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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리아스>로 읽은 ‘용기’ / 정여울의 ‘자기 치유의 인문학’

테오리아2 2016. 1. 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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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자기 치유의 인문학’ |

 

<일리아스>로 읽은 ‘용기’의 세 가지 표정 - 삶을 바꾸는 데 가장 필요한 것

 

 

분노가 낳은 아킬레우스의 용기,

‘용기의 최고봉’ 프리아모스의 부정(父情),

 ‘자기신뢰와 희생의 결정체’ 헥토르의 용기

 

 

자기를 희생한 숭고한 용기는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원천이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파키스탄의 17세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사진)의 목숨을 건 용기는 차별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중동의 아동 인권에 대해 세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말랄라가 유엔 총회장에서 연설하는 모습. / 사진·뉴시스

 

 

누군가 “당신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라 고 물어온다면, 저는 주저 없이 ‘용기’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가장 갖고자 노력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보아도, 저는 다른 수많은 탐나는 것 중에서도 ‘용기’를 택하고 싶습니다.

용기는 저에게 다른 것들과 비교 불가능한 가치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나서지 못했던, 용기를 내지 못해 솔직해 질 수도 없었던 그 수많은 순간이 아직도 제 발목을 잡습니다.

그때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습니다.

 

 

친구를 잃은 복수심에 불탄 아킬레우스는 자신에게 패한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아 질질 끌고 다니며 승리를 만끽했다. 프란츠 마츠가 그린 <아킬레우스의 개선(1892)>.

 

 

그래서일까요? 작은 용기가 삶을 바꾸는 순간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아기가 처음으로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아기의 그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아기도 두려움을 느낍니다. 넘어지면 어쩌나, 이번에도 안 되면 어쩌나, 고민하는 표정이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로 바뀌는 순간. 아기는 세상에 첫 발자국을 뗍니다. 우리가 용기를 내어 세상 속으로 다가가는 순간은 그렇게 아기의 첫 걸음마를 닮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삶을 바꾸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지식이나 자본이나 연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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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의 용기: 분노를 통해 성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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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에 있는 트로이의 유적. 견고했던 성은 폐허가 됐지만 전설적인 영웅들의 이야기는 문학작품 <일리아스>로 되살아나 현대인에게도 영감을 주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호메로스가 노래한 불멸의 고전 <일리아스>를 저는 ‘용기란 무엇인가’를 증언하는 이야기로 읽어보려 합니다. 저에게 <일리아스>는 수많은 전쟁 영웅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커다란 고통에 맞서 저마다가 지닌 최고의 모습으로 용기를 끌어내는지, 또는 얼마나 비겁하게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지, 그들이 과연 무엇을 지켜내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지요.

이 수많은 전사(戰士)의 이야기 중에서 저는 특히 세 사람의 용기에 주목해보려고 합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그리고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의 용기지요. 그들은 저마다 매우 다른 모습으로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싸웁니다.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 초반부에서는 그리 멋있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었다는 이유로 한참이나 전쟁을 거부하는 ‘토라진 남자’로 나오지요.

사실 아킬레우스가 지켜온 가치는 용기라기보다는 ‘명예’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끼던 아름다운 여인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빼앗겼다는 이유로 전쟁에 참전하지 않기로 합니다. 막사에 틀어박혀 누구의 설득도 들으려 하지 않지요. 심지어 설득의 제왕이었던 오디세우스의 조언마저도 무시합니다.

아킬레우스만 있다면 거침없이 불패의 신화를 쓸 수 있었던 강력한 그리스군은 그의 부재로 인해 휘청거리게 되지요. 이때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가 나타나 전세를 크게 역전시킵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전세가 불리해졌음을 알면서도 마음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마치 마마보이처럼 어머니 테티스에게 ‘이 모든 일을 제우스에게 알려달라’며 칭얼거리기까지 합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저를 단명하도록 낳아주셨으니, 높은 곳에서 천둥을 치시는 올륌포스의 제우스께서는 제게 명예만이라도 주셨어야죠. 하거늘 지금 그분께서는 작은 명예도 주시지 않았어요.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저를 모욕하여, 제 명예의 선물(브리세이스)을 몸소 빼앗아 가졌으니 말예요.

