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혜 106

나는 염산이었을까-김근혜

나는 염산이었을까 김근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느 작가의 발표 글이 자신의 글과 비슷하다고 했다. 부랴부랴 지인의 글과 비교하며 읽어 보았다. 어느 부분에선가 읽었던 대목이 스쳤다. 지인은 그 작가와 만난 자리에서 얘기를 나눈 것 같다. 작가의 글과 자신의 글이 비슷한 것 같다고. 다행하게도 지인은 그날 밤 작가와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지인의 진심 어린 사과를 작가도 순순히 받아들인 것 같다. 작가를 미워했던 마음이 눈 녹듯 가라앉고 좋아지기 시작했다며 미안해했다. 지인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면 관계가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일이란 벌리기는 쉬워도 수습하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바로 인정할 줄 아는 지인이 아름답게 보였다. 수업 갈 때면 ..

근* 글 2018.04.04

줄-김근혜

줄 김근혜 햇살 머금은 강물 위로 하얀 나비 떼가 나폴나폴거린다. 소슬한 바람을 타고 뱃사공의 구성진 노랫가락에 맞춰 나룻배가 닻을 내릴 것만 같다. 강원도 황지에서 출발하여 낙동강, 봉화에서 흘러드는 내성천, 문경의 금천 물줄기가 만나 삼강을 이룬다. 서로 다른 세 갈래의 물길이 합류하는 간이역이 합수머리이다. 지금은 4대강 개발로 흔적은 간 곳 없고 한 줄기 물살만이 역사를 품은 채 유유하다. 사그락사그락 댓잎 소리를 들으며 선비가 걸어갔을 법한 역사의 뒤안길로 내 발자국도 따라간다. 담장 너머로 조선 시대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이 동양화처럼 펼쳐진다. 주막과 더불어 몇백 년은 됨직한 회화나무엔 솜털 구름이 다리쉼을 하고 있다. 주모가 버선발로 쫓아 나와 반길 것만 같고 가마솥에선 길손을 기다리는 국..

근* 글 2018.04.04

사치스러운 신음-김근혜

사치스러운 신음 김근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손수레에 실린 파지, 술병, 깡통, 잡동사니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려 있다. 미끄러운 빙판길에서 할머니는 손수레 모는 일조차 힘에 부쳐 곧 넘어질 것 같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쌓아둔 폐지를 가져가라고 할머니에게 사무실 비밀번호를 가르쳐 줬다. 그런데 쓰고 있는 가재도구를 몽땅 가지고 갔다. 직원들과 밥도 해먹고 라면이라도 끓일 요량으로 솥 몇 개, 수저 몇 벌 등을 갖춰두었었다. 깨끗이 닦아두지 않았더니 버리는 것으로 알았나 보다. 사무실에서 가져간 가재도구가 쇠붙이라서 횡재했다고 감사의 말을 거듭했다. 온종일 다녀도 몇천 원 벌기가 쉽지 않고 헛걸음하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얼마 전에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본 ..

근* 글 2018.04.04

욱수천의 봄-김근혜

욱수천의 봄 김근혜 생목 오르는 봄, 사람들은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떠났다. 노을만이 지붕 위에 머물다 산을 넘었다. 그들은 울지 않았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두 시대가 공존하고 있다. 건너편에는 다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집 몇 채가 힘에 겨운 듯 버티고 있고 맞은 편 아파트촌에는 고급 승용차가 수시로 드나든다. 욱수천 개발 공사로 몇몇 집은 이사를 하였는지 헐리고 없다. 보다 못한 빈자의 뜰엔 컨테이너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소 울음만 귀에서 맴돌고 낡은 외양간엔 늙은 트럭 한 대가 우두커니 서 있다. 소는 사람과 더불어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한 존재다. 살림살이 밑천이고 만년 머슴으로 집안의 장남 격인 소를 마지못해 팔았을 주인의 마음은 어떠할까. 놀라운 일이다. 나무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톱보다..

근* 글 2018.04.04

어깨가 아파요-김근혜

어깨가 아파요 김근혜 요즘 아이들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늘 피곤함에 지쳐 있는 어두운 모습이다. 깔깔거리며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이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늘 허덕인다. 저녁 7시에 집에 돌아간다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만나고는 적잖이 놀랐다. 조그마한 어깨에 매달린 책가방이 아이를 땅으로 자꾸만 내려 앉힌다. “어깨가 아파요”라는 말에 무심히 지나칠 수 없어서 책가방을 들어주었다. 묵직하니 등짐 같다. 비단 그 아이만의 얘기는 아니다. 내 아이의 일이고 세상 모든 아이의 말이다. 세상 짐에 짓눌려 있다는 말 같아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래, 너희가 아픈 건 어른들 탓이야.’ 이 학원, 저 학원을 돌다가 해가 뉘엿해질 무렵에야 귀가하는 아이가 남의 일 같지 ..

