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시간을 맞추다 / 김응숙

테오리아2 2022. 9. 21. 21:16
728x90

 

 

 

 

비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모르더라도 나는 일찍이 상황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장소는 부산역 광장이었다. 역 광장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서 있었는데 초침이 어찌나 굵은지 내 팔뚝만 했다. 시간을 끌고 가는 기중기처럼 그 초침은 힘겹게, 그러나 절도 있게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은 그 시계탑 앞에서 잠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힐끗 한 번 올려다보고는 그 앞을 지나쳤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시간을 재촉했고,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비교적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걸었다. 둥근 역 광장에는 제각각 다른 간격으로 찍힌 그들의 발자국들이 시계탑을 중심으로 둥글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차를 타기 전날 밤에는 꼭 기차를 놓치는 꿈을 꾸었다. 출발 시간은 다되어 가는데 아무리 뛰어도 역 광장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때때로 역 광장에는 안개가 자욱하거나, 바닷내를 품은 거센 바람이 불기도 했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어깨에 멘 가방은 돌덩이 같았고 신발 바닥은 땅에 뿌리라도 내린 듯 떨어지지 않았다. 비록 꿈속이었으나 나는 그 순간 내 시간이 멈추었다는 것은 알았다. 역 광장에 돌섬처럼 굳어진 내 주위로 시간이 조류처러 빠르게 지나갔다. 마침내 기적이 울리고 기차가 떠났다. 나는 시계탑을 올려다보았는데, 초침이 째깍하며 가윗날처럼 나를 꿈속의 시간에서 오려냈다. 나는 진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나곤 했다.

 

어둑한 방 윗목에 미리 싸놓은 가방이 보였다. 창호지를 통과하며 한 겹 풀어진 여명이 그 작은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내가 기차를 타고 처음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홀로 여행한 그날은 막 여름방학이 시작된 한여름이었다. 이른 새벽인데도 영등포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외할아버지는 긴장으로 촉촉해진 내손을 꼭 쥐고 "절대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거듭 일렀다. 내 옆에는 대구까지 동행해줄 이웃 아주머니가 서있었다. 그녀는 대구에 있는 친정에 가는 참인데, 거기까지 가는 동안만이라도 어린것을 돌보아 달라고 외할아버지가 부탁한 것이다. 영등포 역사 안에도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었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순간을 회상할 때면, 마치 풀잎에 손끝을 베인 것처럼 아릿한 통증이 일곤 한다. 그때의 시간이 바람에 이는 풀잎이 되어 여리고도 예리한 날을 들이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가 버리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시간은 어딘가에 움푹 고여 있기도 한다. 그 시간이 고인 움푹한 웅덩이로 기차가 들어오고 있다. 기다림으로 두터워진 시간의 장막을 뚫고 기차는 용맹하게 달려온다. 이제 손을 놓으면 저 선로처럼 다시는 서로의 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사람들은 허둥거리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눈물을 찍어낸다. 나는 외할아버지의 손을 놓고 김밥과 삶은 계란이 들어있는 보퉁이를 움켜잡는다. 기차가 떠나자 그들이 잡고 있던 시간들이 부들부들 떨며 떨어져 나간다..

 

그 당시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열두 시간이 걸렸다. 물론 연착도 잦았으니 정확한 시간을 가늠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열두 시간이었다. 열두 시간은 보통의 시계에서는 시침이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마주 보이는 대척점, 찰나의 개념인 시각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도저히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대척점에 이르게 하는 시간이다. 오전은 오후가 되고, 낮은 밤이 된다. 수레에 시간을 싣고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달리는 제우스의 화차처럼 기차는 나를 싣고 열두 시간을 달렸다. 한 세계를 가로질러 또 다른 한 세계에 닿게 하는 시간이었다.

 

집안 사정으로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서울과 부산을 네 번 오가며 전학을 다녔다. 그 두 도시는 그 사이에 가로놓인 열두 시간의 눈금만큼 떨어져서 마주 보는 대척점에 있었다. 우리 집에 변두리여서 더욱 그랬겠지만, 부산에서의 시간은 검고 느리고 푸근했다. 별에 까맣게 탄 사내아이들이 보리밭을 지나며 나를 향해 "서울내기, 다마내기"라고 놀려댔다. 그러면서 내 가방을 낚아채 우리 집 마루에 가져다 놓았다.. 서울에서의 시간은 희고 빠르고 메말랐다. 점심시간이면 나는 홀로 학교 창고를 찾아 한 뼘 남짓 그늘이 생기기 시작한 벽에 몸을 붙였다. 그러고는 시간이 햇살을 업고 하얗게 튕겨 오르며 맹렬하게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부산에서 아이였던 나는 서울에 가면 애어른이 되곤 했다.

 

때때로 휘어진 선로를 지날 때 기차가 허리를 비틀며 기적을 울리는 것을 들었다. 나는 차장에 눈을 대고 길게 휘어져서 따라오는 기차의 꼬리를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시간도 휘어지는 것 같았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갈 때에는 탱탱하게 감겨진 태엽이 돌연히 풀리듯 시간이 쏜살같이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이따금 역방향 좌석에 앉아서 뒤로 빨려가는 풍경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울에 도착하면 마치 종이가 접히듯 몇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접혀 있었다.

 

이제 세상은 빨라졌다. 지금은 KTX를 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두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예전에 경험했던 그런 시간의 낙차를 느끼기는 어렵다. 빠른 속도를 타고 서로의 시간이 맞추어진 셈이다.

 

북한이 서울 표준시에 맞춰 시간을 30분 앞당긴다고 한다. 남북한의 선로가 연결되어 기차를 타고 북한을 여행할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나 보다.. 반세기여의 시간이 고여 있는 북한 어느 도시 플랫폼으로 기차가 들어오고 있다. 풍덩 기차 바퀴가 고인 시간을 가르면, 그 파랑에 기다리고 섰던 사람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그곳의 역사에도 커다란 시계는 걸려 있을 것이다. 그 시계의 초침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짹깍 힘차게 팔을 뻗는 상상을 한다.

 

 

 

 

'그룹명 > 수필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루 / 윤진모  (1) 2022.09.21
바람든 무로 굴러 본 세상 / 권남희  (0) 2022.09.21
나목을 내다보는 시간/김서령  (1) 2022.09.21
장마 / 심선경  (1) 2022.09.21
웃기떡 / 성혜경  (1) 2022.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