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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양잠의 신, 마두낭(馬頭娘)

테오리아2 2016. 1. 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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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잠의 신,


마두낭 馬頭娘

 

글_ 이태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아주 오래전 어떤 사람이 멀리 원정을 떠나게 되어 집에는 딸과 그가 기르던 숫말 한 마리만 남게 되었다. 그 딸은 말을 잘 보살펴 주었다. 어느 날 그 딸은 아버지가 보고 싶은 나머지 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돌아와 준다면, 내가 장차 너의 베필이 되어 줄거야.”

 

그러자 말은 고비를 끊고 집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말은 이내 지름길을 달려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아버지는 말을 보고 무척 놀랍고 기쁜 나머지, 말에 올라탔다. 그러자 말은 집의 방향을 가리키며 구슬피 울었다.

아버지는 집안에 무슨 변고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바로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오자 딸은 기
쁘게 맞이하였고, 아버지는 집안에 별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였다. 이후 아버지는 말이 보통 짐승과 다르다고 생각하여 먹이도 더 많이 주었다. 하지만 말은 더 먹으려 하지 않았으며, 다만 딸이 지나갈 때 마다 감정을 내비쳤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아버지는 딸을 불러 물어보았고, 마침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걱정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문의 수치라는 생각이 들어 몰래 활로 말을 쏴 죽이고 그 가죽을 벗겨 뜰에 널어 말렸다. 얼마 후 아버지가 출타한 참에 딸은 뜰에서 놀며 “너는 축생이야. 근데 어찌 사람을 취해 아내로 삼으려 한단 말이냐. 이렇게 죽어 가죽까지 벗겨진 것은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야. 왜 그런 일을 한거야”라고 하며 말가죽을 밟았다.

 

그러자 갑자기 말가죽이 일어나딸을 둘둘 말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마 후, 여자아이를 돌돌 말은 말가죽이 큰 나뭇가지 사이에서 발견되었고 이내 누에들로 변해 그 나무를 둘러싸고 실을 토하여 고치가 되었다. 이 고치의 실은 아주 가지런하고 두꺼운 것이 여느 고치와 달랐다. 이웃집 여자가 이를 가져다 몇 배의 소출을 거두었다.

 

 

1. 잠신도 청대초기 저쟝『中國美術全集21 - 民間年畵』(人民美術出版社, 1985.)

 

 

동진(東晉) 간보(干寶)가 지은『수신기(搜神記)』에는 양잠의 기원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미 중국와 서역의 교역로를“실크로드(Silk Road)”라고 명명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양잠은 오래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주요한 산업이다.

 

한대(漢代) 정월 황제가 친경을 하고 선농단에서 제사를 올려 한해 농사의 시작을 알렸다면, 황후는 비빈들과 관료들의 부인을 거느리고 후원에서 뽕잎을 따 잠실에서 누에를 치고, 선잠에 제를 올렸다. 진대(晉代)에는 이 제사를 올리기 위해 “선잠단(先蠶壇)” 이라는 제단을 두었고 이 제도는 청대(淸代)까지 이어졌다. 오늘날 베이징의 베이하이공원[北海公園]에는 청대의 선잠단이 남아있다.

하지만, “선잠” 이 단지 “양잠의 신” 이라는 것 외에 어디서 어떻게 기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 한구의(漢舊儀)』에 따르면 선잠신은 두 명으로 원유부인(菀窳婦人)과 우씨공주(寓氏公主)라고 하나 이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회남자(淮南子)』에는“황제(黃帝)의 부인 서릉씨(西陵氏)가 처음으로 양잠을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선잠과는 관련이 없다. 아마도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국가의 예전(禮典)으로 확립된 이후에는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보다도 상징성과 그 의제(儀制)가 더 중요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간의 상황은 다르다.『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인용된『원화전습유(原化傳拾遺)』에는『수신기』의 내용과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고대 전설속의 고신씨(高辛氏) 시대, 오늘날 쓰촨성 중부지역인 촉(蜀)에 아버지와 딸, 그리고 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이웃 나라에 잡혀 갔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염려되어 기르던 말에게 남편을 구해서 돌아오면 딸을 주겠다고 이야기했다. 말은 이내 마굿간을 뛰쳐나와 아버지를 태우고 돌아왔으나, 어머니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아버지와 모의하여 말을 죽였다. 그리고 가죽을 벗겨 뜰에 널어 두었다.

그리고 딸이 그 옆을 지나가는 데 말 가죽이 딸을 감싸 사라졌고, 열흘 뒤에 뽕나무 위에 걸려진 채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미 딸은 누에가 되어버렸다. 앞의 이야기와 거의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가 딸의 농담에서 비롯되었다면, 이 이야기는 어머니가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렇게 사건의 발단이 바뀜으로써 딸은 장난끼 있는 여자아이가 아니라 어머니의 그릇된 약속 때문에 자신의 몸을 희생한 효녀가 되었다. 그리고『원화전습유』에는 그 이후의 일까지 덧붙여졌다.