근* 글 2018.04.04

이웃 죽·이·기-김근혜

이웃 죽·이·기 김근혜 지인으로부터 사후, 장기기증을 하기로 서약했다는 말을 듣고 감동하였다. 나도 생각은 있었지만, 선뜻 내키지 않아서 망설였다. 한 사람의 장기기증으로 아홉 명을 살릴 수 있다니 대단한 일임은 틀림없다. 작은 베풂이 소중한 이웃을 살릴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일이 있을까. 일기장을 뒤적이다 ‘나눔’이란 글에 시선이 갔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고부터 마음이 팍팍해졌다는 반성의 글이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눈시울이 먼저 뜨거웠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쪼개서 나보다 못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손길을 보탰었다. 내 형편이 닿지 않으면 동사무소 복지과를 찾아가서 그런 사람들의 실태를 알리기도 했다. 그랬던 가슴이 왜 이리 냉랭해진 것일까. 내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것은..

근* 글 2018.04.04

청춘 사진관-김근혜

청춘 사진관 김근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차’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늙수그레한 영감님과 낡은 카메라가 시야에 들어왔다. 간판 이름과 건물만 보고 현혹된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었다. 사람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내가 그때만큼 힘든 적이 없었다. 머리에서는 손이 나와 슬며시 등을 떼밀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니 나가라고 재촉했다. 예의란 놈이 불쑥 끼어드는 바람에 엉거주춤 들어서고 말았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라서 상처를 받을까 봐 그냥 주저앉은 것이 탈이 났다. 영감님은 두 컷 찍고는 다 찍었으니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찍어달라고 했더니 돈이 더 든다고 했다. 그러면 포토샵으로 ..

근* 글 2018.04.04

홀로나기-김근혜

홀로나기 김근혜 가을은 여인의 가슴을 애연(哀然)하게 한다. 삶을 빚던 봄과는 달리 철썩 파도가 때리고 가는 느낌이다. 외로움이 불쑥불쑥 문턱을 넘나든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캄캄하고 텅 빈 공간에서 느껴지는 황량함이 두려워 선뜻 들어서기가 망설여진다. 열었던 문을 다시 닫고 거리로 나선다.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홀로나기 연습 중이다. 처음엔 혼자 있는 것이 홀가분해서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간섭할 사람이 없어 좋고 행동도 자유로워 눈치 보지 않아도 되었다. 삼 대가 도를 닦아야 누릴 수 있는 호강이라며 부러워들 했다. 혼자 오래 살다 보니 음식도 사 먹는 편이 많다. 어쩌다 만나는 가족이 반갑고 즐거워야 하는데 요리할 일이 스트레스로 여겨질 때도 더러 있다. 그런데 이젠 가..

근* 글 2018.04.04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김근혜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김근혜 내 차례가 되었다. 생애사를 절반도 읽지 않았는데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봇물이 터지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내 옆에 앉은 그녀가 남편 얘기를 하기 전까지는 평온하기만 했다. 그녀는 부잣집 마나님처럼 아주 고왔다. 젖은 땅이라곤 한 번도 밟고 살았을 것 같지 않은 온화한 모습이다. 그녀 남편은 직장이 없어서 놀고 있는 처지다. 먹을 것이 없어 아등바등하면서도 돈을 빌려 술을 마시고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주정도 하지만 그녀는 언젠간 남편이 변할 거라며 기도만 한다고. 그녀가 흘려야 할 눈물이 내 팍팍한 삶과 만나서 이입되었나 보다. 감추어두었던 아픔이 요동치며 다투어 흘러내렸다.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어쩌면 내가 믿는 신께서 이런 기회..

근* 글 2018.04.04

문자를 씹다-김근혜

문자를 씹다 김근혜 카카오톡으로 동영상이 들어왔다. ‘보낸 문자에 대해 답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기도문’이라는 글이었다. 유머라기보다는 거의 저주에 가까울 정도라서 머리가 쭈뼛했다. 동영상을 보낸 사람에게 내용이 너무 잔인한 것 같다고 했더니, 재미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하루에 스무 번 이상 설사하게 하고 설거지를 할 때마다 그릇을 깨게 해 달라.”는 글이 과연 재미있는 것일까. 답장하지 않은 것이 큰 형벌처럼 느껴졌다. 문자를 받는 사람은 상당히 불쾌하고 상처를 받을 일이었다. 또 어떤 문자가 들어올지 겁이 나서 지체 않고 답장을 보냈으나 찜찜했다. 반면, 어떤 경각심도 생겼다. 답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방법은 좋지 않았지만,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문자를 보내..

근* 글 2018.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