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이웃 죽·이·기-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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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죽··

 

김근혜 

인으로부터 사후, 장기기증을 하기로 서약했다는 말을 듣고 감동하였다. 나도 생각은 있었지만, 선뜻 내키지 않아서 망설였다. 한 사람의 장기기증으로 아홉 명을 살릴 수 있다니 대단한 일임은 틀림없다. 작은 베풂이 소중한 이웃을 살릴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일이 있을까.

 

일기장을 뒤적이다 나눔이란 글에 시선이 갔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고부터 마음이 팍팍해졌다는 반성의 글이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눈시울이 먼저 뜨거웠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쪼개서 나보다 못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손길을 보탰었다. 내 형편이 닿지 않으면 동사무소 복지과를 찾아가서 그런 사람들의 실태를 알리기도 했다. 그랬던 가슴이 왜 이리 냉랭해진 것일까.

 

내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것은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고자 함이었다. 대학원에 와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수가 부유한 형편의 사람들이었다.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나 다수는 복지관 건립을 위해 자격증이 필요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자격증은 있으나 그것을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와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이 인정을 메마르게 하는 것 같다. 불우이웃돕기조차 자동으로 이체되는 시대다. 나도 매달 통장에서 자동이체 된다. 각박한 것 같으나 돈을 보면 손이 오그라들 여지도 있으니 장점도 된다.

 

불우했던 청소년 시절이 있어서 그런 아이들을 보면 늘 안타깝다. 그래서 소년, 소녀 가장 돕는 일을 하고 장학금도 보태곤 했다. 그들에게서 편지가 올 때는 더 많이 해주지 못함이 아쉬웠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장학재단을 만들어 보는 것이 마지막 남은 꿈이다.

 

딸아이는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배워서인지 시키지 않아도 장기기증까지 스스로 해두었다. 아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떨어져 지내서 아픈 손가락이다. 가정교육도 문제지만 챙겨주지 못한 것이 아픔으로 남아 있다. 사회에 환원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내 돈으로 후원하고 아들 녀석에게 문자 한 통 넣어 주라고 단체에 전화했다.

 

혹자는 잠에서 깨어 스마트폰을 바라볼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기계가 남편이고, 아내이고, 친구이고, 이웃이다. 모든 것이 가상공간에서 해결된다. 편리함이 사람의 온기마저 빼앗아 간다.

 

이웃이 겪는 행()이든, 불행이든 함께할 수 있는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신문이나 공중파 방송으로 부고를 듣는다. 씁쓸한 현실이다. 성경에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나만 사랑하기에 급급해서 이웃은 돌아볼 여지가 없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을 살면서 잊고 살았던 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한 마리 파리를 죽이는데 야단법석을 떨지 말고 지금 당신이 이웃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라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이 단단한 심장을 허문다. 우리는 무관심의 바다에서 산다. 옆집에 누가 살든 관심이 없다. 무관심이 곧 이웃을 죽이는 행위는 아닐까.

 

생명이 있는 것은 관심을 먹고 자란다. 관심은 눈길이다. ‘눈길배려사랑을 낳는다. 세상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배고픔보다 마음 문을 열고 관심이라는 렌즈로 이웃을 다시 바라봐야겠다. 녹록하지 않은 세상에 관심을 주는 누군가로 용기를 얻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이보다 큰 도움은 없을 것이다.

 

기계에 마음 맡겨두고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안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 작은 관심이 이웃을 향한 불씨가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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