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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김근혜

테오리아2 2022. 2. 1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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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까지 가는 동안 많은 터널을 만난다. 컴컴한 터널을 빠져나가면 희망의 빛이 어려 가슴이 잔뜩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언덕을 오를 때면 온 힘을 다해 뿌앙하는 기차 경적 소리가 고단한 인생을 넘어가는 부모님 같기도 하다. 기차여행이 아니면 느껴보지 못하는 새로운 경험이다.

추억 속의 터널이 와인을 빚는 저장고가 되었다. 온도와 습도가 일정해서 와인이 발효 숙성되기에는 적당한 곳이라고 한다. 일교차가 심한 인간의 마음 온도와 비교된다. 인간 마음에 높낮이가 있는 것은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탈이 나게 마련이니 적절하게 조율하면서 살라는 신이 준 숙제인지 모른다.

잠시 카페에 앉아 감 와인을 시켜두고 다리쉼을 한다.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홍시를 무더위에 먹는 얼얼한 맛이 일품이다. 이국땅에 온 듯한 묘한 기분이다. 와인을 혀끝에 대어 본다. 숱한 날이 혀끝에 닿는다.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텁텁한 타닌이 멋모르고 당한 첫 키스 같다. 부드럽게 온몸을 감싸는 달콤한 맛을 기대했다. 마비가 된 듯 목구멍이 뿌드드하다. 단번에 입맛을 사로잡는 삶이 있을까. 달콤한 유혹 속에는 가시도 있는 것을.

터널 천정에는 증기기관차가 숨 가쁘게 내뿜었던 매연이 고스란히 붙어있다. 허덕허덕 삶을 살아낸 흔적이다. 흉터는 기억 속에서 추억이 되기도 하고 삶의 방향 전환이 되기도 한다. 화강암과 붉은 벽돌을 아치형으로 쌓은 자연석이 인생의 거대한 모자이크 같다.

아픔과 기쁨, 슬픔과 즐거움, 행복과 불행한 조각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 인생이 터널에서 머무르기도 하는 것은 ‘역경’이라는 모자이크 재료가 필요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크게만 보이고 오르지 못할 것만 같은 것들이 조급증을 내게 한다. 높은 건물과 고대광실도 한 장의 그림에 불과한데 우리는 가지지 못해서 슬퍼한다.

기차는 터널을 만나도 멈추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린다. 사람은 시련이 닥치면 출구를 찾기보다는 주저앉으려 한다. 터널은 환한 세상으로 가기 위한 간이역에 불과하다는 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다. 터널이 없다면 산 너머의 세계가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와인은 맛을 열기 위해 디켄팅이란 과정을 거친다. 잠들어 있는 와인을 깨우면서 병 속의 부산물을 제거하여 와인의 맛을 부드럽고 풍부하게 한다. 와인도 인생의 저녁처럼 숙성되어짐에 따라 고집도 꺾고 비강의 텁텁함도 떨쳐내면서 중후한 맛을 낸다. 바로 Balance이다.

살면서 Balance를 맞추기 위해 한없이 몸을 웅크렸던 겨울이 있다. 질소 가스를 넣고 다시 펌프질해서 내부 공기를 빼야 제 맛을 내는 와인처럼 편향된 부분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삶의 결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내 자존심을 빼는 일이었다. 둥그스름하게 끌어안아도 될 것을 기어코 가슴에 못 몇 개 박아놓고 끝낸 적이 많다. 힘으로 맞서서 부러뜨리고 뒤늦은 후회로 몸을 떨었다.

혼자 상처를 처매면서 울던 일도 삶의 뒷면엔 있다. 마흔 즈음에야 깊숙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평화롭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자꾸만 열리려 하는 마음을 닫아두기 위해 자존심을 부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노을을 맞이했다.

인생은 조금 익숙해지려 하면 또 다른 문제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끝도 없이 지치게 한다. 세상을 좇으면 되지 않는다는 것도 풀리지 않는 숙제를 받아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세상 욕심을 포기하고 나서야 편안해졌다. 와인의 디켄딩 작업처럼 어쩌면 삶이란 채운 것을 잘 비우는 기술일 것이라고 독백해 본다.

부부간에도 깨지고 닳으면서 닮는 것인지 이제는 기대서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노란 해바라기를 그려 놓은 어느 집 담장 앞에서 두런거리던 희망을 보던 일. 안간힘을 빼서 행복해 보였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와 저쪽 어딘가에 발을 디디는 것이 삶이라고 했던가. 남은 생은 내딛는 발자국마다 하얀 안개꽃밭을 만들고 싶다.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리면 잠에서 깬 와인이 아로마와 부케를 발산한다. 부드러운 향이 폭풍 후의 고요를 맞는다. 와인의 빛깔에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듯이 삶도 달콤한 맛, 쓴맛, 신맛이라는 고비를 거치고서야 비로소 숙성된다. 비싼 수업료를 치른 후에 맛보게 되는 1등급 와인 같다. 아무리 고급 와인이라도 맛의 Balance가 맞지 않으면 냉수를 마시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삶도 이와 다를 바 없으리라.

멍에와 쟁기를 잇는 두 가닥의 타줄은 조율을 잘해야 앞에서 끄는 사람이나 미는 사람이 편안하다. 한쪽에서만 팽팽하게 당기면 줄은 끊어지고 말 것이다. 이럴 때는 줄을 풀어 느슨하게 힘을 빼줘야 밭을 갈 수 있다. 인생도 이처럼 적절하게 힘을 배분할 줄 몰라서 균열이 생기는 건 아닐까.

내가 미처 내지 못했던 맛이 소믈리에의 손을 거쳐 부드럽고 섬세해진다. 모든 개연성을 열어놓고 삶을 이해하고 난 후의 맛이랄까. 입안이 꽉 차고 잔향이 오래도록 남는다. 여운이 오래 남을수록 훌륭한 와인이라고 한다.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자리가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