가 이어진다. 급식의 질이며 청결 상태, 불편한 학교 시설을 거침없이 두드린다.
  리듬과 비트를 중심으로 한 한국형 뮤지컬인 난타는 마구 두들기는데 그 묘미가 있다. 사물놀이 리듬을 바탕으로 서양음악을 가미시켜 흥겨움을 유발한다. 공연자는 물론 관람객까지 속이 뻥 뚫리는 통쾌함을 느낀다. ‘왁자그르르그녀들의 웃음소리와 고조된 표정이 공연에 심취했음을 말해준다.
  약간 흥이 떨어지려는 찰나, 선생님들이 등장한다. 선생님의 나이와 외모, 수업 태도 등이 두들김을 당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같은 리듬을 타는 건 아니다. 북채를 놓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북채를 그러잡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람도 있다. 제각기 자신이 관심 있는 북에 북채를 더 높이 치켜든다.
  그녀들의 공연은 다채롭다. 북이 수시로 바뀐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친구 엄마에서 학원으로, 급기야는 자 붙은 북이 줄줄이 끌려 나온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 시할머니, 시고모까지 출현한다. 여러 북채가 신들린 듯 춤을 춘다. 그녀들의 무료함이 흥으로 변주되고, 가슴속 응어리가 팡팡 터진다. 고민은 동질감이 되고 자 앞에 위축되었던 자존감이 활짝 펴진다. “딱딱 따그르르, 딱딱 따그르르.” 경쾌하고 시원한 소리보다 둔탁한 소리가 섞여 있다. 매끄럽지 못한 북소리가 공중에서 부딪치고 깨진다.
  곧이어 자 보다 위상이 높아진 친정이란 북이 등장한다. 그녀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절정에 달한다. 두드렸다가 아우르고, 당겼다가 놓고, 풀었다가 숨기고, 손발이 척척 맞는다. 한곳으로 몰렸다가 뒤로 돌아갔다가 몸을 비틀었다 펴기도 한다. 그녀들의 공연 특징은 좋아도 두들기고 싫어도 두들긴다는 점이다. ‘두드려라, 쳐라, 마음껏 발산하라좋으면 둥둥둥싫으면 퉁당퉁당북채는 변신을 거듭한다. 질서가 없는 듯해도 그녀들의 난타에는 꼭 등장하는 단골 북이 있다.
  또한, 공연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우월감이다. 드러내고 자랑하는 게 덕이 된 세상에 맞게 그녀들에게 은근함이란 없다. 겸손해하거나 감추기보다 당당하게 보여준다. 사람의 관계에 작용하는 물질의 힘을 믿기 때문이리라. 해외여행의 북을 놓고 그녀들의 난타가 콘 브리오(Con Brio)로 이어진. 생활수준이 비슷해서인지 장단이 척척 맞는다. 끄덕끄덕 추임새도 흥을 돋운다.
  그녀들의 공연은 몇 시간째 이어진다. 그사이 어떤 관객은 기가 질려서 나가버리고 어떤 관객은 아예 외면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공연에 심취해 관객들의 표정을 살필 겨를이 없다. 그녀들에 의해 깨진 북이 바닥에 수북하다.
  중년 여인들이 건강과 자식, 남편의 북을 두드리는 것에 반해, 젊은 엄마들의 관심사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하지만 그녀들의 공연은 깊은 맛이 부족하다. 설익은 듯한, 어설픈 가락이 가끔 엇박자로 이어진다. 달면 삼키고 쓰면 미련 없이 뱉어버리는 이기주의 북채가 흐름을 끊어버릴 때도 있다. 둥글둥글 어울리기보다 툭툭 튀는 개성을 무기로 내세운다.
  그녀들의 난타에는 자신의 정체성이 숨어 있다. 생산이 아닌 소비의 시간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주체가 되는 마술 앞에 그녀들은 기꺼이 시간을 투자한다. 흐름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는 집단의식은 그녀들을 더욱 결속시킨다. 절정에 달했던 공연이 드디어 끝났다. 얼굴이 발개진 그녀들이 북채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음 공연을 위한 예약 같은 건 없다.
  우르르 매장을 나가는 그녀들을 나는 무심히 바라본다. 열기가 식은 공연장에는 그녀들의 흔적만이 뒤풀이를 하고 있다. 찌그러진 컵, 뜯긴 슬리브, 빵부스러기들, 커피로 얼룩진 탁자, 꺾이고 접힌 빨대가 여운을 즐긴다. 나는 다음 공연을 위해 공연장을 청소한다. 가지각색의 사연들이 허공에 떠다니고, 조각난 북이 바닥에 버려져 있다. 그것들을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탁자와 의자를 정리하고 나자 출입문 쪽이 소란스럽다. 여고생 세 명이 튀밥 같은 웃음을 터트리며 들어온다. 갑자기 환해진 공연장,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여고생 한명이 거침없이 내뱉는다.
~~ 울쌤 짱나!” 곧 새로운 공연이 시작될 모양이다.

<선수필 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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