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오후, 교무실이 갑자기 훤하다. 멋쟁이 중년 여성이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눈길이 쏠린다. 낯설지도 않다. 담임할 때 도움받았던 학부모인가. 아니면 대학 동아리 후배인가. 잠시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선생님, 안녕하세요. K 여고 제자 〇〇예요.”라고 한다. 막내아들 입시 상담차 학교에 들렀다가 내가 있다기에 찾았단다. 반가이 인사를 하더니, 혹시나 몰라볼까 봐 걱정되었는지 학창 시절의 추억도 한 보따리 풀어놓는다. 신임교사 시절의 이야기다. 나른한 봄날, 오후 수업 시간이었다. 점심을 막 먹고 난 뒤라 식곤증이 올만도 한데 아이들의 눈망울이 평소보다 더 또렷했다. 입시를 앞둔 3학년이라고는 하나 딱딱한 의자에 온종일 앉아 수업받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마치 내가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