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론

[스크랩] 수필의 문학성과 상상 / 최원현 (수필가. 문학평론가)

테오리아2 2014. 8. 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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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의 문학성과 상상    /   최원현 (수필가. 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문학은 언어를 매체로 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문학이 같은 언어를 매체로 하는 다른 학문과 구분되는 것은 문학작품이 갖는 예술성 곧 문학만의 고유한 특성-문학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예술적 가치를 구현하면서 담고 있는 주제가 독자에게 감동과 깨달음으로 즐거움을 줄 때 그 작품에 문학성이 있다고 평가된다. 물론 치밀한 묘사, 예리한 구성력 등 문학작품으로서의 조건을 잘 갖췄는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성이란 언어로 이루어지는 문장의 내용이나 표현의 기법이 미적 가치를 창조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뛰어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태어난 산물이라는 것도 일반적인 문학의 개념이다.


  최근 문학 장르 중 시인 다음으로 많은 수필가만큼 수필은 문학적 저변 확대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 장르다. 5천명으로 추산되는 등단 수필가가 발표하는 수필이며 수필집 그리고 시인 소설가 등 문인은 말할 것 없고 학자, 연예인, 정치인, 사업가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까지 가장 쉽게 그리고 폭넓게 접근하고 참여하는 것도 수필이다. 하지만 이렇게 독자들에게 선보여지는 수많은 수필들이 모두 문학이란 이름의 수필일까 하는 데는 의문이 인다.


  문학작품이란 문학적 전문성이 있는 사람에 의해서 생산되어진 전문적 생산물이다. 따라서 문학작품이라는 전문적 생산물은 전문적 품질을 갖기 마련이다. 이 전문적 품질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문학성을 평가받게 된다. 하지만 수필에선 어떤가. 문학으로서의 수필이 갖는 전문성인 문학성도 작가의 상상력의 작용을 받는 것일까. 그렇다면 문학성에 영향을 미치는 상상이 수필에선 어떻게 얼마나 수필답게 하는 지를 살펴본다.



2. 수필의 문학성


  수필은 현실적으로 체험한 사실과 경험을 기록한 비허구적(非虛構的) 문학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문학은 허구의 세계를 말한다. 문학이 미적 정서, 상상과 창조, 사상성, 형식 등 요소가 작품 속에서 긴밀하게 결합되고 유기적으로 통일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라 볼 때 이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게 비허구적 문학인 수필이다.


  미적 정서란 어떤 사상이나 대상을 접했을 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본능적인 감정을 절제하고 걸러냄으로써 생겨나는 정서로 수필에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학을 창조하는 힘의 원천으로 이미지를 형성하고 문학의 독창성을 가능케 해 주는 상상과 창조에는 문제가 따른다. 물론 상상과 창조도 무(無)에서의 창조라기 보단‘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시학)는 모방의 그리스 말 ‘미메시스(mimesis : 아리스토텔레스적 비평, 미학. 예술 창작에 기본이 되는 이론적 원리)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모방'('복제'라기보다는 '재현'의 뜻)이라는 뜻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를 자연의 재현이라고 말했다.(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의 다의성(多義性)으로 보면 수필에서도 가능하다.


  모방한다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도 인간이 가장 모방을 잘하며, 처음에는 모방에 의하여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모방된 것에 대하여 쾌감을 느낀다.(시학 제4장) 아울러 예술의 모방은 사물을 실제보다 아름답게 혹은 열악하게 제시할 수 있게 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유종호/민음사/1989 p271호)  그러나 미메시스는 현실의 충실한 모사나 복사만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으로도 본다.


