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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 심선경

테오리아2 2022. 9. 2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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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은 낮부터 불콰하게 취하고 싶다. 어쩌면 정작 술 취하고 싶은 것은 내가 아니라 무료한 나의 나날들일 것이다. 비에 젖어 한결 선명해진 원고지 칸 같은 보도블록을 따라 걷는다. 서툴고 어설픈 보행으로 비틀거리며 잘못 써온 일상들이, 빗물을 게워내는 보도블록처럼 울컥울컥 솟구친다. 이런 날은 병원 진료 때 의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고장 난 몸이 낡은 가죽 부대 속에서 삐져나와 뼛속까지 침투한 통증을 슬그머니 건네주고 간다. 삶이란 하나의 거대한 착각. 내 좁은 시야로는 그 큰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용을 쓰다보니 온몸과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욱신거린다.

 

 

 

장마철 소나기는 항상 비를 피해 뛰는 내 발걸음보다 먼저 당도했다. 삽시간에 빗줄기는 시야를 가린다. 시커먼 먹구름 사이로 번쩍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번개는 고막을 찢을 듯 우렁찬 천둥소리를 불러와 지구를 통째 삼켜버릴 듯하다. 곧이어 벼락이 지면까지 내려와 높고 뾰족한 곳을 강타한다. 지상의 키 큰 나무들을 쓰러뜨리고 사람까지 해치는 벼락의 조짐이 보이면 일단 몸을 낮추고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한차례 소나기 지나고 난전에서 말린 생선을 파는 할머니가 비 맞으며 앉아 있던 자리, 생선 궤짝을 여러 개 엎어 만든 의자와 척추가 굽어버린 할머니의 등허리가 지켜낸 아직 젖지 않고 고슬고슬한 땅 한 조각. 일평생 한 번도 그 장소를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엔 시간의 몸을 입은 기억이 산다. 할머니의 윗대, 또 그 윗대의 윗대가 살아오는 동안 풍화되고 침식되어 형성된 삶의 역사가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층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

 

 

 

미처 수습하지 못한 비설거지처럼, 남몰래 숨어든 삶의 그림자가 내 눈 밑의 다크서클처럼 짙어져 간다. 어찌 비설거지 할 것이 열어놓은 내 집 장독 뚜껑을 덮는 일뿐이랴. 외롭고 고달픈 삶 속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이웃의 아픔을 사랑으로 덮는 일이 더 절박하고 급한 비설거지가 아닐까.

 

 

 

한 남자가 다리를 절룩이며 맞은 편에서 걸어온다. 비에 흠뻑 젖은 그 남자의 운동화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버지의 오래된 기침처럼 쿨럭거린다. 슬쩍 비껴 지나 간 그의 얼굴이 몹시 일그러져 있다. 긴 장마에 비 채비도 없이 나온 그는, 옷과 신발이 젖는 것 따윈 아예 안중에도 없었던 걸까. 아니면 저 거센 빗줄기를 일부러 맞고 복잡한 머릿속의 생각들을 다 씻어내려 한 것일까. 어쩌면 그에겐 비를 받을 우산보다, 함께 비를 맞고 걸어줄 누군가가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비 내리는 풍경은 어디든 낯설지 않다. 바람은 손이 보이지 않는 지휘자, 빗줄기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떨어뜨린 거대한 가야금의 현이다. 수천, 수만 개의 나뭇잎 건반들이 "통통통" 튀어 오르며 비의 교향곡을 연주한다.

 

 

 

어릴 적, 놀다 늦어지면 꾸중 들을 것을 걱정하며 잰걸음으로 걷던 길모퉁이가 바람에 등이 휜 채, 나를 기다리며 서 있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자그마한 집과 집들이 어깨를 맞댄 소박한 골목이 보인다. 끝날 것 같은 골목이 또 다른 길의 시작점에 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은 늘 새로운 모험이기도 했다. 그 골목 끝에 어린 시절의 내가 어렴풋이 보인다. 가끔은 어른이 된 지금도 골목길 야트막한 담벼락 아래 몸을 숨기고 싶을 때가 있다.

 

 

 

이제껏 라는 책을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매번 긴장되었지만 애써 경건한 얼굴로 책 속의 문장들을 읽어 내려갔다. 바짝 붙어 있을 것이라 믿어온 행간과 행간은 시간의 사다리를 놓고 오르기엔 너무도 이격되어 있었다. 세상 누구든 크고 작은 문제들을 떠안고 살기에 고달프고 외롭기는 매한가지지만 내 슬픔 하나만 더 크게 보였었다. 장마처럼 주체할 수 없이 누수된 감정은 삶의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습한 기운을 견디다 못한 반지하 방의 벽체에 검은 곰팡이가 피어나듯, 울적하고 허망한 마음은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나를 옥죄고 있었다. 맺 힌 울분의 찌꺼기들을 쏟아내고 절절한 통한의 눈물을 흘려도 받아줄 이 없는 적적함과 나눌 이 없는 막막함을 그저 견뎌내야만 했다.

 

 

 

문득 혼자라고 느껴질 때, 아픔이 목젖까지 차오르면 금정산성 아래 막걸리 집을 찾아든다. 걸쭉한 반죽으로 부쳐낸 해물파전을 시켜놓고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켠다. 묵직한 술의 무게감과 후끈한 알콜이 위장을 타고 흘러내린다. 삶은 뜨거운 것이라 살아보아야 비로소 그것이 삶이 되는 것이라고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막걸리를 마실수록 취하기는커녕 더욱 말짱해지는 내 머릿속에 그 말이 와서 콕 박혔다.

 

 

 

삶에는 창공을 날아오르는 모험보다 절벽을 뛰어내려야 하는 모험이 더 많았고, 성공이란 종이비행기와 같아 접는 시간보다 날아다니는 시간이 훨씬 더 짧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아무리 읽으려 해도 지금 내 앞에 펼쳐놓은 생의 한 페이지는 난이도 최상의 해법수학처럼 잘 풀리지 않는다. 이 난해한 페이지에 머물지 않고 그냥 슬쩍 넘겨버리면 내 삶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 비에 젖은 옷을 털어 벽에 건다. 눅눅한 벽에 박혀 혼자 삭아가던 저 못도 한 번쯤 옮겨 앉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장마철에 에어컨의 제습 기능을 켜 집안의 습기를 제거하듯, 축축하게 젖어 불어터진 내 삶의 감정들을 비틀어 짠다. 어쩌면 나로 인해 아침부터 날 어두워진 것들, 나 때문에 눈물로 젖은 것들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으리라.

 

 

 

긴 장마 끝 우울했던 하늘이 걷히는 날, 눅눅해진 옷과 책을 널고 곡식들을 꺼내 말리던 쇄서포의曬書曝衣의 풍습처럼, 젖어있어 쿰쿰해진 내 마음부터 거풍하고 햇볕에 내다 말리고 싶다. 때때로 모든 것 내던지고 도망가고 싶은 만신창이 별이지만, 소나기 지난 뒤 반짝 비치는 햇살만큼 눈 부시고 환한 설렘을 단 한 순간만이라도 품을 수 있다면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