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사고뭉치 / 김이랑

테오리아2 2022. 9. 2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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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던졌다.

"어떤 고기에 '', 어떤 고기에 ''를 붙일까. 갈치, 문어처럼"

친구는 종교와 관련지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비늘 있는 고기는 '', 없는 고기는 ''를 붙였다는데, 문어는 '문치', 오징어는 '오징치'로 불러야 맞지 않나?"

막걸리 한 잔 들이켠 친구가 생각에 잠겼다. 말장난하듯 나는 또 질문을 이었다.

"양아치, 장사치라고, 사람에게도 ''자를 붙이는데, 사람에게 비늘이 없다고 그럴까?"

여기서부터는 가벼운 질문이 아니라 토론이다. 더 나아가면 윗물은 '' 아랫물은 ''를 붙이던 시절의 사농공상을 따져야 한다. 족보까지 들먹여 자칫 조상을 욕되게 할 수도 있다. 이쯤에서 멈추고 일상 이야기로 돌아갔다.

난들 밑두리콧두리 그 까닭을 캐보았겠는가. 꼴 따라 버릇 따라 이름을 지었고, 사람에게 비늘 없는 고기를 닮은 점이 있으므로 ''자를 붙이지 않았을까 라고 여길 밖에.

낙지·문어·미꾸라지·뱀장어,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고기는 대개 질퍽한 펄에서 산다. 꼬락서니는 징글맞고 행동거지는 느끼하다. 아양이라도 떨 줄 알면 애완으로 키우는 재미라도 있을 텐데, 이놈들은 성깔이 까다로워 별난 취미를 가진 사람도 키우기 어렵다. 게다가 위기에 빠졌을 때 물컹거리며 빠져나가는 솜씨는 가관이다.

비단껍질 걸치고 금수회의에 나와 한 벼슬 누리려는 원숭이를 가끔 본다. 이 원숭이는 내 윗물까지 오느라 손바닥을 열심히 비볐고, 또 이슬만 먹고 살았노라고, 그리하여 윗물에 살 자격이 있는 짐승은 바로 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숨겨놓은 '뻘짓'이 드러나면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몸짓도 영락없는 미꾸라지이다. 아무리 봐도 '저치'를 윗물에 올렸다간 물만 흐리지 싶다. 완장만 차면 거드름 피는 저들의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오호! 누가 이름 참 잘 지었다, '정치'라고.

정치만 살면 심심한가. 세상에는 먹물 깨나 먹었지만 속성은 미꾸라지 같은 '문치'가 살고, 겉은 빛나도 든 건 얄팍한 '칼치'가 살고, 몸매는 잘 빠졌지만 성질이 꽁한 '꽁치'가 산다. 아무래도 '이치' '저치'는 깨끗한 반열은 못 되고 적당히 분탕질하며 살아야하는 족속인 듯싶다. 그래도 비늘 없는 물고기는 꼬락서니는 좀 뭣해도 은근슬쩍 보양에 괜찮은데 말이다.

원숭이가 직립했을 때 옥황상제는 '아무렴, 누가 만들었는데.'라며 마음이 뿌듯했겠다. 털옷을 벗어던질 때는 감기 들까 염려했고, 더는 딸랑거리지 않겠다며 꼬리를 자를 때는 '녀석 이제 머리가 굵었구나'라며 흐뭇한 미소를 띠었겠다. 그런데 털모자는 벗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찜찜했고, 탐욕에 빠져들자 올 게 왔다 싶었을 게다.

아니나 다를까. 짐승 껍데기 마구 벗겨 입더니 갑옷까지 만들어 입고 동족끼리 쌈질을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니, 옥황상제는 특수한 머리띠를 개발해 손오공 머리에 씌우고 삼장법사에게 리모컨을 단단히 챙겨주었다. 그리하여 엉뚱한 짓을 하면 리모컨 단추를 꾹 눌러 혼을 내라고 했다.

하지만, 손재주가 점점 좋아진 원숭이는 무쇠 화살을 만들어 하늘로 쏘아댔다. 온갖 요술을 다 부리기에 어이쿠! 이러다 하늘까지 위험하다 싶어 벼락을 쳤지만 피뢰침을 만들어 오히려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해대니, 옥황상제는 내가 잘못 만들었다고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다가 지금쯤 전생의 과학자를 모조리 불러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아한 자태를 지닌 학과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슴과 대작하기엔 뭔가 꿀렸을까. 원숭이는 십장생에 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매화처럼 향기롭지도, 대나무처럼 절개가 곧지 못하다고 겸손이라도 떤 걸까. 원숭이는 사군자에도 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원숭이는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는 완장을 찼다. 그러고는 천하를 풍미하며 살아간다. 몸이 기울면 머리를 숙이고 생을 다할 날이 가까워지면 반성문을 쓴다. 어떤 원숭이는 마침표에 벼슬을 새겨 죽어서도 대접 받기를 바라고, 어떤 원숭이는 학생學生이었다고 진솔하게 고백한다. 이 사고뭉치가 하늘로 가면 옥황상제가 어떻게 다스릴까 자못 궁금하다.

죽을 때까지 돈을 탐했으니 보란 듯이 악어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열어 용돈 두툼히 찔러줄 줄 알았는데, 노잣돈 몇 닢만 얻어 저승길 통행료 깎고 깎아 알뜰하게 남긴 동전 한 닢 바치며 잘 봐달라고 뒤통수를 긁적거린다.

입혀 보낸 따뜻한 털옷 벗어던지고 온갖 껍질 다 입어봤으니 근사한 호피 입고 올 줄 알았는데, 딱 잡아떼고 바람 숭숭 통하는 삼베껍질만 걸친 채 불쌍한 척하니, 옥황상제는 그 몰골을 보고 껄껄껄 웃고 말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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