  말하자면 수필에서의 상상과 창조도 미메시스의 다의성 곧 인간의 모방이나 재현성에 근거하여 사물을 실체보다 아름답거나 추하게 그리고 체험이나 사실의 단순한 모사나 복사가 아닌 문학적 현실에의 접근을 위한 다양한 방법으로 문학성의 추구 곧 문학화를 꾀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수필의 체험도 문학적 창조가 가능할 수 있다. 창조가 창조인 까닭은 모방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창조는 모방을 통해 가능하다. 대상에 대한 모방이란 무결한 체득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하는 모방을 말한다. (문학의 새로운 이해/김인환 외/문학과 지성사/1996 중 장경렬/작가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 p91)

  문학성의 기준으로 창조(상상)를 앞세우는 것은 문학이‘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얼마나 그럴싸하게 잘 만들어 냈느냐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잘 만들어진 허구는 사실에 가장 가까운 얘기여야 한다. 그런데‘사실’을 기준으로 사실만큼 잘 만들어진 것은 문학이고, 사실이면 문학이 안 된다고 하면 문학은 늘 사실만 못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허구가 사실을 능가하는, 사실일 수 없는 사실 같은 이야기라면 달라진다. 바로 무한한 상상력의 산물, 모방의 차원을 넘는 상상적 창조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다음 우리는 그것들 또한 현실화 되고 있음을 익히 보아왔다. 문학(예술)적 상상의 세계에서 상상이 가능하다면 그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로 인간의 모든 상상은 언젠가는 사실로 실현될 수 있다는 예감을 안고 살게 된다.


  수필은 서정이라는 정서와 지성의 날카로움을 바탕에 깔고 예리한 관찰력과 사물을 통찰하는 예지로 자기 체험에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한다. 물론 자기 고백적이라는 점에서 때론 자화상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작가의 사색과 관조와 상상(문학적 창조성)을 통해 문학화 하는 수필은 어느 문학보다도 품격 높은 문학이다. 물론 일반적 문학의 특성인 허구가 아닌 작가의 사실 체험들이 소재가 되는 게 수필이지만 그 체험이 바로 문학이 되진 않는다. 수필은 삶의 체험을 정밀(正密)한 언어의 선택과 치밀(緻密)한 구성으로 이루어낸 향기로운 문학의 결정체(結晶體)이다. 그렇다면 문학이 추구하고 있는 예술적 가치의 구현·주제가 독자에게·감동과 깨달음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에 수필은 어떻게 반응하고 보여주려 하는가. 또한 수필이 보여주는(보여주고자 하는) 미적 가치의 창조와 표현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수필에서의 창조와 모방은 소재와 주제, 구성 및 창작면에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가.



1) 창조와 모방


  우리는 수필을 문학화 함에 있어 사실의 체험에 사색과 관조를 더하고 의미화 내지 주제화라는 이름으로 상상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그 상상의 폭은 지극히 좁고 한계적이었다. 자기 고백적, 자기 체험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한 상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필의 문학성을 확보하기 위한 상상은 얼마만큼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문학성(literary quality)은 개인의 직관이나 막연한 느낌에 의존하여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학작품은 작가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언어적 실체로, 작품의 복합적인 의미망을 생성해 내는 것은 다름 아닌 언어라는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텍스트’의 개념이 된다. (위의 책 중 장경렬/ p93)


  텍스트라는 문학작품이건, 글 쓰는 행위의 증명으로서의 문학 언어의 구성체이건 언어탐구의 산물인 문학작품은 창조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와도 결국은 모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문학성이 있다는 문학작품이 내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란 한없는 외로움과 고통, 절망과 도전, 모험과 패배의 무거운 짐을 지겠다는 실존적 결단을 동반하는 사람이다 (위의 책 중 김병익/작가란 무엇인가 p41)


  작가는 그만의 한 세계를 창조해 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진다. 그런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실존적 결단도 한다. 문학 행위란 작가와 독자 사이에 맺어진 암묵적 혹은 현시적 의식행위이다. 현실을 비현실화 함으로써‘현실의 효과’를 나타내는 문학적 표현 양식을 양자가 믿고 의례적으로 참여할 때 문학적 가치는 제도화 되어 간다. 문학 혹은 문학적 환상이란 이렇게 제도화된 문학적 가치 위에 성립한다. (위의 책 중 현택수/문학 생산의 장 p72)


