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6월의 江-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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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김근혜 

 

6월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영령들과 참전용사들의 뜨거운 피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파트 담 너머로 붉게 핀 장미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아픔 없이 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충혼탑을 보며 숙연해지는 이유도 그들의 고귀한 생명으로 지켜낸 나라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625일이면 아픈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던 날이니까요. 안동에서 살던 작은아버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학도병으로 총을 들고 전쟁터로 나갔고 황해도 해주에서 살던 어머니는 남하하다가 가족과 생이별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동족상잔의 희생자입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의 아픔과 어머니의 슬픔을 함께 가슴에 안고 살았습니다.

 

작은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면 지금은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일 것입니다. 아버지는 동생이 돌아가셨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의 발걸음 소리에도 문을 벌컥벌컥 열었습니다. 오매불망하던 동생을 기다리던 마음이었을 겁니다.

 

고향을 자주 찾는 이유도 무슨 소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습니다. 장날이면 가끔 고운 자태의 여인이 우리 집에 걸음을 하셨지요. 작은아버지의 약혼녀였다는 걸 먼 훗날에 알았습니다. 그분도 정혼한 사람이 돌아오지 않으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요.

 

아버지는 생전에 동생을 꼭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원()을 풀지 못한 채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작은아버지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만 여전히 청년으로 계십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죽어간 호국 용사들 속에 작은아버지도 계십니다. 한국전쟁에 참여하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한둘이겠습니까. 분단된 나라의 설움이지요. 살아서 돌아오겠다던 푸른 생명은 낯선 땅에 뼈를 묻고 말았습니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같이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들도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빚어진 희생자들이지요. 어머니는 북한에 호적을 둔 피난민이어서 남한에선 그림자로 살았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된 떳떳한 주민등록증 하나 없이 살았습니다. 북녘 하늘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만 아른거립니다.

 

자식들이 태어나도 호적에 올릴 수가 없어서 어찌어찌 죽은 사람의 호적을 살려서 그 사람 이름으로 살다가 돌아가신 한 많은 삶이었습니다. 분단된 나라의 아픔입니다.

 

이산가족 찾기는 많은 이들을 재회하게 했으나 어머니는 가족의 생사조차 모른 채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역사의 아픔을 후세대들에 물려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과 참전용사들의 고마움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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