(…)

어머니! 가능하시다면 이 아들을 도와주세요. 어머니께서 일찍이 말과 행동으로 제우스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린 적이 있다면 지금 올륌포스로 가서 제우스께 간청해보세요.”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 숲, 2007, 39~40쪽)

 

 

아킬레우스는 용맹과 지략을 갖춘 훌륭한 장수였지만, 의외로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에서 처음부터 멋진 영웅이라기보다 점점 성장하는 영웅의 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아킬레스건’이라는 단어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치명적인 결점은 발뒤꿈치였다고들 말하지요. 하지만 <일리아스>를 보면 그의 진정한 아킬레스건은 형제처럼 동고동락하며 자라난 죽마고우, 파트로클로스였던 것 같습니다. 아킬레우스의 답답한 모습을 보다 못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무장을 입고 출전한 것입니다. 아킬레우스를 대신하여, 아킬레우스의 명예를 걸고 싸웠던 파트로클로스는 기대 이상으로 잘 싸워 트로이의 영웅 사르페돈을 죽이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결국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손에 죽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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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파리스의 화살에 스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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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에게 무릎 꿇고 아들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아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그의 용기는 적장 아킬레우스의 복수심도 누그러뜨렸다. 알렉산더 이바노프가 그린 <프리아모스의 간청(1824)>. / 사진·뉴시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얼굴에 흙먼지를 뿌리며 통곡하고, 먼지더미 속에 큰 대 자로 드러누워 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합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차라리 죽어버릴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아킬레우스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전우에 대한 미안함, 가장 소중한 친구를 사지에 몰아넣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마음은 이제 아가멤논을 향한 치욕과 분노가 아닌, 적장 헥토르를 향한 복수심으로 가득 찹니다.

아킬레우스가 ‘그리스의 방패’였다면, 헥토르는 ‘트로이의 모든 것’이었지요.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사람들이 통곡하며 바라보는 가운데 헥토르를 보란 듯이 죽입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아 질질 끌고 다니며 승리를 만끽합니다. 헥토르의 아름다운 얼굴이 땅바닥에 질질 끌리며 모욕을 당하는 것을 바라본 트로이 사람들의 가슴에는 분노가 차오릅니다. 그러나 트로이의 굴욕이 아킬레우스에게는 빛나는 승리였습니다. 그 전쟁의 잔인한 이분법 속에서 아킬레우스는 복수의 칼날을 거두지 않지요.

아킬레우스는 그렇게 ‘분노’를 ‘용기’로 전환시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본받을 만한 용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노가 용기의 방아쇠가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분노가 ‘정의’를 되찾기 위한 신념에서 비롯된다면 말이지요.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능력과 신의 가호를 모두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어이없게도 트로이에서 가장 비겁한 남자, 파리스의 화살에 스러지고 말지요. 이것은 전쟁의 아이러니이기도 하고 인생의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항상 가장 강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지요.

파리스는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처럼 모두의 존경을 받을 만한 영웅은 아니지만 뜻밖에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물론 그 눈부신 행운의 남자 파리스조차 결국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이 모든 전쟁의 발단이 되었던 아름다운 헬레네를 잃고 말지만 말입니다.

메넬라 오스의 부인 헬레네를 유혹해 트로이로 끌고 와버린 파리스는 온가족의 골칫덩이이자, 만백성의 분노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결국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트로이아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안 파리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헥토르는 분노합니다.

누구에게나 따스하고 친절했던 헥토르가 유일하게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이 바로 동생 파리스입니다.

 

 

“가증스런 파리스여, 외모만 멀쩡하지 계집에 미친 유혹자여!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거나 장가들기 전에 죽었어야 해. 그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었어. 이렇게 만인 앞에서 창피를 받느니 그 편이 훨씬 나았을 테니까.”

(<일리아스>, 88쪽)

 

 

매번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헥토르에 비하면, 파리스의 변명은 누추하기만 하지요. 파리스는 자신의 슬픔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방안에 자신을 가두어버렸다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전쟁터에 나가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합니다.

헥토르는 파리스의 두려움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그런 겁쟁이 파리스의 용기야말로 이 전쟁에서 꼭 필요한 것임을 알았기에 더더욱 호되게 동생을 다그칩니다.

 

파리스도 그저 가만히 있지는 않습니다.

 

 

“형님의 마음은 언제나 도끼처럼 굽힐 줄 모르지요.

(…)

하지만 황금의 아프로디테의 사랑스런 선물은 비방하지 마시오. 신들이 손수 내리신 영광스런 선물은 절대로 물리쳐서는 안되며 또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하나 지금 내가 싸우기를 진심으로 원하신다면 다른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은 모두 앉히시고 그 한가운데서 아레스의 사랑을 받는 메넬라오스와 내가 헬레네와 그녀의 모든 보물을 걸고 싸우게 하시오.”

