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줄-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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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혜

 

머금은 강물 위로 하얀 나비 떼가 나폴나폴거린다. 소슬한 바람을 타고 뱃사공의 구성진 노랫가락에 맞춰 나룻배가 닻을 내릴 것만 같다. 강원도 황지에서 출발하여 낙동강, 봉화에서 흘러드는 내성천, 문경의 금천 물줄기가 만나 삼강을 이룬다. 서로 다른 세 갈래의 물길이 합류하는 간이역이 합수머리이다. 지금은 4대강 개발로 흔적은 간 곳 없고 한 줄기 물살만이 역사를 품은 채 유유하다.

 

사그락사그락 댓잎 소리를 들으며 선비가 걸어갔을 법한 역사의 뒤안길로 내 발자국도 따라간다. 담장 너머로 조선 시대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이 동양화처럼 펼쳐진다. 주막과 더불어 몇백 년은 됨직한 회화나무엔 솜털 구름이 다리쉼을 하고 있다. 주모가 버선발로 쫓아 나와 반길 것만 같고 가마솥에선 길손을 기다리는 국밥이 설렁설렁 끓고 있는 듯하다.

 

삼강은 어머니가 그리울 때 자주 찾는 곳이다. 고향이 용궁이다 보니 어린 날에는 이곳에서 모래성을 쌓고 허물면서 나이가 찼었다. 다 쓰려져 가는 흙집으로 된 주막에는 몇 년 전만 해도 주모가 살아 있어서 띄엄띄엄 지나다니는 인적에게 말 동냥을 건네기도 했다.

 

주막은 주모의 터전이자 젖줄이었다. 소금 배가 도착하는 날, 장이 서면 몇십 리 인근의 사람들로 나루터가 북적였다고 하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겠다. 길손들은 육신의 고단함을 강물 속에 훌훌 던져버리고 술잔에 떨어지는 별빛과 하늘을 지붕 삼아 흥도 돋웠으리라. 주모는 본향으로 회귀했지만 벽화에 그려놓은 줄로 그의 자취를 남겼다. 지금은 낯선 여행자들이 우루루 몰려와 탁배기로 목을 축이고 있다.

 

부엌 벽에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같은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원시인들이 몸짓이나 그림으로 의사를 전달했듯이 글자를 모르는 주모도 앞선 문명과는 거리가 먼 이방인이었다. 벽화는 돌멩이로 긁어서 외상값을 줄로 표기해 둔 장부이다. 길게 세로로 그려진 줄이 외상값을 받아야 하고 갚은 것에는 가로줄을 그어 받았다는 표시를 했다. 이름도 없는 장부지만 줄을 보고 누구의 외상값인지 알았다고 하니 나름의 지혜가 돋보인다.

줄은 주모와 나그네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가 아니었을까.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끈끈한 정이고 사람 사는 순박한 냄새였을 것이다. 길손들의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등불이며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은 연민의 울림이었지 모른다.

 

가로줄이 적은 것으로 보아 나그네들의 외상값을 많이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주모는 어떤 마음으로 줄을 바라봤을까. 아무리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양가감정이 있었을 법하다. 외상이란 것이 줄 때와 받을 때가 다르지 않던가. 받을 때는 허리를 굽혀 받아야 하듯이 아무개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한 적도 있으리라.

 

그러다가 피치 못할 사정을 생각하며 고까운 마음을 툭툭 털어냈으리라. 이런저런 사정으로 장부에 줄 한 줄 더 얹는 인생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허름한 주머니를 매몰차게 내치지 않고 푼푼한 인정을 베푼 아름다움은 보살의 마음이 아니었겠는가.

 

벽을 보고 있노라니 인간관계에서 줄을 그었던 사람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얽기고 설긴 사연들이 벽에 그려진 줄만큼이나 많았다. 사소한 오해조차도 용납하지 못한 옹졸함으로 인해 인연 끊기를 무 자르듯이 하고 조금만 불편해도 혈기를 앞세워 적으로 만들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주모는 외상값을 받은 표시로 십자가를 그었지만 난 단절의 표시로 그었던 것 같다.

 

깨진 사금파리는 아름답게 빛이 날지 모르지만 깨진 것이기 때문에 값어치가 없는 것이다. 무릇 인간관계도 깨어지지 않았을 때 보석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줄을 그어놓고 한 발자국만 넘어와도 경계경보를 울렸던 나에게 외상장부는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경고의 메시지 같다. 인색했던 마음이 투영되어 십자가 앞에 선 것 같은 경건함이 든다.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대한 많은 사람의 가슴에 줄이 새겨지리란 걸 진즉에 알았더라면 고약하게 굴지는 않았을 거다. 이미 지난 것은 되돌릴 수 없지만 앞으로 다가올 인연은 사기그릇처럼 조심조심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경계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이기적인 삶에 주모의 곱게 핀 인정의 싹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증인으로 산다.

주막은 여행자들로 왁자하다. 여행자들 속에 주모가 객으로 외상값을 갚아야 할 객이 주모로 환생해서 이승에서 풀지 못했던 과보를 풀고 있는 것 같아 두리번거려 본다.

 

해가 강물 속으로 총총히 빠진다. 뜨겁게 달구었던 여행자들의 붉은 가슴도 주막을 뒤로 삼강교를 지난다.

 

-경북문화체험공모전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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