 

"그녀의 부모는 후회하며 딸을 그리워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하늘 위 구름에서 말을 타고 있는 딸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딸은 수십명의 시위를 거느리고 땅으로 내려와 부모에게 말했다.

“태상(太上)께서 저의 효심에 감동하셔서 구궁선빈(九宮仙殯)의 자리를 맡겨주셨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하늘에서 살게 되었으니 더 이상 그리워하지 마세요.”

그리고는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2. 선잠전 청대 베이징『帝京舊影』(紫禁城出版社, 1994.)

 

 

“태상”이나“구궁선빈”등의 용어를 통해서도 짐작해 볼 수 있듯이, 도교(道敎)의 신격(神格)이 덧붙여진 것으로 보아 본래의 이야기에 육조(六朝) 이후 당대를 거치며 발전해 온 신들의 위계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촉(蜀)은 후한(後漢) 이래 비단의 주요생산지였음을 감안할 때, 배경이 되기에 충분하다.

양잠의 기원에 관해 등장하는 또 다른 신인 청의신(靑衣神)도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무튼 소녀는 이렇게 잠신(蠶神)이 되었다. 이 이야기가 기록될 시점까지도 그녀의 집이 존재하여 매년 사방에서 참배객들이 몰려들었으며, 그중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영험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많은 도관(道觀)과 사찰에서도 그녀를 모셨다. 여자의 형상을 만들고 말가죽을 입혀“마두낭(馬頭娘)”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뽕잎을 따 누에를 기르고 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을 만드는 노동의 과정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인간적인 신의 모습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잠신은 지역에 따라“마두낭”,“ 나조(螺祖: 서릉씨)”,“ 청의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소식 2008 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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蠶女

 

 

 

원화전습유(原化傳拾遺)

 

蠶女者. 當高辛帝時, 蜀地未立君長, 無所統攝. 其人聚族而居, 遞相侵?. 蠶女舊跡, 今在廣漢, 不知其姓氏. 其父爲隣邦掠(‘邦掠’原作‘所操’, 據明?本改)去, 已逾年, 唯所乘之馬猶在. 女念父隔絶, 或廢飮食, 其母慰撫之, 因告誓於衆曰: “有得父還者, 以此女嫁之.” 部下之人, 唯聞其誓, 無能致父歸者. 馬聞其言, 驚躍振迅, 絶其拘絆而去. 數日, 父乃乘馬歸.

自此馬嘶鳴, 不肯飮?. 父問其故, 母以誓衆之言白之. 父曰: “誓於人, 不誓於馬. 安有配人而偶非類乎? 能脫我於難, 功亦大矣, 所誓之言, 不可行也.” 馬愈?, 父怒, 射殺之, 曝其皮於庭. 女行過其側, 馬皮蹶然而起, 卷女飛去. 旬日, 皮復栖於桑樹之上. 女化爲蠶, 食桑葉, 吐絲成繭, 以衣被於人間.

父母悔恨, 念之不已, 忽見蠶女, 乘流雲, 駕此馬, 侍衛數十人, 自天而下, 謂父母曰: “太上以我孝能致身, 心不忘義, 授以九宮仙殯之任. 長生于天矣, 無復憶念也.” 乃?虛而去.

 

今家在什? · 綿竹 · 德陽三縣界. 每歲祈蠶者, 四方雲集, 皆獲靈應. 宮觀諸化, 塑女子之像, 披馬皮, 謂之‘馬頭娘’, 以祈蠶桑焉. <稽聖賦>曰: “安有女(<集仙錄>六, ‘安有女’作‘爰有女人’), 感彼死馬, 化爲蠶蟲, 衣被天下是也.”

 

(出<原化傳拾遺>)

 

 

 

 

蠶馬 与 蠶神

 

 

 

 

蠶女(잠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잠신(蠶神).

 

황제(皇帝)의 부인 누조(嫘祖)를 말한다. 또다른 전설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떤 사람이 멀리 길을 떠나, 집에는 딸과 수말 한 마리만 남게 되었다. 딸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아버지를 데려다 주면 너에게 시집가마"라고 말에게 장난말을 했다. 며칠 후 말은 과연 아버지를 데리고 돌아왔다. 아버지와 딸은 약속을 어기고 말을 죽여 그 가죽을 뜰에다 말렸다. 어느 날 딸이 그 곁을 지날 때 말가죽이 그녀를 말아서 도망가버렸다. 훗날 나뭇가지 사이에서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누에로 변해 있었다.

이때문에 잠녀를 마두낭(馬頭娘)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잠신이다.

고대 쓰촨[四川] 지역에서는 잠신에게 제사를 드려 누에와 뽕나무가 풍성하기를 기원했다. 쓰촨 성 더양 현[德陽縣], 스팡 현[什防縣], 몐주 현[綿竹縣] 부근에 잠녀묘와 무덤 유적이 있다.

 

/ Encyclopaedia Britannica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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