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간다. 날카롭게 갈아야 흠집을 내지 않고 단번에 자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의 응어리가 밥알처럼 붙어 나온다. 김밥은 싸는 것보다 잘 쓰는 기술이 필요하다. 사람의 감정도 단번에 잘라버리지 않으면 칼에 묻어 나오는 밥알 같아서 끈적거림이 늘 따라다닌다. 김밥을 싼다. 한 톨 한 톨의 밥알은 하얀 이팝꽃을 뿌려 놓은 것 같다. 햇살에 구운 한 폭의 먹장구름으로 가지런히 누워 있는 맨살들을 덮는다. 낱글자들이 빠져나오지 않게 조심스럽게 돌돌 만다. 긴 드레스 입은 여인들이 은빛 수레 위에 조용히 눕는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입안에서 방긋이 터진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김밥 속 같았다. 쓴소리를 잘하는 우엉인 언니와 조그만 일에도 잘 삐치고 얼굴이 붉어지는 당근인 나, 누가 뭐라고 하든 무던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