  하지만 사실 체험이 주가 되는 수필은 현실을 비현실화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현실화요, 현실을 문학화 한다. 그것은 체험이라는 과거적 현실을 현시적 현실로 끌어옴으로서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열리게도 하고 현실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실로 오가기도 하며 그만의 상상의 공간에 주제화 내지 의미화라는 창조행위를 해낸다. 따라서 문학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필의 창조행위는 소재나 주제나 구성에서도 이뤄질 수 있되 이러한 상상적 창조는 상상적 모방을 동반 한다. 다시 말하면 수필에서의 문학성을 위한 창조와 모방은 작가가 허구로 형성하는 것이라기 보단 오히려 암시, 생략 등으로 독자의 상상을 통해 이뤄지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수필의 소재면


  움베르토 에코는 <글쓰기와 글 읽기>에서‘수신자의 능력은 반드시 발신자의 능력에 버금가지 않는다.’고 했다. 수신자는 독자요 발신자는 작가다. 옛날에는 능력이 있는 발신자의 생각을 먹고 사는 게 수신자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발달하고 각자 삶의 보유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수신자의 능력은 발신자 이상으로 고급화되고 오히려 일부 전문분야에선 발신자를 월등하게 능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학성 확보를 위해 작가가 할 수 있는 것 중 우선 소재면에서 부터 수신자를 능가하지 못하면 작품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작품이 읽힐 가능성부터 상실하게 된다.


  삶의 실상은 편의적인 개념이나 용어만으로써는 설명될 수 없는 산 육신의 살아가는 활동적 양상이요, (文藝批評論/한국문학평론가협회/서문당/1984 중 조연현/서론 p10) 수필은 그러한 삶의 실상이 수필이란 형식으로 반영된 것인 만큼 인간의 다양한 국면을 표현대상으로 하는 문학은 자아를 표현대상으로 할 수도 있고, 타자(他者)를 표현대상으로 할 수도 있으며, 인간을 에워싼 외부 현실에 관심을 집중할 수도 있고, 인간의 내면세계 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킬 수도 있다. 일상현실의 차원에 상황을 설정하여 인간을 묘사할 수도 있고, 가공적·환상적 차원에 상황을 설정하여 인간을 묘사할 수도 있다. (위의 책 중 천이두/문학과 사회 p244)


  따라서 수필의 소재는 꼭 작가 삶의 체험이라는 한계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타자(他者), 인간을 에워싼 외부현실, 인간의 내면세계를 소재로 할 수도 있고 영화나 설화 등의 상황을 통해 인간을 묘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윤오영의 <깍두기設>은 ‘깍두기의 유래‘를 통해 ’수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수필의 소재 자체에서부터 의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수필이다. 내 삶의 체험이라는 한계에 갇히다보면 감동을 끌어오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감동이란 심리적 반응이다. 감동이나 혼의 울림은 한 인간이 대상을 자기의 온 몸으로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행위이다. 인간은 문학을 통해, 그것에서 얻은 감동을 통해, 자기와 다른 형태의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확인하고 그것이 자기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문학의 새로운 이해/김인환 외/문학과 지성사/1996 중 김현/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p23)


  문학작품의 성공이 감동인데 그 감동을 향한 첫 번째 발걸음이 바로 소재의 선택이요 소재는 수신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첫 만남(조건)이다. 고로 소재의 선택에서부터 작가는 고도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소재를 많이 동원했다고 해서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제를 잘 살릴 수 있는 소재만 택해야 한다. 많은 소재가 취해졌더라도 주제를 살리는데 기여할 수 있는 것만 남기고 제외시키는 것이 좋다. 따라서 소재는 주제를 살리는데 가장 적절하다 생각되는 것, 구체적인 것, 신빙성이 있는 것, 참신하여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것, 너무 전문적이지 않은 것 (손광성의 수필쓰기/손광성/을유문화사/2008 p249)이어야 하는데, 이러한 소재의 선택 자체가 목적 하는 바(상상)를 염두에 두고 생각을 취사선택하는 것인 만큼 문학적 창조행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3)수필의 주제면


