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혜 수필가 33

이웃 죽·이·기-김근혜

이웃 죽·이·기 김근혜 지인으로부터 사후, 장기기증을 하기로 서약했다는 말을 듣고 감동하였다. 나도 생각은 있었지만, 선뜻 내키지 않아서 망설였다. 한 사람의 장기기증으로 아홉 명을 살릴 수 있다니 대단한 일임은 틀림없다. 작은 베풂이 소중한 이웃을 살릴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일이 있을까. 일기장을 뒤적이다 ‘나눔’이란 글에 시선이 갔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고부터 마음이 팍팍해졌다는 반성의 글이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눈시울이 먼저 뜨거웠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쪼개서 나보다 못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손길을 보탰었다. 내 형편이 닿지 않으면 동사무소 복지과를 찾아가서 그런 사람들의 실태를 알리기도 했다. 그랬던 가슴이 왜 이리 냉랭해진 것일까. 내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것은..

근* 글 2018.04.04

청춘 사진관-김근혜

청춘 사진관 김근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차’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늙수그레한 영감님과 낡은 카메라가 시야에 들어왔다. 간판 이름과 건물만 보고 현혹된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었다. 사람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내가 그때만큼 힘든 적이 없었다. 머리에서는 손이 나와 슬며시 등을 떼밀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니 나가라고 재촉했다. 예의란 놈이 불쑥 끼어드는 바람에 엉거주춤 들어서고 말았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라서 상처를 받을까 봐 그냥 주저앉은 것이 탈이 났다. 영감님은 두 컷 찍고는 다 찍었으니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찍어달라고 했더니 돈이 더 든다고 했다. 그러면 포토샵으로 ..

근* 글 2018.04.04

문자를 씹다-김근혜

문자를 씹다 김근혜 카카오톡으로 동영상이 들어왔다. ‘보낸 문자에 대해 답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기도문’이라는 글이었다. 유머라기보다는 거의 저주에 가까울 정도라서 머리가 쭈뼛했다. 동영상을 보낸 사람에게 내용이 너무 잔인한 것 같다고 했더니, 재미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하루에 스무 번 이상 설사하게 하고 설거지를 할 때마다 그릇을 깨게 해 달라.”는 글이 과연 재미있는 것일까. 답장하지 않은 것이 큰 형벌처럼 느껴졌다. 문자를 받는 사람은 상당히 불쾌하고 상처를 받을 일이었다. 또 어떤 문자가 들어올지 겁이 나서 지체 않고 답장을 보냈으나 찜찜했다. 반면, 어떤 경각심도 생겼다. 답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방법은 좋지 않았지만,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문자를 보내..

근* 글 2018.04.04

사진, 또 하나의 언어-김근혜

사진, 또 하나의 언어 김근혜 징후다. 답답해서 밥이 목구멍에 걸린다. 산맥들이 꿈틀거리며 탈출을 꿈꾼다. 좋지 않은 호흡기 탓에 서랍 안에서 꿈이 늙을 때가 많다. 방랑벽이 있는 사람이 겨울을 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견디는 재간은 나이인 것 같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무작정 시동을 건다. 이사 온 지 삼 개월이 지나가는데 낯설다. 감기로 인해 실내에서 지내다 보니 가을이 떠나고 없다. 직장을 그만둔 후론 사진을 찍는다. 영혼이 피사체에 빠져 일체가 될 때 느끼는 희열이 나를 바깥으로 밀친다. 누군가가 지나쳐버린 하루를 담고, 내가 사랑하는 파도도 넣으며 위안을 얻는다. 검은 상자 안에서 빨간 알약, 파란 펭귄, 다 닳은 지팡이가 나온다. 그들의 호흡이 멈추기 전에 재빨리 하드웨어에 저장한..

근* 글 2018.02.27

귀 멀미-김근혜

귀 멀미 김근혜 귀耳가 저녁에는 더 바쁘다. 예불시간에 맞춰 종이라도 치려는 건지. 커다란 눈을 단 산악자전거가 찌르릉거리며 귓속을 이러저리 달리는 느낌이다. 전입신고도 하지 않고 입성한 그에게 정거장이 돼주기로 했다. 왼쪽으로 누워야 겨우 내려오는 차단기도 마다하고 두근거리며 그를 기다리는 날이 생겼다. 전깃줄 우는 소리, 파도 소리, 매미 소릴 내며 쉼 없이 조잘거리는 귓속. 그가 요동칠 땐 이상하게 첫사랑이 떠올랐다. 귓속을 어지럽히던 그가 잠시 침묵을 하는 동안 금단현상이 왔다. 그 적막이 못 견디게 힘들었다. 나쁜 사람과 함께 하면서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것처럼. 어린 시절 외롭게 자란 탓도 있다. 난 황혼 무렵을 사랑하지만 미워도 한다. 해거름, 대문 밖에서 가족을 기다..

근* 글 2017.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