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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멀미/ 김근혜

테오리아2 2022. 2. 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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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저녁에는 더 바쁘다. 예불시간에 맞춰 종이라도 치려는 건지. 커다란 눈을 단 산악자전거가 찌르릉거리며 귓속을 이러저리 달리는 느낌이다. 전입신고도 하지 않고 입성한 그에게 정거장이 돼주기로 했다.

 

왼쪽으로 누워야 겨우 내려오는 차단기도 마다하고 두근거리며 그를 기다리는 날이 생겼다. 전깃줄 우는 소리, 파도 소리, 매미 소릴 내며 쉼 없이 조잘거리는 귓속. 그가 요동칠 땐 이상하게 첫사랑이 떠올랐다.

 

귓속을 어지럽히던 그가 잠시 침묵을 하는 동안 금단현상이 왔다. 그 적막이 못 견디게 힘들었다. 나쁜 사람과 함께 하면서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것처럼.

 

어린 시절 외롭게 자란 탓도 있다. 난 황혼 무렵을 사랑하지만 미워도 한다. 해거름, 대문 밖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일은 쓸쓸했었다. 커다란 집에 가족이라곤 달랑 세 사람이 전부였으니까. 그 그림자가 지금까지 나를 놓지 않는다.

 

저마다의 소리로 가득한 세상, 소리는 소리를 낳고 귀를 흔든다. 귀는 쉬고 싶으나 쉴 곳이 없다. 귓속에서조차 그냥 두지 않고 소리를 내니 말이다. 귀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불침번을 서느라 밤을 지새운다. 자면서도 타이핑을 해서 상부 기관에 보고하고 마감 시간을 맞추는 사회부 기자이다.

 

나는 잠귀가 밝아서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여행할 때는 수면제가 필요하고 내 방을 따로 잡는다. 그런 면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귀가 별나다. 별난 사람 둘이 만나서 별난 아이들을 낳았으니 별날 수밖에 없다. 처방전으로 각자의 공간을 따로 두었다.

 

귀는 신비스럽다. 신체기관 어느 한 곳이 오묘하지 않은 곳이 있으랴만, 위장처럼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다. 살면서 웬만한 소리는 다 소화한다. 삭제와 복원, 출력, 초기화 기능이 가능한 하드웨어이다.

 

쓴소리는 쓴 대로, 단소리는 단대로 삼키고 되새김질하면서 중용을 지킨다. 때론 역류성 식도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정의감이나 거슬리는 말로 인해서 사고를 치는 일이 있지만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귀는 아프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가 많아서 바퀴가 마모되고 엔진이 과열된다. 휴게소에서 고픈 배를 채우기도 하고 산책을 즐기기도 해야 하는데 과부하다.

 

문지기가 없어서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아무나 들여보내니 탈이 난다. “나 좀 안아 달라, 위로해 달라, 나도 쉬고 싶다.”고 끝없이 신호를 보낸다. 인간은 그가 보내오는 타전을 읽지 못한다. 소통의 부재로 그를 지키기 위해 보다 못한 조물주가 고막이라는 파수꾼을 둔 것 같다.

 

내일도 달라지지 않고 반복되는 생활. 그에게 직무유기란 없다. 거름망을 설치해서 듣고 싶은 것만 들어볼까. 귀가 한 번쯤은 궁리를 해 봤을 것이다. 그날그날의 일을 삭제해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잉여물은 영0이 안 된다.

 

귀도 달콤한 유혹에 동화된 적이 있으리라. 세상의 부조리를 외면하고 꿋꿋하게 버티고 싶으나 삶이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반목과 질시로 고립되고 주변인으로 살아가기가 쉬운 일인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선 철저한 고독과 희생이 따른다.

 

제비꽃의 작은 목소리는 귀를 기울여야 들린다. 귀를 크게 열고 몸을 낮춰야 들을 수 있다. 귀는 소외당하는 소시민들의 억울함이나 부당함을 보며 금이 간 상처에 빨간약이 되고 싶어 여전히 병영을 이탈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