(<일리아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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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아모스의 용기: 분노를 굴복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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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토르는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자 했다. 그의 숭고한 희생은 타인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가장 아름다운 용기다. 헥토르의 죽음을 묘사한 로마시대의 석관 조각. / 사진·뉴시스

 

 

파리스에게 어떻게 이런 용기가 갑자기 나왔을까요? 모두 물러나게 하고 ‘헬레네’라는 한 여자 때문에 철천지원수가 된 바로 그 메넬라오스와 자신이 일대일로 맞붙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파리스는 비겁하기는 했지만 ‘명예’를 모른 척할 수 있는 위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책임감을 느꼈고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고 싶었습니다. 물론 결과는 처참했지요.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의 손에 죽을 뻔했지만, 이번에도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합니다.

 제우스는 아킬레우스를 돌보고, 아프로디테는 파리스를 돌보는데, 헥토르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싸워야 했지요. 아폴론은 헥토르를 돕고 싶어했지만, 제우스의 명령으로 제지당합니다.

용장은 지장을 당해내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을 이기지 못하며, 덕장은 복장을 못 이긴다는 말이 있지요. 그러니까 아킬레우스가 용장(勇將)이라면, 파리스는 복장(福將)이고, 헥토르는 덕장(德將)인 것 같습니다.

 

헥토르가 죽자 트로이 전체가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헥토르가 죽은 것만으로도 이제 다시는 태양이 뜨지 않는 것처럼 고통스러운데,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모욕하며 시체를 트로이에 돌려주지 않자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깊은 근심에 빠집니다. 헥토르를 골백번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는 아킬레우스는 마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마침내 프리아모스는 용기를 냅니다.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는 것은 단지 한 개인의 장례식의 문제가 아니라 트로이 전체의 명운이 걸린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프리아모스는 거창한 대의를 주절거리지 않습니다. 수레 가득 온갖 보물을 싣고 가서, 아킬레우스 앞에 그저 겸허하게 간청합니다. 한 나라의 왕이 적군의 장수에게, 그것도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남자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프리아모스는 명예보다도 사랑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무엇이 진짜 명예인지 알았던 사람이지요. 아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으로, 그는 왕의 체면까지 벗어 던져버린 것입니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를 향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애원합니다.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오.

드넓은 트로이아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아들들을 낳았건만 그중 한 명도 안 남았으니 말이오. 아카이오이족의 아들들이 왔을 때 내게는 아들이 쉰 명이나 있었소. 그중 열아홉 명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나머지는 소실들이 나를 위해 집 안에서 낳아주었소.

한데 그들 대부분의 무릎을 사나운 아레스가 풀어버렸소. 그리고 혼자 남아서 도성과 백성들을 지키던 헥토르도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얼마 전에 그대의 손에 죽었소.

그래서 나는 그 애 때문에, 그대에게서 그 애를 돌려받고자 헤아릴 수 없는 몸값을 가지고 지금 아카이오이족의 함선들을 찾아온 것이오.

아킬레우스여!

신을 두려워하고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여 나를 동정 하시오. 나는 그분보다 더 동정받아 마땅하오. 나는 세상의 어떤 사람도 차마 못한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들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일리아스>, 6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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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토르의 용기: 영원한 신화의 피날레를 장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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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 같은 심장을 가진 아킬레우스의 가슴에도 어느덧 눈물이 차오릅니다. 무려 50명의 아들을 모조리 전쟁에서 잃은 아버지라니…. 아킬레우스는 친구 하나를 잃고도 이토록 광기 어린 복수의 열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그 애지중지하던 오십 명의 아들을 모두 잃어버린 프리아모스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고 있었겠지요.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아버지 또한 떠올렸을 것입니다.

자기 자식을 죽인 사람의 면전에서 가련하게 손을 내밀고 있는 늙은 프리아모스를 바라보며, 아킬레우스는 꺼이꺼이 울기 시작 합니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운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사랑하는 아버지 펠레우스를 위해, 그리고 아마도 단명할 것임에 분명한 자신의 운명을 위해 울었습니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발 앞에 쓰러져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 헥토르를 위해 통곡했습니다. 아군의 수장과 적군의 왕이 한데 모여 서로의 운명을 한탄하며 통곡하는 장면을 그려내다니, 호메로스의 붓끝에는 지상에는 없는 노래의 날개가 달린 것 같습니다.

 

마침내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용기 앞에 손을 들고 맙니다.

 

 

“아아, 불쌍하신 분! 그대는 마음속으로 많은 불행을 참았소이다.

