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청춘 사진관-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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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사진관

  김근혜

 

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차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늙수그레한 영감님과 낡은 카메라가 시야에 들어왔다. 간판 이름과 건물만 보고 현혹된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었다. 사람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내가 그때만큼 힘든 적이 없었다. 머리에서는 손이 나와 슬며시 등을 떼밀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니 나가라고 재촉했다. 예의란 놈이 불쑥 끼어드는 바람에 엉거주춤 들어서고 말았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라서 상처를 받을까 봐 그냥 주저앉은 것이 탈이 났다.

 

영감님은 두 컷 찍고는 다 찍었으니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찍어달라고 했더니 돈이 더 든다고 했다. 그러면 포토샵으로 잔주름이나 점을 빼 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점 하나만 달랑 빼고는 다 됐다고 한다. 속이 부글거렸지만 아버지뻘 되는 분에게 따지지도 못하고 멀뚱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사진은 현상하지 않아도 되고 원본만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또 돈을 더 달라고 한다. 잠시 혼이 나간 것 같이 멍해졌다. 가만히 앉아서 코가 베인 기분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로 결제하면 수수료 삼천 원이 더 든다고 했다. 영감님은 아직도 삶에 흥정할 것이 많이 남아 있는지 돈, , 돈밖에 모르는 것 같았다. 이런 경우를 두고 어처구니없다고 하는 것일 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내 사진관에서는 꽃 아줌마로 변신을 시켜주고도 영감님이 받은 돈의 절반도 안 되었다. 바가지를 왕창 쓰고도 제대로 된 사진 하나 건지지 못하고 기분만 불쾌해서 돌아왔다.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오말순 할매가 청춘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은 후 이십 대 꽃 처녀, 오두리로 변신한다. 가수로 성공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제작자와 달콤한 사랑에도 빠지지만 할매는 교통사고가 나서 수혈이 필요한 손자에게 혈액을 나눈다. 혈액이 나오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설정이다. 하지만 할매는 자신의 행복보다 손자를 구한다.

 

반월당 지하상가에는 사진관만 모여 있는 거리가 있다. 그 많은 사진관 중에서도 유독 손님이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입소문으로 찾았는지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마우스가 마술을 부린다.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팔자 주름은 간 곳이 없다. 변모해 가는 내 모습이 예술이다. 모니터에서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양귀비 뺨칠 정도이다. 참 좋은 세상이다. 약간의 보정만 했는데도 십 년은 젊어 보인다. 아무것도 아닌 마우스로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다니 정신과 의사보다 낫질 않은가. 이곳에서 애써 나이를 들먹이며 아름다운 환상을 깰 필요는 없다. 영감님 사진관에서 받았던 불쾌한 기분이 상쇄된다.

 

할머니 한 분이 기다리고 있다. 영정사진을 찍으러 온 모양이다. 마우스가 시술한다. 자글거리던 잔주름도 다리미로 말끔히 편 듯 변모해 가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의 눈동자가 자꾸만 커진다. “에구구 내 젊었을 때 모습이구먼, 나야 젊어져서 좋지만……. 내가 죽으면 2년 전에 죽은 영감이 못 알아보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면 어쩌누.” 그래도 싫진 않은지 연신 벙글거리신다.

 

수상한 그녀에서 오말순 할매는 젊음은 한낱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말하지만 포토샵 기술로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것이 한낱 사진에 불과할지라도 그 순간은 행복하지 아니한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아름답게 변신한 내 모습이 상으로 맺힌다. 괜히 들떠서 걸음이 둥실둥실한다. 지나치는 사람이 눈길만 줘도 어깨가 들썩이고 콧노래가 나온다. 청춘사진관이 행복지수를 높여주니 참 기쁘다. 행복 한 아름 안고 돌아오는 길. 오말순 할매의 말처럼 나도 너무나도 좋은 꿈을 꾸었네.”

Bal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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