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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방/ 장미숙

테오리아2 2021. 9. 2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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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문이 닫히면 빛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전등 스위치를 찾느라 낮에도 벽을 더듬거려야 했다. 센서 등도 없고, 불빛이 흘러나오는 곳도 없었다. 불은 필요에 의해서만 밝힐 수 있었다. 여자와 아이는 차가운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작은 유리창을 통해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차가 지나갔으며 자전거 바퀴가 굴러갔다. 창이 워낙 작아 단면만 보일 뿐 위의 세상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도 햇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곳이었다.

 

아이는 중학생, 제멋에 겨워 한창 까불 때이건만 어둠에 갇혀 버렸다. 벽에 발길질하는 아이를 여자는 바라보았다. 아이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원장님은 나만 미워해. 맨날 야단만 치고.” 아이는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집에 가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여자는 그런 아이가 불안했다. 정말로 가버릴까 봐 가슴이 철렁했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흔들렸다. 이 방법이 옳은가. 언제까지 숨어서 살 수 있을까. 발각되어서 다시 들어가야 한다면? 아이의 학교는? 삼 개월 후는 어떡하지? 머리가 복잡해진 여자는 드러누웠다. 차가운 방바닥이 여자의 언 등을 후려쳤다.

 

한 달 전, 여자가 집을 나올 때 그날은 발목까지 쌓인 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얬다. 시간은 저녁 열두 시에 가까웠다.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인근 파출소로 향했다. 옷 가방이 무겁다며 아이는 툴툴거리면서도 여자에게서 가방을 가져갔다. 경찰은 여자와 아이를 임시보호소로 보냈다. 여자는 그날 밤 아이랑 낯선 곳에서 밤을 새웠다. 수많은 사람이 거쳐 갔을 방은 웃풍이 심했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 흘렸을 눈물과 한숨이 가슴을 짓눌렀다.

 

다음날, 여자와 아이는 가정집처럼 보이는 쉼터로 가게 되었다. 아이와 떨어지길 원치 않는 엄마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곳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핸드폰은 원장님께 맡기고 외부와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 여자는 지하에 있는 방 하나를 배정받았다. 명상실과 창고가 있는 지하는 철문을 닫으면 어둠뿐이었다. 방은 깨끗했지만 뼈가 시리도록 추웠다.

 

방에는 일인용 침대와 작은 장롱, 책상과 비키니 옷장, 그리고 누군가 미처 챙기지 못한 아이들 장난감이 굴러다녔다. 앞서 살다간 이들의 시간이 곳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쌀과 김치만 제공될 뿐 모든 건 직접 해결해야 한다며 원장님이 밥통을 가져다주었다. 시멘트 바닥으로 된 부엌이 방 옆에 붙어 있었다.

 

그 집에는 여자 외에도 다른 가족이 있었다. 일 층은 원장님과 직원이 생활했고 이 층에는 두 가족이 함께 살았다. 다음날, 여자는 그들을 만났다. 광희(가명)네와 기수(가명)네였다. 기수엄마는 남편의 의처증으로, 광희엄마는 흉기를 드는 남편을 피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도 각각 아들이 하나씩 있었다.

 

그중 기수는 여자의 아이와 동갑이었다. 아이는 기수와 금세 어울렸다. 두 아이는 인터넷도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갑갑함을 참기 힘들어했다.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게 전부인 아이들에게 그곳은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아이는 원장님을 피해 작은 규칙들을 어겼다. 어느 날은 몰래 피시방에 갔다가, 어느 날은 공원에 놀러 갔다가 야단을 맞았다.

 

원장님은 아이들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매몰차고 냉정했다. 가정폭력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이라고 다독여주지 않았다. 여자도 그런 걸 점점 포기하게 되었다. 수많은 아이를 대하니 원장님 입장에서는 지극히 사무적일 수밖에 없었다. 고분고분한 아이들을 좋아했고 눈빛이 사나우면 노란 떡잎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렸다. 여자의 아이와 기수도 노란 떡잎이었다. 두 아이는 자주 원장님께 불려갔다.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도 두 아이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문을 쾅쾅 닫았고 엄마들 가슴에는 시퍼런 멍이 들었다.

 

여자와 기수엄마의 시선은 낮은 데로 향했다. 아이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원장님 앞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칼바람이 몰아치던 날 밤, 화가 난 원장님은 당장 나가라며 차갑게 말했다. 기수엄마와 여자는 아이들을 대신해서 빌고 또 빌었다. 눈물은 가슴에 내를 만들었다. 절망의 밤, 어둠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었다.

 

이 층 여자들은 직장에 다녔다. 기수엄마는 식당일을 했고 광희엄마는 병원에서 간병일을 했다. 보증금을 조금이라도 마련해야 3개월 뒤 이사할 수 있어서였다. 그녀들은 집에서 빈손으로 나왔다고 했다. 쉼터는 계속 새로운 사람을 받아야 했으므로 3개월이 머물 수 있는 한계였다. 그 안에 여자들은 자립할 수 돈을 마련해야 했다.