  주제는 줄거리에 대한 의미다. 그것은 모럴도 아니고, 결말의 행위에 대하여 구현되는 계시도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자신의 제재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이다. (R.V. 카실)


  주제는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중심적인 내용으로 모럴이나 제재나 관념이 아니다. 주제는 삶의 어느 국면을 밝히고 해석함으로써 사실에 대한 응집성과 의미를 동시에 부여하는 자리다. (문학의 이해/김시태/태학사/1999 p132)


  인간은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심경을 남에게 표현함으로써 이해를 촉구하려는 욕구를 갖는다. 이때 무엇을 전하고 어떻게 자신을 인식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그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음악인은 이를 위해 선율의 문제를 고민하고, 미술인은 선과 색체를 해결해 보려고 애를 쓴다. 문학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장르에 비해 수필문학의 고뇌는 더욱 절실하며, 그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운정의 수필론(문학전집1)/윤재천/2008 중 시대에 맞는 수필 p65)


  수필에서의 주제는 대개 결말부에 의미화로 나타난다. 따라서 주장적 결론이 아니라 읽는 이가 동의하고 공감하고 감동하도록 독자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수필의 맛이요 멋이다.‘하라’가 아니요,‘해야 한다’도 아니면서 스스로‘그래 내가 그래야지’하고 작가의 생각을 독자가 자기 것으로 하게 하는 것이 수필의 묘미다. 해서 수필의 주제는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읽는 이의 마음속에 스며들거나 침잠한다. 여기서 작가는 독자의 상상력을 최대한 확대시켜 숨겨놓은 꼭 들려주고 싶은 진실을 찾도록 유도하고 촉구한다. 만들어진 이야기 자체로 독자를 찾아가는 소설과 달리 같은 산문문학이지만 수필은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에 흐르고 있는 정서와 분위기를 통해 작가의 의도된 생각을 전하게 되며 특히 전하고자 하는 내용(주제)은 촌철살인(寸鐵殺人),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찰나적 깨달음을 유도하기도 한다. 작가의 상상력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상상력을 유발시켜 작가의 작품 속 창조세계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문학의 언어는 그것이 속해있는 사회의 언어인 일상어와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니다. 문학의 언어는 일상어에 비하여 훨씬 고도한 구체성 내지 압축성을 지향하는 언어다. (文藝批評論/한국문학평론가협회/서문당/1984 중 천이두/문학과 사회 p243)  그런 고도한 구체성 내지 압축된 언어를 통해 수필은 상상력을 유발하고 주제화를 도모하므로 읽을 맛을 느끼게 한다.



4) 수필의 구성면


  수필의 문학성은 그 주제를 어떻게 형상화 하느냐의 문제다. 주제를 형상화 하는 방식이 형식이며, 구성은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과거를 오가며 시간의 원리에 따른다.


  구성이란 말은 동사적 의미로서의‘짜기’와 명사적 의미로서의‘짜임’이라는 두 가지 뜻을 나타낸다. 이 가운데 동사적 의미로서의 구성은 자기가 수행하는 재료의 선정과 배치, 즉 어떤 질서의 확립을 의미하는데, 여기서‘재료’는 작가의 사고, 정서, 상상 등을 포함한 모든 인간적 체험(작품의 실제에 있어서는 언어)을 가리키며,‘선정과 배치(질서의 확립)’는 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인 노력을 뜻한다.(韓國隨筆文學硏究/정진권/신아출판사/1996 중 수필문학의 구성고찰 p60)


  수필은 ‘무형식’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 하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가장 구성이 까다로롭다. 영상물을 보는 것처럼 수필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와 버린다. 그래서 구성이 원활하지 못하면 못 맞춘 퍼즐그림처럼 되어버려 수필이 될 수 없다.


