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론

좋은 수필의 조건

테오리아2 2014. 3. 2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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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림.

수필은 다른 장르에 비해 독자에게 친근감을 안겨 주는 특징이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수필이란 소설처럼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사실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우선 글을 쓴 이에게 인간적인 친근감을 갖게 한다. 둘째로, 수필은 흔히 그 소재를 생활 속에서 찾아내기 때문에 '이런 글은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감성을 주게 되며, 그것이 곧 독자의 창작 의욕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셋째로, 수필은 그 길이가 길지 않기 때문에 특출한 작가적 역량이 없어도 그런 대로 글 한 편을 써낼 수 있을 것 같은 만만함이 독자로 하여금 수필에 친근감을 갖게 만드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수필의 함정은 쉬워 보이는 듯한 바로 그 점에 있다. 동기는 그렇게 만만했지만 막상 글을 써보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것이 수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붓 가는 대로'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거기에는 치밀한 구성과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것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수필을 쓰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이전에, 우선 어떤 글이 좋은 수필인가,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봄이 그 순서일 것 같다.

1. 주제가 있는 글

수필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어 그것을 작품화한다. 그런데 그 많은 일상사 가운데에서 유독 그 소재를 집어내어 글을 쓰고자 할 때는, 그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주제에 해당된다. 소재를 통하여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어떤 생각, 어떤 철학이 바로 글의 주제가 되며 중심사상이 되는 것이다.

소재만 있고 주제가 없으면, 그것은 신변잡기에 속한다. '잡기(雜記)'는 결코 수필일 수가 없다. 그것에 작품성을 부여하려면 반드시 주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그 주제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주제는 평범성을 면치 못하게 됨으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한다. 작가에게는 상식적인 사고에서 한 층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천착성이 필요한 것이다.

주제는 또한 그 소재에 걸맞지 않게 너무 비약적이거나 너무 거창해서는 안 된다. 그 소재에 맞는 주제(귀납적 구성), 그 주제에 맞는 소재(연역적 구성)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리하게 소재를 의미화시키려 들거나 주제를 독자에게 강요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어떤 소재 속에 자연스럽게 함축되어 있는 주제, 그리고 그것이 읽는 이의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파고들 때, 우리는 좋은 수필 한 편을 읽었다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2.문장이 정확하고 꾸밈이 없는 글

"글이란 참된 데서 피어나고, 만드는 데서 시든다"(尹五榮)고 하였다. 이것은 곧 진실을 표현하는 데에는 수식이나 가식이 필요 없다는 말과도 바꿀 수 있다.

유치한 독자들이 선호하는 미문(美文)은 수필의 격(格)뿐만 아니라 작가의 격마저도 떨어뜨리게 하는 소녀적 문장이다. 문장은 솔직하면서도 담백해야 한다. 수식어에 또 수식어를 동원하는 분식(粉飾)이나, 시적(詩的)인 수법을 사용하여 지나치게 상징성을 띤 문장은 산문에서는 모두 적합치 않다. 또한 재치를 앞세워 기교에 능한 문장은, 작가의 치기성(稚氣性)을 드러내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수필은 산문이다. 산문이란 논리적으로 뜻에 충실한 글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적 산문이다. 그러므로 시적인 상징성과 비유를 수용하는 아량을 지니면서 한편 함축과 절제로써 문장에 탄력과 여운을 주어야 한다. 수필에서 아름다운 문장이란 바로 이런 문장을 가리키는 것이다.

문장은 또한 정확해야 한다. 정확한 문장이란 곧 문법에 충실한 문장을 뜻한다. 문장을 다루는 작가가 문장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것은, 맨손으로 땅을 갈겠다고 나선 농부와 같다. 땅을 갈려면 보습의 날을 세워야 하는 것처럼, 글을 쓰려면 문장에 대한 기초가 우선적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문장이 있고 나서 내용인 것이다. 내용(사상)은 문장에 의해 전달됨을 상기할 때, 문장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지 않을 수 없다.

3. 소재를 보는 시각이 신선한 글

글을 쓰고 싶어도 글감(소재)이 없어서 못 쓴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이다. 글감은 우리 생활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것을 찾아내는 눈이 무디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중에는 작품으로 많이 다루어진 것들도 있다. 그런 글감은 신선하지 못하다. 그래서 신선한 소재를 찾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 생활 속에서 작품의 소재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과연 있을까. 생활인이라면 누구나 보고 듣고 대해 본 것들을 작가들은 글감으로 채택한다. 그러기에 신선한 소재를 찾으라는 말 대신에, 소재를 보는 시각이 신선해야 한다고 말하는 편이 좀더 적합한 표현이 될 것이다.

소재는 모든 사람의 공통적 체험일 수 있지만, 소재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 작가만의 고유한 사상이나 철학이다. 글이 새로운가 아닌가 하는 것은, 바로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시각이 새로운가 아닌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러나 시각은 올발라야 한다. 잘못된 생각과 편견에 기초한 시각은 공감과 보편성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4. 작가정신이 들어 있는 글

주부작가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체험의 폭이 좁기 때문에 늘 쓰는 글들이 남편 이야기가 아니면 아이들 이야기뿐이고, 잘 아는 일이라고는 밥짓고 빨래하고 살림하는 것밖에는 없으니 글이 항상 그 범주 안에서만 맴돈다는 것이다.

수필이 체험의 문학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의 체험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독서를 통한 간접체험을 꾸준히 쌓으라고 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문제의식이란 곧 의식의 깨어 있음을 말한다.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 앞에는 스쳐 가는 것들이 모두 사유의 대상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의식이 깨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모두 피안(彼岸)의 일처럼 여겨질 뿐이다.

수필이 자기고백적인 글이기는 하나, 끝간 데 없이 자기도취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을 어찌 문학이라 할 수 있겠는가. 글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정신이다. 작가는 자기의 눈을 통하여 타인을 보게 되고, 세상을 보게 되며, 나아가서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정신이 결여되어 있으면, 한없이 사랑해도 못 다할 존재, 즉 자기 자신밖에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수필이 어엿한 문학의 한 장르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맹목적인 자기애(自己愛)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수필이 오늘날처럼 부르주아적 액세서리에 만족해 있다면, 수필은 문학에서 영원히 서자(庶子)의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필은 이제 선비만의 문학이 아니다. '선비의 문학'이라는 데 남다른 애착을 갖는 사람들은 선비정신이란 과연 무엇인가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선비정신은 바로 작가정신과도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한국수필평론》(범우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