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론

[스크랩] 소나기에 정신을 팔다-박시윤<국가보훈처 2014.08월 통권102호>

테오리아2 2014. 8. 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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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Special Thema-휴식

 

 

소나기에 정신을 팔다

 

 

 

 

   후두둑, 후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바싹 마른 아스팔트 위에도, 먼지가 보얗게 내려앉은 가로수 잎 위에도 떨어집니다. 동쪽 저 끝에서부터 내가 사는 곳까지 쏴아-, 비가 바람을 타고 오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비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하지만, 나는 바람을 타고 비가 온다고 믿고 싶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는 항상 습한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먼저 달려와 코끝에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바람을 깊게 들이키면 비 냄새가 스며있다는 것을 본능으로 직감하곤 했으니까요.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의 머리 위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여름 땡볕에 축 늘어져있던 나무들은 금세 화색이 돌지만, 화들짝 놀란 아이들은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어느 집 대문 앞에 몸을 피하기도 합니다. 잠시 뿐입니다. 아이들은 갈 길이 먼 듯 다시 가방을 이고 뛰기 시작합니다. 저 뒤로 검은 비닐봉지에 두 개의 눈구멍을 뚫은 사내아이의 모습이 제법 우스꽝스럽습니다. 아이들의 발자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질퍽대면서도 내 발자국을 오롯이 남겨주던 황톳길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발자국을 찍어놓고 땅이 굳으면 내캉 니캉 크기를 비교하던 추억은 어디로 갔을까요.

 

   옷이 젖을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워낙 순식간에 내린 비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다 젖었는데도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달려 봅니다. 어디만큼 달렸을까요. 뒤를 돌아다보던 한 아이가 비에 젖은 친구를 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 맙니다. 아이들은 일제히 제자리에 멈춰 섭니다. 다 젖은 것에 대한 체념보다 더 젖을 것이 없어서 그저 행복한 걸까요. 남자아이들도, 여자아이들도 서로의 모습을 보며 거리낌 없이 웃기 시작 합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티 없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운 것은.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비의 풍광을 하염없이 즐기고 있습니다. 대지 위로 흩어지는 비의 냄새는 참 푸르러서 좋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창가에 기대어 있습니다. 그간, 마른 삶의 냄새들이 목이 타도록 싫었거든요. 땡볕 아래 서면 나도 모르게 찡그려지는 인상은, 아무리 펴려 해도 쉽게 펴지지 않았습니다. 눈이 부셨고, 갈증에 숨이 막힐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요.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쩔쩔매며 등골을 적시는 땀을 모른 척 해야 했지요. 때로는 내 몸에서 소금 꽃이 핀 것을 알았을 때, 돌아서서 남몰래 가슴을 치며 눈물을 삼켰던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구요. 턱 밑까지 차오르는 갈증이 힘에 겨워,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 한 줄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비가 오면 내 삶에도 촉촉한 여유가 묻어올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나를 더욱 목마르게 했거든요.

 

   우산을 쓰고 잠시 화단으로 나가볼까 합니다. 보름 전부터 만개한 수국이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네요. 수분을 흠뻑 머금어야 고운 빛깔로 만개하는 수국은, 곧 있을 장마를 예고하는 예언자나 다름없습니다. 비를 사랑하는 식물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요. 하이드레인저(hydrangea)라는 학명으로, ‘물의 용기’라는 뜻을 지닌 수국을 볼 때면,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조차도 반가워진답니다. 줄기차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메시지를 들으면 삶의 갈증도 느슨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비를 기다렸던 것은 비단 저 뿐만은 아닐 겁니다. 숨겨둔 동무도 데리고 나갈까, 합니다.

 

   아이의 방에는 작고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가 하나 있습니다. 지인에게서 선물 받은 상자 안에는 달팽이 한 쌍이 살고 있지요. 배춧잎이건, 당근이건 주는 대로 갉아먹어서인지 이제는 제법 크게 자랐답니다. 짓궂은 어른들이 식용달팽이임을 알고 잡아먹자고 아이에게 이릅니다. 그러면 아이는 두 눈 가득 눈물을 글썽이며 참지 못하는 서러움을 쏟아 놓습니다. 아이는 유치원에 갈 때도, 다녀와서도 “달식아, 달숙아, 잘 있었니?”하며 달팽이의 안부부터 챙깁니다.

 

   실은 며칠 전, 두 녀석이 가출한 사건이 있었답니다. 아이가 잠들고 난 뒤, 녀석들이 답답할까 염려되어 뚜껑을 살짝 열어 놓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느림보 달팽이가 상자를 벗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고작 두어 시간 지났을 뿐인데 감쪽같이 사라진 겁니다. 집 안을 샅샅이 뒤져도 사라진 두 녀석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녀석들의 발자국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바싹 메마른 집 안을 기어 다니다 탈진하면 어쩌지, 누군가의 발에 밟히면….’ 끔찍한 상상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 달식이, 달숙이의 안부를 물어오면 그 때는 무슨 말로 변명을 해야할까요.