  구성한다는 것은 재료를 의도된 계획에 의해 재가공하는 것으로 실제적인 사실과 경험을 기억이라는 가공 내지 재구성으로 문학화 하는 것이다. 수필이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해 주는 핵심이 구성이다. (수필과 시의 언어/신재기/2009 p40)


  그래서 문학작품이란 내용 + 형식이 아니라, 내용형식이다. 문학은 그럴듯한 내용에다가 그럴듯한 형식의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침전된 내용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예를 들면 밥은 좋은 쌀을 좋은 솥에 넣고 끓여야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쌀에 알맞은 물을 붓고 알맞은 열을 가하는 행위에 의해 얻어진다. 좋은 작품은 좋은 내용을 좋은 형식 속에 가둔 것이 아니라,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되는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 있다. (문학의 새로운 이해/김인환 외/문학과 지성사/1996 중 김현/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p21)


  글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순서로서의 최적의 연결방법, 생각의 조각이나 단락간의 닮음을 연결고리로 하여 하나의 주제로 일관성 있게 수렴해 가는 과정으로의 구성은 작가가 얼마나 뛰어난 구성력을 발휘하는가에 따라 독자에게 흥미 있게 새롭게 인상 깊게 감동으로 다가간다. 물론 이런 구성도 시간상의 배열이거나 단순한 나열식이 되어버리면 작품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표현에서만 낯설게 하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구성에서도 낯설게 하기가 필요하고 때로는 역발상의 시도도 필요하다. 구성은 단순한 배열이 아니다. 극적 효과, 최대의 경제적 효과를 이루는 절대적 기술이다. 소제나 주제에서도 얘기 했던 상상력은 구성에서도 필수다. 이곳에서의 상상 역시 독자가 상상할 수 있도록 작가가 독자의 상상의 폭과 틀을 마련해 주는 상상력이다. 결국 이런 작업이 수필의 문학적 창조 작업이 된다.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가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오래된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김기림(김기림(金起林, 1908. 5. 11. ~ ?) 시인. 문학평론가. 본명 김인손(金仁孫), 편석촌(片石村)이라는 필명 사용. 시집《기상도》외 3권, 수필집《바다와 육체》와 《문학개론》 등 이론서 7권이 있다.)의 <길> 전문이다. 지극한 함축으로 이뤄진 이 짧은 작품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처럼 대단히 자연스럽고 평이한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절묘하다.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꼬부라진 긴 언덕길을 배경으로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가 택한 제재의‘길’은‘떠나보내는’길이다. 어머니도 첫사랑도 잃어버린 기억까지도 그 길 위로 떠나보냈다. 내가 수없이 오고갔던 길, 어머니가 수없이 오고가셨던 그 길을 어머니의 상여가 가고 내 첫사랑이 갔다. 할아버지보다도 더 오래 산 동구 밖 나무도 지켜보고 있었을 그보다 더 오랜 그 길로 그렇게 모두 떠나고 떠났고 또 떠날 것이다.


  첫 문단은 그리움으로 강가에서 자줏빛 노을에 함뿍 젖어 돌아온다. 둘째 문단은 그 강가에서 계절을 보내고 나이를 먹으면서도 어두운 마음은 늘 감기를 얻고 앓는다. 셋째 문단은 늙고 오래된 동구 밖 나무 밑에서 돌아올 수 없는 이들을 기다리다가 울고 만다. 그 눈물을 어둠이 가려준다.


  상상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본 것처럼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구성은 실제적인 사실과 경험을 상상(기억)이라는 가공 내지 재구성으로 문학화 하는 것이다.