그대의 용감한 아들들을 수없이 죽인 사람의 눈앞으로 혼자서 감히 아카이오이족의 함선들을 찾아오시다니!

그대의 심장은 진정 무쇠로 만들어진 모양이구려.”

(<일리아스>, 671쪽)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시체를 넘겨주며, 헥토르의 장례기간 동안에는 전쟁을 멈출 것을 약속합니다. 트로이의 심장이자 트로이의 가장 쓰라린 아픔이었던 헥토르.

그의 장례식 동안에는 그 지긋지긋한 전쟁의 불꽃마저 사그라집니다. 늙고 지친 프리아모스를 움직인 것은 지극한 슬픔, 그리고 아들과 조국을 향한 지극한 사랑이었습니다. 용기는 꼭 창을 들고 앞으로 나서 적군을 찌르는 식의 육체적 행위가 아님을, 프리아모스는 몸소 보여줍니다. 그의 용기는 자비와 이해, 공감을 뿌리에 둔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지요. 용기의 최고봉은 역시 지극한 사랑이 아닐까요?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둘도 없는 친구인 파트로 클로스를 죽인 후, 그가 입고 있는 무구를 벗겨 손수 입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될 아킬레우스가 얼마나 분노할지, 천하의 헥토르가 모를 리 없지요. 제우스 마저도 헥토르의 용기에 감격할 정도입니다.

 

 

“가련하도다! 죽음이 임박했는데도 너는 죽음은 생각지도 않는구나.

네가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 떠는 가장 용감한 전사의 불멸의 무구들을 입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점잖고 강력한 전우를 너는 죽였고, 또 어울리지 않게도 그의 머리와 어깨에서 무구들을 벗겼구나.”

(<일리아스>, 475쪽)

 

 

하지만 이렇게 지나치게 용감한 남편을 둔 아내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의 용기가 곧 그 자신을 죽일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알고 있었습니다.

부부 간의 정이 더없이 깊었던 두 사람 사이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이해와 연대가 있었지요. 안드로마케는, 운명은 물론 신들에게까지 맞서 싸우고도 남을 헥토르의 용기를 원망합니다. 사랑하지만 원망하고, 존경하지만 안쓰러워합니다. 저 험난한 전쟁의 불꽃 속에 남편을 잃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상한 분이세요. 당신의 그 용기가 당신을 죽일 거예요.”

안드로마케의 아버지는 물론 일곱 오라비가 모두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어버렸기에, 그녀의 고통은 더욱 사무칩니다. 저 천하무적의 싸움꾼 아킬레우스에게, 남편마저 잃을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니 헥토르여! 당신이야말로 내게는 아버지요, 존경스런 어머니며 오라비이기도 해요, 나의 꽃다운 낭군이여! 그러니 자, 당신은 불쌍히 여기시고 여기 탑 위에 머물러 계세요! 제발 당신의 자식을 고아로, 당신의 아내를 과부로 만들지 마세요.”

(<일리아스>,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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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태어나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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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마케는 절절한 사랑으로 남편을 붙들려고 합니다. 물론 헥토르도 아내를 못지않게 사랑했지만, 그에게 사랑과 용기는 양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에게는 사랑마저 용기의 일부였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용기 또한 가족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 운명에 대한 사랑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일 겁쟁이마냥 싸움터에서 물러선다면 트로이아인들과 옷자락을 끄는 트로이아 여인들을 볼 낯이 없을 것이오. 그리고 내 마음도 이를 용납하지 않소. 나는 언제나 용감하게 선두대열에 서서 싸우며 아버지의 위대한 명성과 내 자신의 명성을 지키도록 배웠기 때문이오. 나는 물론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소.

언젠가는 신성한 일리오스와 훌륭한 물푸레 나무 창의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멸망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

그때는 당신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말하겠지요.

‘저 여자가 헥토르의 아내야. 사람들이 일리오스를 둘러싸고 싸울 때 그는 말을 길들이는 트로이아인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전사였었지.’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굴종의 날에서 당신을 구해줄 그러한 남편이 없음을 새삼스레 슬퍼하게 될 것이오.

당신이 끌려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기 전에 쌓아 올린 흙더미가 죽은 나를 덮어주었으면!

(<일리아스>, 184~185쪽)

 

 

헥토르는 자신이 죽은 뒤에 트로이의 백성들이 겪을 고난을, 그리고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겪게 될 온갖 모욕과 비탄을 상상만 해도 심장이 으스러지는 것 같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을 자신이 트로이를, 아내를, 아들을, 그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해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가슴이 찢어집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적장 아킬레우스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는 도망쳐서 가족을 지키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더욱 어렵고 힘들며 비참한 길을 택합니다. 그는 역사에 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거기에 대답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요.

