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어쩌자고, 이름표/김근혜

테오리아2 2019. 6. 1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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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서문을 읊는다. 마이크에 기름을 바른 듯 반지르르한 말이 굴러 나온다. 경매사는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마음대로 넘나들며 흥정을 붙인다. 지긋이 묵상하는 구경꾼들 등줄기에 실핏줄이 일어선다. 시간을 추리하려는 사람들의 인기척을 가만가만 듣고 있는 촛대 하나가 마음을 졸이고 있다. 한 해가 가기 전 매출이라도 올리려는 걸까. 경매사의 목소리에 고이는 힘이 만만찮다.

 

사람들의 잠자던 손가락이 눈을 열고 서성거린다. 물건은 전파탐지기를 매단 고래가 된다. 큰 화면으로 그를 보며 둘째손가락으로 왼쪽을 쉼 없이 클릭, 클릭하는 사람들. 마우스는 설렌다. 여체를 조각한 목각 인형에게도 극적인 장면이 나올까. 새소리마저 죽은 금요일 밤, 경매장의 열기는 뜨겁다.

 

잠시 쉬고 있는 나에게 DNA가 두드린다. 휴지기 동안 결핍을 보강하기보다는 마음 놓고 푹 쉬었다. 머릿속에서 맴돌다 누술하지 못한 많은 언어를 매장하고 마음을 눕혔다. 고삐를 풀어놓고 다른 용도로 사육했다.

 

날마다 문턱을 넘어오는 언어들과 줄다리기를 했다. 마르지 않은 우물을 애써 파묻고 밀실에 가뒀다. 잠수하고 있는 언어들이 책장을 넘길 때는 가슴이 무거웠다. 달빛의 뒤태마저 쓸쓸하게 느껴지던 날들이다. 맨발이어서 활자화되지 못한 내 이름, 높지도 않은 담장이 높아서 뛰어넘지를 못했다.

 

이름이 이름값을 하는 틈에서 검색기를 돌린다. 어떤 이름은 나를 단련시키기고 이스트를 넣은 허명은 실망하게 한다. 세 음절 밖에 안 되는 이름표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는데 내 삶의 보고서는 빈약한 것 같다. 이름값에 가격표를 붙이려고 눈과 귀가 멀어 마음이 불구가 된 적은 없는가. 이름은 책임이 따라서 함부로 내세우기가 조심스럽다.

 

이름은 과시하려는 속성이 있다. 체면치레를 위해 무리해서라도 ○○○가방을 사는 것처럼. 축적된 셈법으로 군살을 찌운다. 내 이름값에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 있는데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쓸쓸함, ‘지경경지사이에서 견디는 법을 훈련하고 있다. 이름도 생명체와 같아서 성장하고, 아프고, 늙고, 결국에는 죽는 것을.

 

인간도 때론 경매시장에 내놓은 상품 같지 않은가. 아무리 좋은 것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그 가치는 무의미하다. 낙찰되어야 비로소 존재가 된다. 인생은 낙찰과 패찰 사이에서 늘 조마조마한 가슴을 움켜잡고 사는 것 같다. 반드시 건너야 할 13월의 강.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손가락을 펼쳐 나에게 지문을 찍을 때 비로소 낙찰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다리를 요염하게 꼬고 밥상 위에 앉아 노려보는 음식이 있다. 맛이 없어서 손이 가질 않는데 성인병에는 좋다고 인기다. 구약나물이 되기 전의 알줄기처럼 나는 성격이 뾰족하다고 생각했을 뿐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쫓아다니는 남학생들이 많아 도망을 다니다 보니 달리기 선수가 된 적은 있다.

 

네 맛, 내 맛, 없는 구약나물 같은 나도 값을 매길 수 있을까. 골동품 경매장에 가는 날이면 물건에 나를 대입해 본다. 경매사는 입력된 정보에 호흡을 불어 넣고 마이크를 잡는다. 속옷이 다 비치는 시스루 원피스를 입고 가림막이 처진 단 위에 오른다. 경매사의 손짓에 따라 가림막이 서서히 벗겨진다. 사람들은 조리개를 크게 열고 숨을 죽인다.

 

경매사의 손가락은 여든여덟 개의 건반을 오르내리며 생의 분량을 연주한다. 높은 도 자리에서 뒤척이던 음절이 갑자기 끊긴다.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자리다툼이 인다. 경매사는 현기증을 일으키는 응찰자들을 위해 음에서 잠시 지휘를 멈춘다.

 

유찰된 목각인형이 내 동작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받아쓴다. 삐거덕거리며 일어나려고 분절음을 내는 글자, 이름값이 한 뼘쯤 자라나는 소리 같다. 반가사유상이 빙긋이 미소 띤 얼굴로 눈치 없이 다가오다 낙찰된다.

 

아흔여섯 살 된 포르투갈의 현역가수, ‘셀레스트 드리게스‘Chuva’를 부르며 응찰자들을 압도한다. 좁은 경매장 안은 삽시간에 파두 하우스로 바뀐다. 그녀는 노래한다. “인생의 이야기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이들이 있지만, 그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어찌 이름값만으로 살겠냐만 어쩌자고 나는 존재감도 없는지 의수같이 슬프다.