5) 수필의 창작면


  시드니(Philp Sidney)는‘시는 말하는 그림이며. 가르침과 즐거움을 주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좋은 수필은 독자의 읽기 경험을 통해서 파악된다. 표현론자들은‘문학은 작가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감정의 물결을 가능한 한 가장 비슷하게 묘사해 주는 상징물을 통해 그 자신을 형상화 한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창작은 창작 주체의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의 상호 조응에서 발생하는 의미들을 언어체계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수필과 시의 언어/신재기/2009 p26)


  그것은 어떻게 말하는가의 문제로 그 말하기가 바로 문학적 창작을 말한다. 작가가 어떤 주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 한다는 것은 전략적 차원의 구성으로 창작한다는 것으로 작가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과 대상을 바라본다는 의미의 재해석이며 현실의 의미화다.


  수필 창작에서 서정수필을 수필의 모범으로 삼는 경향이 많은데 인간의 내면적 정서나 인간과 사물의 정서적 만남을 서정성을 전면화하여 서정성을 구체화하는 것이 독자의 공감을 얻기가 쉬울 수는 있으나 보다 다양한 정서를 작품 속에 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수필의 화법이 자기 자신을 이야기 하고 표현하는‘나’라는 1인칭 화법을 쓰기 때문에 주관적인 나의 개성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겠지만 독자의 공감 내지 감동을 불러오려면 나의 내면에서 출발한 나의 이야기라도 읽는 이가 공유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수필의 문학성 확보를 위해선 작가의 이야기를 독자의 이야기화 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남의 이야기로 생각하며 읽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내 이야기가 되어 내게 읽히는 전환점을 작가는 독자에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수필은 독자의 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특정한 의도를 투사하는 창작 행위로 사실을 나열하기보다는 의미화를 위해 재배열한다.(위의 책 p25)


  그게 바로 수필에서 독자에게‘내 이야기네?’하고 전환될 수 있게 하는‘특정한 의도를 투사하는 창작 행위’가 된다.


  문학은 창조성 원리에 근거하여 문학성을 확보하지만 창조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닌 만큼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에 따라 작가의 세계관에 근거하여 상상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거나 대상을 새롭게 구성한다. 그러나 체험이 주가 되는 수필에선 대상을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하기 보다는 실제와 현상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기록하는 글쓰기로 창조성의 원리에 근거하여 문학성을 확보한다는 문학원리와는 맞지 않다. 그래서  수필은 마음으로 쓴다고 한다.


  자기가 체험했던 삶의 이야기를 자기 나름의 렌즈에 맞춰 자기의 느낌대로 적어가는 것이지만 문장의 내용은 기술이 아니고 마음이다. 마음으로 쓴다는 것은 어쩌면 사실대로 쓴다기보다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 쓴 것이니 곧 상상으로 쓴 것일 수 있다. 논어에‘심재불언(心在不焉)이면 시이불현(視而不見)’이라 하여‘마음에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나타나지) 않는다.’했으니 좋은 수필을 쓰려면 마음에 감동을 갖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수필에서의 창조적 글쓰기 상상적 글쓰기가 될 것이다.(대한문학 2006. 여름호 중 수필쓰기, 마음의 작용을 중시하자/최원현/)



3. 수필에서의 상상력


  문학은 상상력의 세계다. 시는 서정적 상상미학의 세계요 소설은 허구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수필은 어던 상상력의 세계인가. 바로 관조적 상상력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수필은 인생과 사회와 자연, 우주에 대한 관조와 달관, 그리고 상상력을 본질로 하는 문학이다. 작가 자신의 체험은 곧 관조적 상상력을 통해 미적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수필의 문학성은 바로 관조와 문학적 상상력이 하나가 되어 연출해 낸 미학적 창조의 세계인 것이다. 수필이 체험의 세계를 그린 것이라고 할지라도 작가의 체험은 작가의 풍부하고 깊이 있는 상상력을 통해서만 문학적 가치를 획득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제재와 주제도 이러한 관조적 상상력에 의해서만 문학성을 획득한다는 뜻도 된다.(문학적 상상력과 인식의 깊이/서익환/새미/2004 p363)