 

헥토르는 살며, 사랑하며, 싸웁니다. 그의 삶이 싸움이며, 그의 싸움이 사랑입니다. 그 어느 것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아내는 뒤늦게 그것을 이해합니다.

헥토르의 죽음에 슬퍼하는 여인들의 울음은 그가 보여준 용기가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증언합니다. 싸늘하게 식은 헥토르의 머리를 두 손으로 붙들고 그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통곡합니다.

 

 

“낭군이여! 당신은 아직 젊은데 목숨을 버리고 나를 당신 집에 과부로 남겨놓으시는군요.

불운한 당신과 나 사이에 태어난 자식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해요. 나는 그 애가 자라서 어른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 전에 이 도시가 완전히 파괴될 테니까요.

성벽을 지켜주고 소중한 아내들과 철없는 아이들을 보호해주던 이 도시의 수호자인 당신이 죽었으니 말예요. 그들은 머지않아 속이 빈 함선들에 실려 갈 것이고, 나도 그들과 함께 가겠지요.

그리고 내 아들아!

너는 나를 따라가 그곳에서 어느 가혹한 주인 밑에서 고생을 하며 치욕스런 노역에 종사하게 되겠지.

(…)

헥토르여! 당신은 부모님에게 말할 수 없는 비탄과 슬픔을 주셨어요.

하지만 누구보다도 내게 쓰라린 고통이 남게 될 거예요. 당신은 죽을 때 침상에서 나를 향해 손을 내밀지도 않았고 내가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두고두고 마음속에 간직할 지혜로운 말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으니까요.”

 

(<일리아스>, 6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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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차 흉내 낼 수 없는 용기의 원천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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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토르는 저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가 아킬레우스처럼 요정 테티스의 아들이 아니고, 헤라클레스처럼 제우스의 피가 섞인 신의 혈통이 아니라는 점이 더욱 감동을 줍니다. 헥토르는 그저 인간이었습니다.

아킬레우스가 틈만 나면 어머니 테티스를 통해 제우스에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요구하는 동안, 헥토르는 다만 묵묵히 전쟁을 준비하고, 전사들을 격려하고, 제발 전쟁터에 나가지 말라고 울며 매달리는 가족들을 설득하고, 사랑에 빠져 조국의 전쟁 따윈 뒷전인 파리스를 질책하고, 전투에 임합니다.

헥토르에게 남아 있는 길은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치거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싸우거나.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힘과 지략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직 ‘아빠’라고 부르지도 못하는 갓난아이가 눈에 밟혔지만, 그는 설사 이 전쟁에서 패하더라도, 사랑하는 부모님의 눈앞에서 죽어가더라도, 자신이 끝까지 싸우다 죽은 용감한 아들이자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트로이아인’의 한 사람으로 남기를 바랐던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창을 들었던 아킬레우스,

아들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늙고 지친 몸을 이끌고 혼자 적진으로 뛰어들었던 프리아모스,

사랑하는 조국과 트로이아인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렸던 헥토르.

그리고 각자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저마다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 모든 전사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일리아스>의 주인공들입니다.

헥토르의 용기에 대해 토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왠지 밤을 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항상 신들의 가호를 받아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이는 아킬레우스와 달리, 헥토르는 기댈 데가 없습니다. 모두 그에게 기대기만 할 뿐, 그가 기댈 사람은 세상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헥토르는 운명이나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믿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한히 강해지는 사람들이 있지요.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을 위해 잠재된 모든 힘을 끌어내는 사람들이 있지요. 헥토르의 용기는 자꾸만 ‘내 삶은 무엇인가’, ‘내 용기는 왜 이토록 작고 보잘것없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용기, 타인의 삶에 영감을 주는 용기입니다. 그것은 가장 따라 하기 어려운 용기임과 동시에 우리가 진심으로 모방하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용기입니다.

 

헥토르의 용기는 무엇을 갖거나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한 용기’입니다. 내가 용기를 냄으로써 명예나 체면이나 지위나 영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용기를 냄으로써 그저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지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용기입니다.

헥토르의 용기는 신들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용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눈부신 용기입니다. 강한 자가 자신의 힘을 굳건하게 믿고 끌어내는 용기가 아니라, 약한 자가 자신이 가진지도 몰랐던 숨은 힘을 모두 끌어내어 마침내 스스로 최후까지 뜨거운 사랑의 불길로 타오르는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 월간중앙

10. 2014.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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