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원자력 연구소 칼럼<살며 생각하며> 홀로나기-김근혜

테오리아2 2014. 11. 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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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나기

 

 

가을은 여인의 가슴을 애연(哀然)하게 한다. 삶을 빚던 봄과는 달리 철썩 파도가 때리고 가는 느낌이다. 외로움이 불쑥불쑥 문턱을 넘나든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캄캄하고 텅 빈 공간에서 느껴지는 황량함이 두려워 선뜻 들어서기가 망설여진다. 열었던 문을 다시 닫고 거리로 나선다.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홀로나기 연습 중이다. 처음엔 혼자 있는 것이 홀가분해서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간섭할 사람이 없어 좋고 행동도 자유로워 눈치 보지 않아도 되었다. 삼 대가 도를 닦아야 누릴 수 있는 호강이라며 부러워들 했다. 혼자 오래 살다 보니 음식도 사 먹는 편이 많다. 어쩌다 만나는 가족이 반갑고 즐거워야 하는데 요리할 일이 스트레스로 여겨질 때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이젠 가족이 그리워진다.

일흔을 넘어 우연찮은 사고로 거동이 불편한 지인이 계신다. 바깥출입도 못 하고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극심한 불안증에 시달린다. 자식들은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으나 아픈 어머니는 안중에도 없다. 그분의 홀로나기가 안타까워 말동무도 해드리고 먹을 것도 보내드렸다. “자식한테만 올인하지 말고 본인도 잘 챙기며 살아.” 문득 눈물 흘리며 하시던 말씀이 가을바람을 타고 맴돈다.

오늘도 신호음이 오다 끊긴다. 내 쪽에서 먼저 알아차리고 전화를 건다. “혈압이 춤을 춘다고, 하루를 어떻게 넘길까 도저히 불안해 못 견디겠어. 몸이 허공에 뜬 기분이야. 1번 꾹 누르면 달려갈 터이니 걱정 마세요. 어머니 아들 녀석의 이런 전화 한번 받아봤으면 마음이 놓일 텐데…….” 하소연을 들으니 남의 일 같지 않아 한숨이 나온다. 용돈 챙겨 주는 것 보다 자식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고마운 게 그분의 바람일지 모른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 문제가 심각해졌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외로움을 견디는 노인들의 홀로나기는 눈물겹다. 혼자 있을 때 아픈 게 제일 두렵다는 그분의 말씀도 공감이 간다.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나도 겪어 봤기 때문에 잘 안다.

자다가 아파서 병원을 찾는 일이 더러 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혹시라도 보호자가 필요할 것 같아 딸아이를 깨워서 덜덜 떨리는 몸으로 운전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도 딸아이는 옆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운전 경험이 많지 않아 그러려니 했다. 엄마가 자꾸 아프니까 자기도 그런 증상이 오는 것 같다며 투덜거릴 때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나무라지도 못하고 못 들은 척해야 했다. 그 후로는 아무리 아파도 내색하지 않고 가족 모르게 병원에 가게 되었다. 홀로나기 연습을 해야 하니까.

한평생 자식만을 위해 살아온 부모에 대한 보상은 아주 비극적이다. 돈 없고 병들면 귀찮은 ‘짐’ 취급이다. 그 짐이 자신의 집으로 옮겨질까 봐 너나없이 자식들은 변명이 앞선다. 나도 노년의 국경에 서 있다. 일을 그만두면 자식 앞에 당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힘들어도 내색 않고 산다. 어디 맘 놓고 기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홀로나기 연습이 만만치 않다.

아들 녀석 마음 떠보려고 던진 농담에 가슴이 베였다. 부모 부양하기 싫어 미국에 가서 시민권을 얻어 살겠다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지만 국적까지 바꿀 정도로 부모는 하찮고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렸는가. 지인이 자식한테 올인하지 말라는 말이 진리처럼 느껴진다. 왜 내 자식은 다르다고 생각했을까

부모는 반려동물만도 못한 서열 순위이다. 기르는 개나 고양이가 아프면 동물 병원에 달려가지만 부모가 아프면 늙어서 그러려니 하는 세상이다. 요양병원에라도 모시면 그나마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

혈육보다 좋은 친구 한 사람 곁에 있는 것이 더 위로가 된다. ‘그래도 너무 서러워하지 말자.’ 오늘도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김근혜 대구 행복의 전화 소장>  

 

김근혜 소장은  마음이 많이 아팠던

 적이 있다

자신처럼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찾다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

행복의전화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통해 마음 아픈 사람

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김소장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작은 관심이

치료제가 된다는 사실에 기뻤다

지금은대구 지역의 지방신문에서 칼럼과 수필을 쓰고 있다.

 

 

                  

 

 

2014년 11/12월 호 원자력 연구소 '원우'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