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인생항해-김근혜 <선수필 2014년 여름호>

테오리아2 2014. 6. 17. 15:06
728x90

 

 

 

 

 

 

 

인생 항해

김근혜

 

  작은 아이는 착한 해커이다. 중학교 다닐 때, 우연히 접하게 된 삼촌의 프로그래밍 책이 인생 항해의 출발점이 되었다. 남들이 많이 가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 처녀항해의 닻을 올렸다. 대양에서 낚아 올리는 C언어는 어린 아들을 잡아당기는 미늘이었다. 암호 같은 언어와 의사소통을 하면서 세상을 배워가고 있었다. 호기심이 건넨 열정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신나는 여행이었을 것이다. 사춘기 소년이 소녀를 만났을 때의 설렘 같은 기분이었으리라.

 

  해킹 공부는 소심한 아이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게 하는 무대였다. 자신감에 찬 날은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가끔 책과 투닥거릴 때는 절교라도 할 것 같아 옆에서 지켜보는 내내 조마조마한 적도 많았다.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아이가 기특했다. C언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면서 컴퓨터라는 작은 공간에 희망과 끈기로 집을 지어 나갔다.

 

  아이는 여러 대회를 거쳐 에메랄드빛 바다가 되었다. 세계대회도 넘나들며 수상 경력을 쌓았다. 그런 이력이 방심하게 만들었나 보다. 입학사정관제를 믿고 내신을 소홀히 한 것이 문제였다. 대입 문턱에서 암초에 부딪혀 정상 항로를 벗어나고 말았다. 거친 파도를 만난다는 것은 해도(海圖)에 없던 시련이었다. 아이는 충격으로 아팠고, 아이가 당하고 있는 절망 때문에 나도 아팠다. 가까이에서 위로해주지 못해서 아팠고, 자신은 늘 운이 없다고 한 말 때문에 더 많이 아팠다. 전화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냥 사랑한다, 괜찮다, 괜찮다는 말밖엔 할 게 없었다.

 

  아이들을 잘 키워보겠다는 마음으로 부모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았는데 막상 내 자식에게는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아이의 뜻대로 따라주려 했지만, 대학문에서는 걸리고 말았다. 전문직종이라서 취업이 잘되고 먹고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며 대학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된다고 호탕하게 큰소리쳤는데 막상 선택의 기로에서는 내가 흔들렸다. 어미라고 아이의 꿈마저 쥐락펴락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나는 대학은 꼭 나와야 한다며 아이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대학 왜 가는데, 대학 안 나와도 먹고 사는 데는 아무 문제없는데….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 좀 하지마세요 자꾸 그러면 집 나갈거에요.”라며 문이 부서질 듯 닫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대학 나와도 먹고 살기 힘든데 니가 뭘 안다고 부모한테 큰 소리야 그래 나가라 나가.” 심한 언쟁이 오고갔다. 내가 배운 지식대로라면 아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게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지식과 삶은 별개인지 세상 욕심이 앞섰다.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참부모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감명 깊은 말이다. 아이가 멀리 보지 못한다고 책망하지만 정작 한 치 앞만 본 것은 나였는지 모른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유태인의 지혜로움보다 잡아서 먹여주어야 마음이 놓였다. 바다속에 그물망을 매달아 놓고 그 안에서 키우는 준치를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내 잣대에 맞춰 늘이거나 줄이려하지 않았는가.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내가 만들어 놓은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한 학부모에 불과했던 것 같다.

 

  아이는 일 년 동안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나의 강권에 못 이겨 고민했다. 밀물이 들어 힘차게 바다로 가듯 다시 출항했지만, 대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며 출석을 하지 않아 학사경고를 받았다. 정작 아이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 아랑곳없는데 내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창피하고 조바심도 났다. 길을 잘못 든 선장에게 등대가 경고음을 울리듯이 아이에게 그 길이 아니라고 큰소리를 냈다. 자신이 알아서 한다고 울부짖는 아이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려도 속이 깊고 다부지니 믿어보기로 했다. 인생항로에 이정표는 없지만, 몸은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어느 지점에서 정박해야 하며 다시 닻을 올려 노를 저어 나갈 것인지를 아이는 설계해 두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왔던 것처럼. 어미란 원래 아이를 믿지 못하고 걱정을 하는 것이다.

 

  배는 자유로이 항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뱃길을 따라 운항한다. 자유 속의 질서를 따르기에 안전한 항해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가 가는 길도 방도가 있을 것이다. 세상살이도 보이지 않는 원칙이 있지 않은가. 순리대로 가는 것이 순탄한 것을 내가 거스를 뻔하였다.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사는 아이에게 수동적인 낙타의 삶을 살게 하려고 했으니 한심한 어미였다. 배가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는 것은 등대가 비추는 불빛 때문일 것이다. 불빛은 잠시도 그냥 있지 않고 배가 가는 길목 어귀에서 엇길로 가지 않도록 구석구석 비추고 있다. 등대는 어미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아이가 받은 학사경고장은 대학을 나와야만 좋은 직장을 구하고 잘 산다는 세상의 소리에 길들어 있던 내게 주는 노란 카드였다. 아이도 가족이라는 등대가 있어서 든든히 믿고 항해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가 조타를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자신의 삶에 주역이 되게끔 묵묵히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일 게다 

 

  잔잔한 바다는 노련한 사공을 만들지 못한다. 내비게이터가 알려주는 대로 가는 삶은 순탄할지 모르나 격랑이 때론 인생의 조언자일 수 있다. 높이 솟구쳤던 파도가 옆으로 부서진다. 높이에 집착했던 나에게 낮은 자리에서 다시 파도를 만들어나가는 힘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선수필 2014년 여름호 발표>

'근*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김근혜  (0) 2014.07.27
비녀-김근혜  (0) 2014.07.27
덕동문화마을-김근혜  (0) 2014.05.18
포토에세이-사의(김근혜)  (0) 2014.03.24
<대일산필> 책의 현주소-김근혜  (0) 201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