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비녀-김근혜

테오리아2 2014. 7. 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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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

김근혜

 

   오빠, 언니 운동회가 있던 날이었다. 들뜬 마음에 높이 솟구친 그네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쇠 부분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고 말았다. 하얀 티셔츠에는 선홍빛 봉숭아 몇 송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갑자기 숨이 콱 막혔다. 간신히 눈을 뜨고 올려다본 하늘엔 종이비행기가 무수히 날고 있었다.

 

   머리를 다치고 난 후부터 빈혈이 심했다. 키도 자라지 않아서 맨 앞줄에 섰다. 부모님은 원기소를 억지로 먹이려고 했는데 냄새가 싫어서 입을 벌리지 않았다. 야단을 치면 혀 속에 숨기고 있다가 몰래 개한테 먹였다. 밥투정도 잦아서 어머니 속을 많이 섞였다. 편식이 심한 나는 오징어채 무침이나 김밥이 없으면 먹지 않았다. 생선은 냄새가 나서 피했으며 고기는 질겨서 싫어했다. 어머니가 어르고 달래야 겨우 몇 숟갈 먹는 정도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급식으로 밀가루 빵이 나왔다. 딱딱하게 구워진 겉 부분이 속보다 쫄깃거려서 좋아했다. 담임선생님도 내 입맛과 비슷했는지 겉 부분만 드시고 속은 내 옆에 앉은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들은 앞자리를 부러워했다. 풍족하게 먹지 못했던 시절이어서 다른 사람이 먹다 남은 빵조각도 서로 먹으려고 했다. 선생님은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 빵 몇 개를 들려 보냈다. 그 중엔 나도 끼어 있었다

 

   아이들은 급식 시간을 기다렸다. 버터에 구운 밀가루 빵은 보리떡으로 허기를 채우던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간식이었다. 맛이 있고 시골 제과점에서는 그런 빵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아껴 먹는다고 가방에 꼭꼭 숨겨둔 것을 몰래 훔쳐 먹는 아이가 생겼다. 동생을 준다며 반쪽만 먹는 아이도 있었고 한 개 더 달라며 어리광을 피우는 아이도 있었다. 덤으로 하나를 받은 날은 아이들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난 그 시간이 되면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빵을 하나 더 받는 것이 부끄러웠다. 가난하다는 것을 알리는 기분이었다. 괜히 떳떳하지 못했고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급식 날은 받아온 빵을 마루에 집어 던지며 심술을 부렸다. 돈을 잘 벌지 못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말썽을 부린 적이 없는데도 겁이 덜컥 났다. 집으로 가는 동안 무엇을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장난을 친 적도 없고 아이를 때린 일도 없었다. 잘못한 것이라면 빵을 가져가기 싫어서 애들한테 나눠준 일과 가난해도 얻어먹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교실에 그대로 두고 온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일하고 계셨다. 파마와 월남치마가 유행하고 있던 때였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신식머리를 한다며 긴 생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했다. 월남치마까지 입고 유행을 좇고 있었다. 어머니는 긴 머리를 틀어 올려 비녀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촌스러웠다. 저런 모습으로 학교에 오신다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특히 나하고 경쟁자인 순희의 눈에 띌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동네에서도 소문난 멋쟁이였다. 학교에 올 때도 한껏 멋을 부렸다. 빨간 립스틱에 무릎 밑을 살짝 가리는 양장을 하고 나타나면 아이들은 부러움으로 눈을 떼지 못했다. 순희의 콧대는 더 높아갔다. 도저히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 없어서 살금살금 뒷걸음질 쳤다.

 

   어머니와 국수를 사러 갔다. 늘 보이던 주인은 없고 담임선생님이 서 계셨다. 깜짝 놀랐다. 선생님은 국수 공장 집 딸이었던 것이다. 마음이 콩닥거리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 했을 때 거짓말한 것이 탄로가 날까 봐 불안했다.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의 손에는 국수와 약병이 몇 개 들려 있었다. 내가 거짓말했다는 것을 선생님께서 얘기했을 텐데 어머니는 힘없이 걷기만 하셨다. 언제 혼이 날지 몰라 땅만 보며 터벅터벅 걸었다. 가슴이 콩콩 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개는 나들이에 신이 났는지 꼬리를 흔들며 왔다 갔다 했다. 어머니가 그날처럼 두려운 적이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마음이 놓일 것 같은데 끝내 말씀을 안 하셨다.

잠결에 어머니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만난 얘기를 아버지에게 하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 자는 척하고 있으려니 온몸이 쑤시고 쥐가 날 것 같은데 꾹 참았다.

 

며칠 전에 선생님께서 엄마를 모셔오라 했나 봐요. 희야가 엄마 안 계신다고 거짓말을 한 것 같아요. 선생님은 수업시간에도 자꾸 쓰러지는 희야가 안쓰러워 원기소를 주려고 날 오라 했대요. 그날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괜한 심통을 부리며 밖으로 나가더라고요. 가방 옆에 빵도 두 개 널브러져 있고요.”

 

   “선생님한테 그 말을 듣는데 희야를 야단칠 생각보다 왜 거짓말을 했을까 생각해봤어요. 희야는 내가 부끄러웠나 봐요. 다른 엄마들처럼 잘 꾸미고 다니면 거짓말을 안 했을 텐데……내가 얼마나 초라했는지 몰라요. 부모가 오죽 못났으면 자식이 부끄러워할까……가슴이 아팠어요. 속상해서 한 마디도 안했더니 겁먹은 것 같아요.”

부모는 아무리 못나도 부모지, 철이 언제 들려고 그러는지…….”아버지의 음성이 높아졌다.

 

   '엄마도 예쁘게 해서 다니면 안 돼요?, 돈이 없어서 그래요?, 이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순희 엄마 보다 더 예쁘게 해드릴게요.’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서 고생한다며 울먹거렸다.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보니 나도 눈물이 찔끔 났다. 못 들은 척하고 오줌 누러 나간다며 밖으로 나갔다. 밤하늘엔 별들이 총총했다.

 

   어머니를 속상하게 한 것이 미안해서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없어도 툴툴거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척했다. 식사 후에 원기소가 따라 나왔다. 아무 말 없이 꿀꺽 삼켰다. 선생님의 마음을 알고 나니 버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과 선생님의 온기가 원기소 속에 녹아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신기한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큰 것 같다며 내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어머니의 눈물이 내 마음을 자라게 한 것 같았다.

 

   그날부터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공책을 산다며 거짓말도 가끔 했다.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일어나질 못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큰 병에 걸려서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비녀를 꼭 사드리고 싶었다. 오일장이 서는 날 돼지저금통을 잡았다. 비녀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오빠, 언니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난 아무리 슬픈 생각을 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비녀를 어머니 머리에 꽂아주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보려고 들어가려는데 아버지가 손을 잡았다.

 

   어머니 무덤 앞에 섰다. 엄마가 하는 말에 반대로만 행동했던 청개구리 이야기가 생각났다. 비가 오면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개골 거리던 청개구리, 나도 한 마리 청개구리는 아니었을까. 내가 밥도 잘 안 먹고 속을 썩여서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신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비녀를 어머니 무덤가에 올려두고 절을 두 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