 

   사흘이 지났습니다. 그간 애가 터지는 것은 저보다 작은 아이였습니다. 먹지도 않고 달식이, 달숙이를 찾아내라고 울었지요. 뚜껑을 열어놓은 엄마가 다 책임지라고 땡깡을 부리는 통에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었지요. “엄마, 여기 있어요, 여기!” 큰 아이가 녀석들을 찾은 겁니다. 막, 저녁식사를 시작하려다 말고 온 가족이 수저를 놓고 큰 방으로 달려갑니다. 녀석들은 장롱 아래에 바짝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상자에서 무려 3~4미터나 떨어진, 어둡고 구석진 자리였지요. 왜, 녀석들은 탈출을 한 걸까요. 어떻게 녀석들이 이 먼 곳까지 흩어지지 않고 나란히 왔을까요.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러고 보니 그간 녀석들의 행동이 이상했습니다. 먹으라고 넣어준 야채 잎사귀 밑에 몸을 숨기고 자는 날이 허다했고, 때로는 상자의 공기구멍까지 기어 올라와 붙어 있곤 했습니다. 바닥에 깔아준 흙이 바싹 메말라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이제야 알 것만 같습니다. 녀석들이 습지에서 자라는 생물이라는 것을요. 녀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어둡고 습한 휴식의 공간이었다는 것을요.

 

   상자를 깨끗이 비우고 새로운 흙을 깔아 놓습니다. 깨끗한 물로 흙을 촉촉이 적신 후, 물기서린 푸른 배추 서 너 장을 바닥에 깝니다. 그리고 바짝 웅크린 녀석들을 상자 안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좀처럼 껍질 속에서 나올 줄 모르는 녀석들을 보며 아이가 자꾸만 조바심을 냅니다. “아무래도 죽은 거 같아.” 큰아이가 미동도 않는 녀석들을 향해 분무기로 하염없이 물을 뿌려댑니다. 온 가족의 관심이 녀석들의 회생에 맞춰져버린 듯합니다.

 

  울다 지친 아이가 잠이 듭니다. 나는 검은 천을 찾아 상자를 덮어 놓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곁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선잠에 뒤척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얼마간 잤을까요. 한밤 중, 살며시 상자를 덮어놓은 천을 들춰봅니다. 사각사각사각, 녀석들의 치설이 야채 잎을 갉아대는 소리가 납니다. 오랜 잠에서 녀석들이 깨어난 겁니다. 손바닥만큼 긴 몸체를 하얗게 드러내고, 녀석들은 그토록 찾아 해맨 오아시스의 땅을 만끽하고 있는 듯합니다. 죽음을 감수하면서도 메마른 땅을 기어 다다른 장롱 아래의 공간은 정말 녀석들에게 평온한 안식처였을까요. 그간 너무도 미련하여, 습지 생물에게 마른자리를 제공하고, 대궐같이 등을 밝히며 최상의 안식처임을 자부했던 나의 실수가 증명되는 순간이었지요.

 

   소나기가 세차게 떨어지는 오후, 나는 녀석들을 데리고 화단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수국의 너른 잎사귀 위에 녀석들을 한 마리씩 올려놓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져 녀석들의 더듬이를 때립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녀석들의 촉수가 금세 껍질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꼿꼿하게 솟아오릅니다. 이리저리 탐닉한 녀석들의 배밀이가 제법 힘차고 빨라집니다. 본능으로 직감한 자연의 푸르름이 녀석들의 촉수를 자극했던 걸까요. 사각대는 치설의 움직임도 점점 빨라집니다. 잎사귀에 금세 커다란 구멍이 뚫립니다. 구멍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한참동안 녀석들의 몸놀림에 정신을 팝니다.

 

   아차! 어쩌지요?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습니다. 화들짝 놀라 급히 대문을 나서려는데 뇌리에 번뜩하며 기억 하나가 스칩니다. 아침나절 널어놓은 빨래가 아직도 옥상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내일아침 챙겨주어야 할 큰아이의 체육복도, 작은 아이의 운동화도 모두가 흠뻑 젖어있겠지요. 세탁을 당부하던 큰 아이의 부탁에 무슨 변명을 해야 할까요. 또, 작은 아이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때로는 깊은 감상에 젖어, 때로는 어딘가에 정신을 놓고 깜빡깜빡 잊으면서 사는 것도 참 괜찮은 것 같습니다. 시시콜콜하게 챙기고 나면 온종일 진이 빠져, 지쳐 쓰러 질 때가 어디 한 두 번이겠습니까. 덕분에 나의 하루는 오롯이 제 몫의 커다란 휴식으로 갈무리 하지 않습니까.

 

   소나기는 그친지 오래입니다. 세차게 몰아친 한차례의 소나기 아래, 참 아늑한 휴식이 내린 듯합니다. 서쪽의 하늘 아래 커다란 무지개가 선명하게 궁륭穹窿을 그리고 있습니다. 곧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나의 휴식이 이렇게 아름답게 노을 지고 있습니다.

 

  아차! 수국 잎사귀 위에 얹어 놓은 달식이, 달숙이는 어찌 되었을까요?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국가보훈처 2014.08월 통권102호>

  Amor Amor - Angel Roque
 

 

출처 : 대구MBC [이상렬의 수필창작]
글쓴이 : 박시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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