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푸른 얼·룩-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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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얼·

김근혜

 

 

라우스에 묻은 얼룩이 표백제를 써도 지워지질 않는다. 왼쪽 가슴에 남은 흔적 같다. 그 기억을 지우려고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문질러 본다. 손목만 욱신거린다.

 

열 몇 살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니 자태가 아름다운 여인이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조등으로 걸린 엄마의 빈자리가 늘 허전하던 때여서 그 자리를 대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새엄마는 나이 차의 괴리를 좁히지 못하고 날씨처럼 변덕이 심했다. 불협화음 사이에서 늘 조마조마한 나날이었다. 벗어나고 싶어서 날이 새기가 무섭게 학교로 달려갔다. 집이 싫어서 달렸고 그 여인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어서 또 달렸다.

 

묵은 때가 많은 빨래는 삶아도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듯이 내 유년이 되돌릴 수 없는 얼룩으로 증명서처럼 남았다. 아픔을 감추기 위해 겉포장을 화려하게 했다. 그래도 마음은 텅 빈 느낌이었다.

 

친구의 초상집에서 우연히 그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 형편을 알 까닭이 없는 친구들은 어릴 적 얘기를 들춰내어 이러쿵저러쿵 남의 일이라고 말이 많다.

 

여인의 집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마당에는 유모차가 뒹굴고 있고 마루엔 지팡이가 놓여 있다. 대문을 들어서려는데 인기척을 들었는지 문이 열렸다. 낯설고 삐쩍 마른 노인이 방에서 나왔다. 젊었을 때의 곱던 모습은 세월에 묻혀 찾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을 찾는 것처럼 둘러대고 아무개가 맞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색시 얼굴이……

나를 알아본 줄 알고 고개를 돌리고 나오려는데

곱구먼. 혹시 내가 아는 색시와 많이 닮았구먼. 지금은 색시만큼 나이가 먹었을 거야…….”

서러웠던 일, 기뻤던 일, 미워했던 일이 흑백 사진처럼 스쳤다.

 

세월이 참 빨라. 나도 젊었을 때는 색시처럼 고왔지. 남정네들이 모두 입에 올렸으니까. 팔자도 세지. 난 세 번이나 시집을 갔어. 그런데 불행하게도 애를 낳지 못했지. 결혼해서 한 삼 년 살다가 소박을 맞았어. 친정에도 갈 수 없고 이리저리 떠돌다 재취자리가 나와서 머리를 얹었네. 그분은 자상하고 잘생겼었지. 흠이라면 나이가 나보다 열일곱 살이나 많았어. 오갈 데 없는 나를 입혀주고 먹여주고 고마운 분이셨지.”

 

아이들은 없었나요.”

큰 애들 둘은 타지에서 학교 다닌다고 나가 있고 집에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지. 그분은 양반이었는데 내가 몹쓸 짓을 했어.”

무슨 짓을 했는데요.”

 

열두 살 난 나는 그 여인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 아줌마라고 부른 것이 화근이었다. 엄마는 나를 낳은 사람, 한 사람뿐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여인은 마음을 잡지 못한다면서 술을 먹고 주저리주저리 넋두리하며 행패를 부렸다.

 

그 여인이 보기 싫어서 뒷동산에 올라갔다. 냉이 꽃을 한 아름 꺾어서 이름 모를 산소 앞에 놓고 드러누웠다. 꽃상여를 타고 구름 속으로 사라졌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행기도 구름으로 들어가고 새도 구름으로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았다.

 

구름은 하늘에 다니는 모든 것들의 집인 것처럼 포근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 같았다. 구름으로 들어간 엄마가, 비행기가, 새가, 나올 것만 같아서 해가 지도록 기다렸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날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자꾸만 아팠다.

 

딸아이는 예쁘고 똑똑했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못살게 구느냐고 따졌어. 조그만 게 건방지고 당돌하다고 더 심하게 괴롭혔지. 딸아이는 나와 마주치는 것조차 싫은지 피해 다녔어. 그러다 견디지 못했는지 집을 나갔어. 집안에선 난리가 났지만 찾지 못했어. 일 년 정도 지나니까 그 아이 동생마저 가출을 해버렸네. 그리곤 둘 다 소식이 끊겼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내 정신이 아니었지. 몹쓸 짓을 하고서도 무슨 염치로 그분한테 돈을 요구했는지……. 그분은 심성이 어진 사람이었어. 아무 말도 않고 땅을 팔아서 돈을 주더만. 대신에 멀리 가서 살라고 했어. 그런데 난 그분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리게 된 게야. 지금 내가 사는 이 집이지.

 

삼십 년 전인가 들려오는 소문에 그분의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는 거야. 내가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아서 많이 괴로웠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잘못했던 일들이 자꾸만 생각나는구먼. 그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이젠 소식을 알 수가 없네.”

 

느닷없이 찾아든 낯선 여인을 통해서라도 속죄 의식을 치러야 맘이 편했을까. 그 여인이 속죄하고 싶었던 가족이 나였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밝히지 않았다.

 

그 여인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하는 힘없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 여인에게 돌려받을 게 있었던가. 스스로 얽어맨 구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뇌출혈 같았던 기억의 행방을 쫓았는지 모른다. 고름을 한 줌 빼냈을 때의 시원함보다 건드려서 더 쓰라린 통증이 밀려왔다.

 

우리 집을 풍비박산 내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다른 사람한테 시집을 갔다. 그랬으면 보란 듯이 잘살고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돌봐 줄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나는 어디에다 울분을 터뜨리라고.

 

차에 실어 둔 사과 한 상자가 마음을 짓눌러서 여인의 집 마루에 몰래 올려놓고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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