  과거적 사실을 현재에 작품화 할때 그걸 그대로 옮겨올 수는 없다. 기억이라는 상상을 통해 그것을 유추해 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실이란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극히 불안전한 상태가 된다. 사실을 옮겨오는 작업도 잊어진 실체까지 복구할 수는 없는 것이요 그 잊었다는 사실 조차 모를 수 있다. 따라서 수필은 사실 체험을 작품화 한다고 하지만 사실의 모방이요 재현이요 상상의 산물이다. 하니 처음부터 허구로 창작을 한다 하지 않을 뿐이지 자의적이지 않은 어느 정도의 허구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요 또한 객관화된 진실이라 할지라도 작가 본인만이 검증하는 것인 만큼 신뢰성의 보장도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을 언어의 그릇에 담는 순간 언어의 자율적인 체계에 의해 그 대상은 재편성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의 언어적 표현이든 대상을 그대로 옮겨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허구적이고 전환적이다. 작가의 직접적인 경험은 모두 과거형으로 존재한다. 경험을 언어로 담는 일은 전적으로 작가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수필과 시의 언어/신재기/2009 p24-25)는 한계는 수필이 상상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문학이란 말이 된다. 그렇다면 수필의 문학성을 위해 상상의 영역을 소설의 허구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다 자유롭게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 방법 중 하나가 퓨전수필, 메타수필, 수화수필 등 다양한 모색이 아닐까 싶다.


  수필을 쓰는 근본적인 목적은 자기 삶을 객관적으로 조명하여 삶이 가진 의미를 재음미하고 보다 진실된 가치를 구현하는데 있다.(운정의 수필론(문학전집1)/윤재천/2008 중 시대에 맞는 수필 p74)


  수필가는 해박하고 광범한 지식, 심오한 사상, 예술적 감각, 작가로서의 눈, 예리한 직관력과 탁월한 관찰력, 풍부하고 뛰어난 상상력 등을 소유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요건들만 충족된다 해서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수필은 공감(共感)의 문학이다. 무엇보다 진솔함이 우선 되어야 하고,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문장력이 받침 되어야 한다. 읽고 난 후엔 작자가 의도한 감동이 길게 여운으로 남아 있는 글이어야 한다. 수필의 상상은 바로 이런 글을 만들어 내는 힘이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 문학성을 인정하는 것은 이런 상상력으로 작품을 이루어 낼 때 가능해 진다.



4. 나가기


   21세기라는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시대다. 산업사회의 병폐를 지닌 체 정보사회의 다양성을 함께 안고 사는 우리는 두 시대를 사는 것과도 같다. 메카니즘과 배금주의 속에 살아가는 치열한 삶이다. 알베레스의 말처럼 문학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면서 인간존재를 해명하고 내일을 지향하는 인간상을 창조한다. 그만큼 수필도 역사의 뿌리와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는 치열한 삶을 형상화하여 한국 문학의 또 하나의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수필의 오랜 정통과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면서 장르 차원에서의 자기 변혁을 위한 모색으로 발전의 길도 찾아야 할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보면 시, 소설, 희곡, 역사, 철학이다. 수필집으로는 수상작이 될 수 없을까. 1901년 셜리 프뤼돔이 첫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쉰 1940년에서 1943년까지의 4년과 수상자를 내지 못한 1914년, 1918년을 제외한 102회에 걸쳐 시 28명, 소설 59명, 희곡 12명, 역사 2명, 철학 5명 등 106명(1917, 1966, 1974년은 2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수상자가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던 수영, 골프 그리고 이번 밴쿠버 올림픽의 피겨 스케이팅을 비롯한 금메달이 꿈이 아닌 현실로 우리의 것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 문학이라고 못 할리 없다. 노벨문학상을 향한 우리의 소망과 노력을 쌓아가는 동안 우리 수필문학도 더욱 더 문학성을 확보하고 남들이 해내지 못한 세계의 문학으로 올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예술작품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독립된 세계를 형성하고 현실세계에서 어떤 의미의 한계적 상황을 구체화시킨다. 모든 문학은 상상이 기본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수필에서도 문학성 향상을 위한 창조적 상상 내지 재현적 상상으로 주제를 돋보이게 함으로써 보다 좋은 수필을 생산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수필은 품격(品格)이 있는 글이다. 품위 있는 글은 지나치게 어렵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은, 평범한 듯 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글이다. 힘들게 써서 쉽게 읽혀져야 좋은 수필이라고 하는 말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특히 21세기는 빛보다 빠른 꿈의 통신 시대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확산은 사이버 공간이라는 새로운 땅의 가상공간(Cyberspace)을 개척해 냈다. 생각하는 인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디지털적 인류 호모 사이버(Homo cyber)로 바뀌고, 시티즌(citizen)이 네티즌(netizen : network와 citizen의 합성어)이 되는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우리이기에 과거적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열어야 한다.


