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민들레 피는 골목 / 박현기

테오리아2 2022. 9. 2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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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귀퉁이 시멘트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민들레가 피었다. 마당뿐만 아니라 사무실 앞 담벼락 밑에도 몇 송이가 무리를 지어 얼굴을 내밀었다. 봄바람 두어 번 스쳤을 뿐인데, 갑자기 어디에서 날아와 저 험한 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모를 일이다. 물도 없고 거름도 없어 가녀리고 왜소하다. 뿌리나 제대로 내렸는지 몇 번을 들여다본다. 저 혼자 생글거리는 모양새가 제법 꽃답지만, 도시의 시멘트 사이에서는 왠지 그 모습이 애잔하다. 그 여리고 앙증맞은 몸매 어디에 그런 강인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었는지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주택가도 아니고 상가지역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 사무실이 있다. 내 건물은 아니지만, 세입자들이 자주 바뀌는 다른 집과는 달리, 널찍한 마당에 사무실과 창고를 이십여 년째 주인처럼 사용하고 있으니 주위 모두에게 토박이 대접을 받고 있다. 한동네에 오래 있다 보니 동사무소나 파출소 직원들이 나에게 와서 동네 인심을 물을 정도이다. 항상 조용하다. 가끔 생선이나 채소를 파는 행상 트럭이 마이크로 떠들 때도 창문 열고 한 번만 내다보면 금방 사라진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는 아주 쾌적하고 편하고, 게다가 집과도 가까우니 안성맞춤인 자리이다.

어느 날 사무실 앞에 고물상이 들어섰다. 원래 널찍한 마당이었는데 땅을 파고 계근대를 설치한 날부터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조용하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폐지와 고철을 집어 올리는 크레인 소리, 십 원이라도 더 받아가려는 노인의 원망 섞인 소리, 망치로 드럼통 쪼개는 소리, 그리고 먼지······. 조용하던 동네에 그런 업체 하나 들어오니 내 일상도 고물처럼 너덜너덜해진 것 같아 신경이 저절로 날카로워졌다. 환경문제로 인한 이웃 간의 다툼이 남의 일인 줄 알았더니 내가 환경과를 찾아가야 할 판이었다.

고물상 주인에게 이사를 가라고 몇 번의 경고를 보냈다. 그때마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신경 거슬리는 소음과 먼지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이 분명하다. 주민들의 진정서를 받아 환경청에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마다 힘없이 봐 달라는 소리만 되뇐다. 너만 사냐? 나도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잖아? 봐 달라는 고물상 주인을 못 본 체하며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점차 풀죽은 주인의 등 뒤에 ‘철수’라는 근심이 시름겹게 펄럭였다. 쾌재를 불렀다. 그럼 그렇지! 여기가 어디라고, 하고 싶으면 사람들 없는 외곽으로 나가서 할 일이지. 나는 다시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돌아오기를 기대했다.

 

며칠 후 저녁 나절 고물상 주인과 할머니가 맥주 몇 병을 들고 왔다.

“너무 그러는 것 아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할머니의 표정에는 간절함과 울화가 교차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사람을 잘못 봤다며 너무 그러지 말란다. 속속들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십여 년을 이웃해 지내면서 우리 회사에서 나오는 재활용품을 가져가는 대신 마당과 사무실 안팎을 틈틈이 청소해 주는 분이다. 동네의 폐지와 고물을 주워서 아픈 할아버지를 봉양하는 사정을 어렴풋이 알기에 가능하면 도와드리려 했었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젊은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내가 사장을 잘못 봐도 너무 잘못 봤다.

영문 모르고 당하자니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뭔지 말씀이나 해보십시오.

그제야 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맥주잔을 불쑥 내밀었다.

고물상 주인이 아들 못잖은 조카란다. 제법 큰 사업을 하다가 IMF 때 부도가 난 이후로 되는 게 없었단다. 마지막 호구지책으로 벌인 일이니 이웃 간의 정으로 좀 봐 달라는 거였다. 구구절절 사연도 많았다. 원래 안되는 집은 사연도 많고 이유도 많고 핑계도 많은 법이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고 두 사람이 찾아온 이유도 알았지만, 앞으로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는 모르쇠로 밀어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한마디가 나를 주춤거리게 했다.

“있는 사람은 다 이렇게 제 욕심만 차리나? 내가 사람을 진짜 잘못 봤다.

“할머니 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욕심만 차리는 사람은 더욱 아닙니다.” 했지만, 그 말 한마디에 젠장! 나는 졌다. 맥주만 한 잔 들이켰다. 싸움은 변명을 하면 지는 것이다.

이해하고 참기로 했다. 크레인의 왱왱거리는 소리에 전화통화가 힘들어도 내 마음을 내가 누르기로 했다. ‘있는 사람’이란 말과 ‘잘못 봤다’는 절규가 묘하게 나를 자극했다. 잘 보일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슬그머니 물러섰다. 바보!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해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의 풍경이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유모차에 폐지를 싣고 오는 노인, 아이의 손을 잡고 빈병을 가져오는 새댁, 출근길에 고철 나부랭이를 내려놓고 가는 샐러리맨, 탄탄한 구릿빛 근육으로 그 모든 쓰레기를 일일이 분리하는 주인, 더러 학생과 아가씨도 재활용품을 들고 와 몇 푼의 돈을 받아가는 그 모습이 잔잔한 동심원을 점점 넓혀가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이라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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