 

가장 저지르기 쉬운 것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오독이 아닐까. 경매사가 아무리 진품이라 우겨도 모조품을 가려내는 것은 응찰자의 눈이다. 모조품이 진품으로 행세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청진기를 들이대고 가슴이 보내는 신호를 살살 들어보고 싶다. 나는 가품佳品인가, 가품假品이 아닌가.

 

응찰자의 통찰력이 좋아서 내가 낙찰되는 꿈을 꾼다. 응찰자의 안목이 나빠서 내가 낙찰되는 꿈을 꾼다. 상영 중인 극은 막이 내리질 않는다. 패찰된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아쉬움을 토로한다. 쨍그랑 꿈이 달아난다.

 

 

 

 

 

문자해방과 인문학적 말 걸기

 

 

 

  김근혜의 수필 <이름표> 역시 수필적 언어 사용이 돋보인다. 그의 수필은 다분히 시적 상상과 사유가 자유롭다. 때론 함축적이고 때론 비유적이다. 화자의 상상이 산문적인 구체성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독특한 발상법을 운용하고 있다. 그래 그의 수필을 음미하다보면 다소 현학적 언술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정서보다는 지적 사유에 천착한 이 수필은 언어가 지닌 기의에 충실하고 있다. 서두는 “생의 서문을 읽는다.”로부터 열린다. “마이크에 기름을 바른 듯 반지르르한 말이 굴러 나온다. 경매사는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마음대로 넘나들며 흥정을 붙인다.”고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금요일 밤 경매장의 분위기를 “촛대 하나가 마음을 졸이고 있다.”라는 언술로 충분히 감지하게 한다. 낯선 상황의 제시다.

 

  이제 다음에 이어지는 수필적 언어인 문자가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잠자던 손가락이 눈을 열고 서성거린다. → 잠시 쉬고 있는 나에가 DNA가 두드린다. → 날마다 문턱을 넘어 오는 언어들과 줄다리기를 했다. → 이름이 이름값을 하는 틈에서 검색기를 돌린다. → 이름을 과시하려는 속성이 있다.→ 인간도 때론 경매시장에 내놓은 상품 같지 않은가.] 이쯤하면 이 수필의 단락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경매장을 열기로 뜨겁다. 화자는 경매장의 상황묘사를 통속적인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수필적 언어인 문자의 해방을 통하여 비유와 함축, 기의의 외연을 무한대로 펼치고 있다. 일견 독자들은 해석의 난해함에 잠시 어리둥절할지도 모른다.

 

  수필가 김근혜의 수필적 언어부림의 탁견은 전통수필의 서사적 전개에 대한 저항이자, 실험의식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인간도 때론 경매장에 내놓은 상품 같지 않은가.]에서 불식된다. 수필의 자기화, 동화다. 수필문학의 궁극적 지향인 ‘인간화’로 굴절 변용되고 있다. 이는 하이데거의 ‘존재사태’의 귀환일 것이다.

 

 

  인간도 때론 경매시장에 내놓은 상품 같지 않은가. 아무리 좋은 것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그 가치는 무의미하다. 낙찰되어야 비로소 존재가 된다. 인생은 낙찰과 패찰 사이에서 늘 조마조마한 가슴을 움켜잡고 사는 것 같다. 반드시 건너야 할 13월의 강.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손가락을 펼쳐 나에게 지문을 찍을 때 비로소 낙찰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김근혜의 ,이름표.에서

 

 

 

수필은 이렇게 존재사태의 의미화로 결속될 때 비로소 창작의도가 빛날 것이다. 낙찰과 패찰 사이의 경계를 넘기 위한 화자의 고뇌가 행간에 실려 지혜로운 독자의 가독력을 높여준다. 경매시장에 내놓은 상품과 인간과의 조응은 이 수필의 인간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 수필은 실험적 진술만이 아니라 “내 이름값에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 있는데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쓸쓸함, ‘지경’과 ‘경지’ 사이에서 견디는 법을 훈련하고 있다.”라는 언술의 기표가 주는 의미적 해석의 탁월함이겠다. 허정아는, <문학과 상상력>에서 전술한 잠재문학실험실의 실험의 일종인 팔랭드롬 palindrome을 예로 든 바 있다. 한국어에서는 이를 회문回文이라고 한다. 음절 단위로 모아쓰는 한글의 특성상 음소 단위가 아닌, 김근혜의 수필에서와 같이 ‘지경‘과 ’경지‘의 경우인 음절 단위의 회문이다. 이런 상상력이 문학작품을 창작하게 한다. 언어-숫자를 통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화자의 상상력 산물이겠다. 결미의 진술인 “응찰자의 통찰력이 좋아서 내가 낙찰되는 꿈을 꾼다.”는 대목이 그러하다. 정서와 지성적 이미지에 신비적 이미지까지 결합할 때 보여지는 앞서가는 수필의 경지일 것이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점도 없지 않다. 모호하고 현학적인 문체가 주는 독자의 가독력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겠다.

 

- 문학평론집'통찰과 전복' 중에서 -

 

-한상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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