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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사계 김장생문학상 당선작/창(窓) / 오미향

테오리아2 2022. 9. 27.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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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 후 물건 정리를 했다. 부엌 곳곳에 소주병이 숨겨져 있었다. 싱크대 아랫단에서 양주병

 

과 포도주가 진열된 찬장 구석진 곳에서, 간장병과 식용유 사이에서도 초록색 병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제사가 끝나고 시누이와 시고모님의 거침없는 입담이 지나간 후에 돌아서서 몰래 찾아들었을 눈물 한 방

 

울 소주 한 모금. 서울에 있는 여대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장녀라 지방교대를 가야했던 큰 언니가 단신투쟁

 

을 할 때에도 모른 척 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큰 오빠를 해병대에 보내고 돌아섰을 때에도, 지방고위공무

 

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아버지가 당뇨합병증으로 거동을 못하셨을 때에도 남몰래 찾아 들었을 소주 한 병.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도록 답답하고 체증이 내려가지 않았을 때 혼자 식구들의 눈을 피해 들이켰을 것이

 

. 소주는 우리 엄마의 눈물이었을까. 우리 엄마의 창문이었을가.

 

 

 

 

마음을 다 잡고 싶을 땐 동네 커피숍으로 간다. 아직은 경제활동이 가능한 남편과 배움에 목줄이 걸려있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버린 오전시간. 책 하나 달랑 옆구리에 끼고 일부러 골목길을 골라서 걷는다. 도시의 소

 

음과 번잡함을 피해 동네 모퉁이에 자리 잡은 조그만 커피숍으로 간다. 교회가 동네 주민을 위해 제공한 공

 

간이다. 젊은 얘들처럼 노트북을 펼치고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냥 노트에 끄적댈 뿐이다. 가끔 산문 몇 단

 

락도 나오고 시 구절이 머릿속에 맴돌 때 얼른 적어놓는다.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창이 넓은 커피숍

 

에서의 커피 한 잔이다. 혼자 들이키다 정리 안 된 감정의 찌꺼기들을 소각하고 싶을 때 창이 넓은 카페로

 

간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시킨다. 다소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시큼 씁쓰레한 아메리카노 향이 번질 때,

 

모금의 커피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가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나 자신과의 만나는 시간이다. 상대방

 

의 상황을 배려도 안하고 자기 도취에 빠져 지치도록 자식자랑을 해대는 지인들과의 의미 없는 모음이 계

 

속 될 때에도. 허전함이 가슴 가득 차 있을 때. 남편과 시댁의 재력을 늘어놓는 여대동창을 만난 후에도 혼

 

자 커피를 마신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흘러나오는 물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커피의 그윽한 향이 내 안으로

 

걸어들어 왔다. 살아야해, 버텨내야해, 이 세상이 나의 것이 될 때까지 비루한 삶을 이어가야해. 세상과 만

 

나고 싶을 때, 나의 창문은 커피 한잔이다.

 

 

 

오늘도 아들은 칭얼댄다. 공부는 해서 뭐하냐고.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일 컴퓨터 게임에 몰

 

두하고 야동을 당당하게 보는 이유는 뭘까. 세상과 등지고 싶은 마음, 기존 질서에 대항하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나 남들이 다할 때 나만 안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는가. 나만 소외되고 후회할 일만 남을 뿐이

 

라고 열심히 얘기 해봐도 아들은 들을 귀가 없나보다. 자아로 가득차고 음악의 세계는 한없이 풍요로워서

 

세상의 일은 남루하고 폼이 안날 것이다. 각이 안 잡힌 후즐근한 상자 일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세상과 만

 

나는 창은 음악이다. 그애가 불러주는 발라드는 가끔 나를 양탄자를 타고 동화의 세계로 들어가게 했다.

 

가 켜는 바이올린의 현은 너무나 감미로웠다. 'G선상의 아리아'는 성모마리아의 눈물과 기도가 잔잔히 그려

 

지곤 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연주하던 사계四季는 계절의 변화를 온 감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말라는 꼰대 같은 잔소리를 또 뱉는다.

 

살면서 이사를 몇 번했다. 그 때마다 집의 기준은 창이 넓어야 하는 것이다. 남쪽으로 향해있고 마루 끝에

 

서 끝까지 유리로 한 면을 완벽하게 도배해야 하는 게 나의 선택 기준이다. 그 창을 통해 들숨 날숨을 쉬었

 

. 시아버님이 제사를 강요하고 관혼상제에 목숨 걸었을 때는 그 창을 통해 바깥의 온도를 느꼈다. 바람

 

이 동쪽으로 불면 동쪽을 향해 돌아누웠고 서풍일 때는 숨을 골랐다. 석양 무렵의 해는 내 안의 뜨거움을

 

왈칵 쏟아냈다. 초경을 치루는 아이마냥 준비도 없이 그 강렬하고 혼탁한 붉음에 내 마음도 불이 붙듯 붉어

 

져버렸다. 내가 걸으면 내 그림자가 창에 어른거렸다. 길지조 짧지도 않음이 딱 표준이다. 그 중간지점이 표

 

준으로 살기를 강요당했고 스스로 그렇게 중간층이라 여기며 지내왔다. 누가 만든 중간이고 중산층이었을

 

. 바보스럽게도 가운데쯤 어정쩡하게 서 있음 양쪽 극한대로의 바람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소리

 

쳐 외치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혼자 창을 통해 울고 웃고 보낸 시간이 한 시절이었다.

 

나는 언제나 섬이었다. 누구와 함께 있어도 고립 무원한 하나의 섬이었다. 그 섬에서 벗어나고자 책을 읽었

 

고 글을 끄적댔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을 때에는 유리로 만든 창을 열고 숨을 쉬었다. 숨이 약한 찰 정도의

 

언덕과 계단을 걸으며 찾아든 언덕배기의 17층 아파트는 나를 둘러싼 섬이다. 그 섬 안에서 가족을 위해 밥

 

을 지었고 공간이 빌 무렵에는 책을 펼쳐 상상의 섬으로 들어가곤 했다. 바깥의 소리는 파도와 같아서 예고

 

도 없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러다가도 어느새인가 빠져나갔다. 고민과 고통이 뭉쳐진 바위에 부딪치

 

는 파도는 항상 내 곁에 와 자잘자잘 머물렀으나 달이 뜨고 조수간만의 차가 줄어들면서 조금씩 사라지곤

 

했다.

 

나만의 섬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창을 통해 세상과 주고받은 대화는 이제 내 곁에 자리 잡았다. 대화는 생

 

각을 쌓았고 그 더미는 영혼의 양식을 주었다. 시간의 줄기 속에서 돌고 돌아 어렵게 내 옆에 앉은 글쓰기

 

의 매력을 한층 더 높여보고 싶다. 자석의 양 극처럼 철버덕 끌어안아 자근자근 글을 써보련다. 나지막이

 

열리는 창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코끝에 와 닿는다. 이 시간 이 공기와 햇살을 나는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