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배려

테오리아2 2011. 12. 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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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가슴을 멍하게 만들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어디든지 발길 닿는대로 가다보면 끌어오르는 불길을 끌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그럴 땐 자주 찾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한파에도 불구하고 쭈그리고 앉아 돈이 되는 몇몇 가지 곡식이나 나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

사는 것 자체가 죽음보다 못한 슬픔 같이 느껴졌다.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한결같이 시장 바닥에서 삶을 맞이한다.

처음에는 측은함으로 그분들의 눈도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오게 하는 힘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날 그날의 목숨을 잇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분들을 보며 진한 어둠의 그림자보다 희망을 발견했다.

나라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춥다면 춥다는 핑계를, 더우면 더운 핑계로 인생을 변명하며 살았으리라.

무엇이 이 추위에도 그분들을 시장으로 나오게 하는가.

대형마트에 없는 것 없이 다 있다해도

할머니들이 팔고 있는 것을 사야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할머니들을 찾기 때문에 찾는 이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다.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한 깊은 배려일지도 모른다.

때론 어떤 희망적인 메시지보다 더 큰 힘이 된다.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

김태원이 쓴 '우연에서 기적으로'라는 책이다.

작가처럼 문장력이 뛰어나거나 정서법에 맞게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감동이 있었다.

'넋을 잃다1'에서 마약을 하고 멍하니 창만 바라보며 지내는 태원을 향해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라고 말했다 한다.

충고나 잔소리를 했으면 더 엇나갔을텐데 그 말 한마디가  태원으로 하여금 뭔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태원은 '배려'라고 했다.

 

그래 어쩌면 '배려'인지도 모르지.

내 지난날을 뒤돌아보게 하는 단어 '배려'

'배려'때문에 제2의 전성기를 맞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배려'를 하지 못해서

지독히도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냈다.

이기심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까 두려워서 그의 불성실함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냥 바라봐주고 기다려줬다면 지금까지 가슴앓이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조급함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는 깊은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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