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김근혜

테오리아2 2014. 7. 2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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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김근혜

  

 

 

  내 차례가 되었다. 생애사를 절반도 읽지 않았는데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봇물이 터지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내 옆에 앉은 그녀가 남편 얘기를 하기 전까지는 평온하기만 했었다.


   그녀는 부잣집 마나님처럼 고왔다. 도저히 습기가 있으리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직장이 없어서 놀고 있는 처지이고 그녀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아등바등하면서도 돈을 빌려서 술을 마시고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주정하고 다닌다고 했다.


   그녀가 흘려야 할 눈물이 내 팍팍한 삶과 만나서 이입되었나 보다. 갈무리해두었던 아픔이 요동을 치며 앞다투어 흘러내렸다.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어쩌면 내가 믿는 신께서 이런 기회에 응어리를 다 쏟아 붓고 편안해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삶의 모양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생애사를 들으며 내가 참 못나고 철부지라는 걸 알았다. 내 자리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바람만 탓하며 산 세월이었다.


   제자훈련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만났다. 훈련은 빡빡하였다. 새벽기도는 기본, 주어진 과제에 신앙 서적 읽고 소감문 쓰기, 요절 외우기, 성경 읽기, 봉사활동으로 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매달려 있어도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일주일 만에 건강을 핑계로 항복하고 말았다.


   굳이 변명하라면 각본대로 사는 걸 견디지 못한다. 조여드는 압박감을 견딜 수 없다. 숨이 막히고 공황장애가 도진다. 그런 연유로 잘 꾸려나가던 학원도 접었다. 매여 있는 생활도 못 하지만 일주일 동안 꼬박 일할 수 있는 체력 조건도 안 된다. 스트레스로 인한 병이 내 몸을 거친 후부터 병치레가 잦다. 곪아 터진 것이 다행인지 모르지만 몸속에 아군보다 적군의 수가 더 많은 것 같다. 못하는 일이 많이 생기면서 건강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있는 요즈음이다

 

   같이 출발한 그녀는 씩씩하게 잘 견디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도 건강 하라며 따뜻이 손 내밀어 주었다. 사랑받기를 바라기보다는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가슴에 맴을 그렸다.


   부목사님은 이런 나를 종용하지 않고 이해해 주었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은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한다며 농담까지 덤으로 해주었다. 단지 5천 원짜리 차 한 잔 샀을 뿐인데 부목사님의 위로가 몇 곱절의 행복을 안겨 주었다. 몇 천 명이나 되는 교회에서 보잘것없는 나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관심만큼 중요한 건 없다. 관심은 성장을 촉진하는 영양제이다. 누군가가 나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는다. 교회 가기 싫은 날도 부목사님이 계심으로써 발걸음이 가벼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듯 매무새도 신경을 썼다. 멀리서 보아도 에너지가 느껴졌다.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착각마저도 행복이었다. 그러던 부목사님이 어느 날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조지훈의 낙화라는 시로 인사를 대신한다고 문자가 들어왔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한 소절 한 소절에 부목사님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아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랑하는 임을 갑자기 잃은 심정이 이러할까. 사역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갑작스러운 사임에 부목사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하니 통증이 왔다.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할 수 없는 계약직의 비애이다. 나도 계약직으로 매년 초가 되면 마음 졸인다. 재임용되어서야 겨우 마음을 놓는 처지라 공감이 갔다. 부목사님은 비록 단역이었지만 배역에 충실했던 명작의 주인공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던 분이었다.


   부목사님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몇 주간 가슴앓이 했다. 마음을 다잡을 때까지 교회에 갈 수 없었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다른 분이 서 계셨다. 언뜻 스쳐 가는 그와 닮은 사람 때문에 놀란 적도 있다.


   세상은 작은 자리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크게 쓰지 않는다. 목소리가 크게 들려야 큰 사람인 줄 아는가보다.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세상 이치다. 구석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서러움이 이런 것일 게다. 세상은 영웅들의 거대한 힘뿐 아니라 정직한 일꾼들의 작은 힘이 모여 움직인다고 헬렌 켈러는 말했거늘.


   허탈감에 가슴이 답답했다. 소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에 돌멩이를 들고 힘껏 던졌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할 수 없는 게 세상살이던가.


<좋은수필 2014년 8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