 

일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겨우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었다. 여자도 한 달이 지나자 국밥집에서 서빙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아이에게 뭐라도 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일이 끝나고 돌아와도 쉴 수가 없었다. 쉼터에 손님이 오면 음식을 준비해야 했고 돌아가며 청소도 했다. 저녁에는 매일 명상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건 외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그들은 쉼터에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을 정상으로 보지 않았다. ‘오죽 못났으면 폭력을 당하고 살까.’ 그들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심리 치료와 정기적인 상담이 이어졌다. 여자는 점점 그곳에 환멸을 느꼈다. 가정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게 여자가 깨우친 진실이었다. 오히려 상처를 받자 상담도 싫어졌다.

 

이 층 광희네가 이사했다. 원장님은 사람들이 기부한 가전제품 몇 가지를 나눠주었다. 누군가 쓰다 버린 것이라도 여자들에게는 귀했다. 그날 세 가족은 광희네 집에 모였다. 전세 백만 원에 월 20만 원 집은 지하 창고 같았다. 세 여자는 그 집을 쓸고 닦았다. 모두 허리가 꼬부라질 즈음에야 겨우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날 밤 광희엄마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감자탕을 끓였다. 고기를 맛보기는 오랜만이었다. 김치부침개와 누룽지에 질려있던 아이들은 먹을 것에 집착했다. 정에 굶주린 탓에 허기에도 무너지기 일쑤였다.

 

광희네 빈자리로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다. 민철이(가명)네였다. 민철이는 자폐까지 있어 그 엄마가 몹시 힘들어했다. 기수네랑 맘이 맞지 않아 작은 다툼도 생겼다. 생활이 힘들다 보니 라면 하나, 달걀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여자는 지하가 춥긴 하지만 단독인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수네도 곧 쉼터에서 나갔다. 기수와 아이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두 아이는 숨듯이 학교에 오갔다.

 

쉼터에는 독립해서 사는 가족들이 찾아오곤 했다. 그들은 두 부류였다. 이혼해서 폭력으로부터 해방된 가족과 여전히 숨어 지내는 가족이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여자는 혼란스러웠다. 이혼은 엄두를 낼 수 없었고 영원히 숨어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춘기를 맞은 아이는 점점 거칠어졌다.

 

삼 개월이 조금 지난 어느 날, 명상시간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아이 아빠가 그곳을 염탐하며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여자는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헤어지던 날, 두 가족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여자는 아이를 위해서 견뎌보겠노라 했고 기수엄마는 눈가를 훔쳤다. 광희엄마는 유난히 눈물이 많아 펑펑 울었다. 그녀들의 거친 손이 눈물보다 아팠다.

 

여자의 가슴에는 다시 불안이 똬리를 틀었다. 한동안은 괜찮았다. 작은 희망도 생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예전의 생활이 이어졌다. 여자에게 이제 탈출구는 없었다. 많은 걸 포기했다. 의식적으로라도 현재를 망각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날들이었다.

 

그 끝은 생각지도 못한 일로부터 찾아왔다. 오래도록 여자를 묶고 있던 사슬이 풀렸다. 이제 더는 밤을 등에 업고 웅크리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경제적인 고통이 뒤따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에 세웠던 원망의 날은 조금씩 무디어갔다. 그의 외로움을 방관한 여자에게도 잘못은 있다 여겼다. 그에 대한 동정과 연민 때문에 울컥 설움이 솟구치기도 했다.

 

쉼터에서 지낸 몇 개월을 여자는 잊을 수 없었다. 뼈가 시리도록 추웠던 밤, 냉정했던 원장님의 눈빛, 시큼한 김치 냄새, 남이 버린 헌 옷을 고르던 아이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차가운 냉기 속에 갇힌 듯 몸이 움츠러들었다. 세상의 온갖 잉여물에 상관없이 그곳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식에 대한 죄의식에 울던 엄마들이 있었고,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짓던 깊은 한숨이 있었다.

 

여자는 불쑥 그들이 생각났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처럼 그날들과 맞닥뜨리곤 했다. 기수네는, 광희네는 어찌 지낼까.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겠다고 약속해놓고 한 번도 찾지 못했다. 그래도 한때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도움을 받은 곳이라 기억이 생생했다. 그곳마저 없었더라면 어디에 몸을 누일 수 있었을지 생각하면 아득해지기도 했다.

 

 

 

십여 년이 지났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여자는 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깊은 어둠을 더듬거리며 빛에 목말라하는 파리한 얼굴들을 안다. 굵은 자물쇠가 걸려있던 그 철문이 철컹거릴 때 누군가의 가슴에도 빗장이 걸린다는 걸. 출구 없는 현실에 갇힌 사람들의 소리 없는 발걸음이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 흩어져 있다는 걸 어떤 이들은 알고 있다.

 

 

 

<바닥 202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