  문학의 문학다움은 독자의 감동에서 나온다. 감동은 작가가 독자를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독자는 수필을 읽고 나서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의 체험적 사실에도 공감하고 감동할 수가 있으나 수필의 문학성은 뛰어난 작가적 상상력이 제대로 발현될 때 성숙한 문학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자기 체험을 기본으로 한 수필일 경우 독자는 작가와 온전히 하나가 되는 착각(상상) 속에 빠질 만큼 작품 속에 빠질 때에만 감동을 받는 것이므로 수필문학에서의 상상력은 허구적 상상인 소설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상상이어야 하는 것이요 그럴 때 비로소 독자는 수필의 힘을 문학성으로 느끼는 것이다.


  수필에서의 상상은 시나 소설의 상상보다 훨씬 밀도가 높은 고도의 상상으로 작가의 심오한 철학적 의미까지 내밀하게 품는다. 입으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면서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질 수 있는 무수한 말처럼 수필의 상상은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게 작가의 마음에서 독자의 마음으로 소리 없이 오간다. 그래서 수필에서의 상상은 시의 이미지보다 더 강하게 독자의 가슴 속을 파고든다. 한 방울 물이 바위를 뚫는 것 같은 소설이나 시의 질량과는 다른 힘, 그게 수필에서의 상상력이다. 수필에서의 문학적 상상력의 힘/최원현/수필세계 2009 겨울호

  세상과 삶을 관조하고, 뛰어난 언어 운용 내지 구사와 풍부하고 적확한 어휘의 사용 및 적절한 비유, 섬세한 감수성 그리고 무엇보다 글 속에 실린 언어들이 암시하는 풍부하고 절실한 의미들이 독자의 가슴에 빛살처럼 꽂혀갈 때 한 편의 수필은 세계를 이루는 위대한 힘 이상으로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 참고 문헌


文藝批評論/한국문학평론가협회/서문당/1982

문학이란 무엇인가/유종호/민음사/1989

수필작법론/윤재천/세손/1995 중 ‘수필은 마음을 놓을 자리에 놓는 글/강범우

한국수필문학연구/정진권/신아출판사/1996

문학의 새로운 이해/김인환 성민엽.정과리/문학과 지성사/1996

문학의 이해/김시태/태학사/1999

문학적 상상력과 인식의 깊이/서익환/새미/2004

대한문학/2006. 여름호 중 수필쓰기, 마음의 작용을 중시하자/최원현/

운정의 수필론(윤재천수필문학전집1)/윤재천/문학관/2008

손광성의 수필쓰기/손광성/을유문화사/2008

수필과 시의 언어/신재기/박이정/2009

수필세계/2009 겨울호



 - 《수필학》제18집 수록

 

 

출처 : 보리수필문학
글쓴이 : 무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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