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대구일보 오피니언-일등주의-김근혜

테오리아2 2014. 11. 1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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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일보 <오피니언>
                               

 

김근혜

 

대구행복의 전화 소장

마음에 불을 안고 사는 것은 아닐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보면 별것 아닌 일도 나에겐 중요하고 큰일이 된다. 불의하고 불공정한 것에 대해서는 참을성이 부족하다. 속에 가두어두었던 불이 불쑥 튀어나와 활활 타오르곤 한다.
지나고 보면 후회도 생긴다. 사람들은 눈만 슬쩍 감으면 편할 일을 왜 자처해서 힘들게 하느냐고 편하게 살라고 한다. “그냥 모른 척하고 있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난 홧김에 사고를 치고 말았다. 피땀 흘려 쌓은 탑이 일등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모를 당했기 때문이다. 내 수고와 노력은 일등 앞에서 자존심이 갈가리 찢어졌다. 말로만 듣던 일등주의, 일등만 인정하는 세상에 참지 못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말았다.
일등만 부추기는 사회에서 선(選)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내신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아들은 스카이 대학의 문턱에서 넘어졌다. 딸아이도 일등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기업에서 쓴맛을 봤다. 아들은 그나마 긍정적인 사고로 잘 이겨나갔지만 상처를 많이 받은 딸아이는 사는 것을 힘들어했다. 딸아이 표정 살피는 것이 일과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혹시라도 나쁜 생각을 할까 봐서 베란다 창문을 단속하며 동정을 살피는 조마조마한 날들을 보냈었다.
실의에 빠져 있던 딸아이는 주변 사람들의 격려를 받고 일어났다. 세상의 시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잘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에 시간을 투자했다. 상실의 아픔에만 빠져 있었다면 성장하지 못하고 우울한 나날을 눈물로 보냈으리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 몸부림쳤고 그 결과는 평생직장이라는 직업을 얻었다. 상실은 영혼을 강하게 해주는 힘도 있는 것 같다.
세상은 금메달 딴 사람에게만 관심이 쏠리고 더 많은 것을 주려 한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인재들이 일등에게 가려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잠재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 때문에 일등이 아닌 사람은 정신적인 피해자가 되고 만다. 가능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일등이 아닌 채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아프다.
함부로 들이댄 잣대에 심약한 사람은 절망하고 다시는 일어설 용기를 갖지 못하고 삶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격려와 칭찬의 중요성은 알지만 비교하는 습관도 버리지 못한다. 일등주의에 연연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젠 의식이 바뀌어야 할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고루한 사고방식은 사회발전에 저해만 되지 않을까. 성적으로 등위를 매기기보다는 사람을 우선순위에 넣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잘못된 점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 누군가가 나 자신일 경우가 있다. 그런 것에 대항하는 사람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나는 내지 않아도 될 분(忿)을 더 내는지도 모른다. 교육 현장에 있는 사람조차 스스럼없이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본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도망친 선장과 일부 선원을 보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만 살면 되고 남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이기심이 많은 희생자를 냈다. 승객을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버리고 자신만 살겠다고 일등으로 도망친 선장이나 일부 선원들도 일등주의에서 결코 벗어난 건 아닌 것 같다. 일등주의가 고귀한 사람의 목숨까지도 내팽개치고 일등으로 도망가게 한 건 아닐까. 무엇이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등만 하면 된다는 강박관념이 인면을 두껍게 만들고 생명조차 경시하게 만든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나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쁘게 나오는 적이 많다. 물론 운도 많이 작용하지만 실력도 고만하기 때문이리라. 그건 불가항력이라 어쩔 수 없다.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에 만족하고 한계를 인정한다. 그리고 일등에게는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내 아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이 상처를 준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격려라는 보상보다는 ‘무시’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이 내려진다.
“최선을 다한 것이 과연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가, 최선을 다한 것이 무시를 당할 일인가, 최선을 다한 것이 자책할 일인가?”

 

2014.04.25 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